2007년 08월 12일
[동방] 初夜
육렝에로! 육렝에로! 육렝에로! 그녀~ 시리즈 마지막 쓰기 전, 복선 비슷하게 깔아놓기 위한(+욕구자가충족) 글.쓰기 전의 구상만큼 글이 잘 나온 것 같지는 않다... 슬퍼.
실낱같이 가느다란 달이 뜬 밤이었다.
"..."
잠든 어린아이의 새근거림과도 같은 바람 소리가 유유히 신사를 감돌고 있었다. 밤벌레의 소리가 멀찍히서 울려왔지만 이 공간을 감히 범점할 수 없다는 듯, 아득하기만 하다. 온후한 적막. 그 한가운데에 레이무가 있었다.
"..."
쪼르륵. 술병을 기울여 빈 잔에 술을 채웠다. 레이무는 소리만으로 잔이 다시 채워졌다는 것을 아는지, 다시 자신의 잔을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벚꽃잎의 색을 띄우고 있는 입술이 젖어 탐스러운 붉은 빛을 머금는다.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같은 곳을 바라보아도, 보이는 것은 허공 뿐.
"...좋은 달이네."
보이지도 않는 달을 모양을 칭찬하면서 운을 떼었다. 그녀의 의식이 날아, 내가 닿을 수 없는 그 어딘가로 가버리기 전에 다시 붙들어 세운다. 레이무는 그 소리에 살짝 어깨를 움츠렸다. 목소리가 귀에 달라붙기라도 한 듯 한 손을 들어 자신의 귀를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마침내 고개를 돌려 이 쪽을 바라보았다. 얼굴을 한 번, 달을 한 번,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 그리고 다시 돌아와 얼굴을 바라본다. 면박이라도 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후─ 하고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면서 레이무는 웃는다.
"그래."
그 모습이 너무나도─
"레이무."
"에?"
─그런 생각을 끝낼 틈도 없이,
어느새 그녀의 가느다란 몸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있었다.
무엇 하나 이상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유카리."
봄이 되어 벚꽃이 피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었는데.
"내일부터는 신사에 오지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낸 레이무의 얼굴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었는지,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왔건만 유카리는 도무지 그것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흠."
유카리는 신사의 토리이 앞에 멈추어섰다. 코를 울리면서 일자로 굳게 다문 입술에 꾸욱 힘을 주었다.
"좋아."
출입금지 선고를 받은 지 보름 째 날.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눈 앞이 아찔해 질 정도로 겹겹히 쌓아 팽팽하게 펼쳐놓은 결계의 연속이었다. 이런 극악무도한 결계식을 쳐놓아도 이 신사는 정말 괜찮은 겁니까. 유카리는 아연한 얼굴로 그렇게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물었지만, 당연히 괜찮았다. 그 결계는 오로지 유카리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계는 다른 사람이 아닌, 유카리만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었다. 무섭군, 하쿠레이의 무녀. 역대 무녀 최강의 영력을 이런 데에 다 쏟아부었어. 이런 힘은 좀 더 건설적인 데에 쓰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 틈새를 주무르는 힘을 고작 남의 저녁밥이나 훔치는데에 사용하는 유카리가 쯧쯧 혀를 차면서 손을 내밀어 레이무의 결계를 가늠해보았다. 파직, 손 끝에 닿자마자 작은 스파크가 일어났다. 이 기집애가 정말. 이마의 혈관이 오독오독 하는 소리를 내면서 도드라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렇게까지 거절하는 이유가 뭐야, 대체?"
이유야 어떻든간에 처음에는 제법 신선한 기분이었다. 그 천하의 하쿠레이 레이무가 오로지 나만을 배제한다. 그것은 어떤 의미로의 특별 취급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노라니 며칠간은 심지어 기분이 좋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괴이한 논리는 유카리에게조차 오래 통용되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찾아가 본 신사는 촘촘한 결계가 거미줄처럼 쳐져서 그녀의 출입을 거절하고 있었다. 물론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라면 못할 것도 없지만, 숙녀다운 것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고 해서 처음에는 정중히 대화를 요청했다.
[꺼져.]
물론 거절당했다. 다음에는 정중히 방문 요청.
[꺼져.]
역시 거절당했다. 홧김에 가볍게 신사에 대고 탄막 발사.
[꺼져!!]
전력전개로 대응해왔다. 뭐니 대체.
그런고로 유카리는 지금 신사의 토리이 앞에 서 있다. 물론 중간까지야 틈새를 건너 오기는 했지만, 적어도 100M 정도 앞에서는 두 다리로 걸어서 그 앞에 당도했다. 그녀로서는 파격적으로 예우를 갖춘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전혀 이해도 납득도 가지 않지만. 양산을 비스듬히 어깨에 걸치고 토리이 앞에 서서 목소리를 높였다.
"레이무! 들어간다."
언젠가는 화도 풀겠지 싶어서 내버려두고 있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이대로라면 겨울잠을 잘 때까지 영영 이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건 꽤나 괴로운 일이었다. 겨울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그 동안 레이무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고? 그런 건, 그런 건─
─모르겠지만, 어쨌든 불유쾌하다.
"화를 내도 좋고 때려도 좋으니까 일단 들어갈거야. 난 분명히 말했어. 들었지?"
좋아. 이젠 나도 못 참으니까. 유카리는 눈을 크게 흡뜨면서 레이무가 편 결계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키잉, 키잉, 눈 안에서 불꽃이 튀면서 하나하나의 결계를 분해하고 분석한다. 과연... 어지간한 인요는 범접도 못할 완성도였다. 하지만 아주 난공불략은... 아닌 것 같은데. 힘을 좀 써야하는 것 같기는 하겠지만.
"어휴... 어째서 내가 이렇게까지 힘을 써야 하는 거야? 고작 신사에 들어가는 것 뿐인데."
요괴가 멋대로 신사에 들락날락거린다는 것이 '고작'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요 근래에는 그야말로 '고작'이었으니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할 수 없지. 최대한 피해가 안가게는 하겠지만, 신사 건물 자체에 충격이 갈지도 모르겠다. 유카리는 결계 핵심을 파악하여 그것을 파괴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
"...어라?"
자칫 잘못했다간 마을 하나 정도는 가볍게 날아갈 정도로 위험한 일을 시작하려는 찰나, 유카리의 손이 그대로 멈추었다. 시선이 토리이 바로 옆의 가느다란 틈새에 멈추었다.
"...뭐야, 이 구멍은?"
결계의 구멍이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결계의 틈새가 자리잡고 있었다. 으음? 혹시 함정? 유카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허리를 굽혀 그 곳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아무리 뜯어보고 뜯어봐도 유카리의 능력이 갑자기 퇴화해버린 것이 아니라면 분명 이것은 결계의 틈새였다. 좁기는 하지만 틈새니까, 유카리가 못지나갈 것도 없다.
"언제 생겼지?"
어쨌든 이런 게 있다면 괜히 힘 쓸 필요는 없나. 유카리는 틈새를 벌려 그 안을 파고들었다. 겉에서 보기에는 토리이 옆에 틈새를 열고 세 걸음 정도의 거리를 이동하는,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렇게 하여 유카리는 신사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서고보니 슬슬 화가 나네. 유카리는 눈썹을 찡그리면서 일직선으로 신사를 향해 척척척 걸어나갔다. 일단 툇마루에 다다라서, 양산을 내려놓고 거기에 살짝 걸터앉는다. 굳게 닫힌 장지문 너머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레이무! 있지?"
대답은 없었다.
"정말, 내 이야기 듣고 있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뭘 그렇게 역정이 나셔서 신사에는 발도 못 들이게 하는 건데? 저거 보여? 보이겠지, 당신이 펼친 결계니까. 뭐야, 저 살벌한 결계는? 그렇게 마음에 안 든다면 안든다고 똑바로 내 얼굴을 보고 말을─"
덜컹! 문에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면서 유카리의 말을 끊었다. 검은 그림자가 문에 한 번 크게 부딪히더니 다시 흔들흔들 흔들리고는, 쿵쿵 몇 번을 더 부딪힌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아마 문고리를 손으로 긁으면서 나는 소리일 것이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당연히 레이무겠지. 그런데 뭐하고 있는 거야? 유카리의 의아한 듯 그것을 바라보다가 일어서서 대신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꺄악?!"
그리고 그 너머에 있던 소녀가 균형을 잃은 채로 유카리의 품으로 쓰러져왔다. 반사적으로 그 몸을 받아 안으면서 툇마루에 함께 주저앉는다. 털썩! 유카리의 짙은 보라빛 옷과 함께 흔들리는 것은 얇고 보드라운 하얀색의 천.
".......레이무?"
유카리는 자신의 품 안에 안겨 있는 소녀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확실히 레이무 맞지?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품 안에 안겨 있는 몸집으로 가늠해 보면서 유카리가 레이무를 훑어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의 레이무의 모습이 아니다.
".......정말.... 시끄럽네."
입고 있는 것은 홍백의 무녀복이 아닌 간소한 흰 색의 유카타였다. 화려하게 리본을 매어 치장하고 있던 머리카락도 오늘은 단순하게 하나로 묶어 어깨 너머로 흘려내리고 있었다. 평소보다 가느다란 그녀의 목소리에 유카리의 정신이 번뜩하고 돌아왔다. 레이무는 유카리를 멀찍이 밀어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휘청, 하고 다리가 살짝 풀리는 것이 똑똑히 보인다. 하지만 표정만은 여전히 귀찮다는 듯 눈을 내리깔면서 유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 어떻게 들어온 거야. 이 여자는...!"
"아니. 결계에 틈새가 있길래?"
"....하아? 그럴리가─"
"잠깐, 괜찮은거야, 그것보다. 레이무, 휘청휘청하고 있잖아."
유카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를 따라 일어서면서 묻는다. 그런 유카리의 표정을 보았다면 란은 틀림없이 당황하여 패닉에 빠질 것이고, 첸은 무서워서 도망가 버릴테지. 하지만 레이무는 눈치채지 못했다. 시야가 뿌옇게 흐린 탓이다.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면서 레이무는 머리를 붕붕 가로젓고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쫄쫄쫄 따라 들어오는 유카리를 향해 새털과도 같은 한숨을 섞어서 말했다.
"그냥... 쌀이 떨어졌어. 며칠 굶은 거 같아."
"..............................하아?"
뭐야, 그 궁상맞은 답변은? 유카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빈곤함으로 점철된 대답이었다. 그것이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고민하는 동안, 레이무는 힘없이 다시 바닥으로 주저앉아 근처에 있던 탁자에 푹 엎드렸다. 유카타의 옷깃과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흘끗 드러나보이는 목 언저리가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더 말라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진짜인가. 유카리는 답답하다는 듯이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답답하기는. 자기 식량 정도도 확보 못 해 놓는거야?"
"야! 이게 다 너 때문... 어휴, 됐어."
아, 그런가. 요즘에는 맨날 이 쪽에 와서 식사를 했으니까. 예상보다 빨리 쌀이 떨어져버린 거구나. 유카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진지하게 묻는다.
"저기. 설마 쌀이 다 떨어져서 나더러 오지 말라고 한 거였어?"
"바보냐!!! 아, 정말... 힘 없는데 소리지르게 하지 말고 얼른 나갓...! 오지 말라고 한 말 아직도 유효해..."
"쫓아낼 힘도 없으면서."
욱. 레이무는 발끈한 얼굴로 고개만 빼끔 들어 유카리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정곡을 찔린 듯, 마땅히 반론도 하지 못하고 볼만 부풀릴 뿐이다. 할 수 없지. 이건 내 책임이기도 하고.
"잠깐 기다려 봐."
지익. 유카리를 바로 틈새를 가르고 그 안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달그락, 달그락, 무언가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더니 작은 아우성 소리, 깨지는 소리, 이런저런 잡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틈새에서 빼낸 것은 갓 지은 밥이 담겨 있는 공기 하나. 그것을 레이무의 앞에 내려놓고는 다시 손을 집어넣어 잘 구운 생선 한 토막도 가져왔다. 퀭한 눈으로 틈새를 닫는 유카리를 바라보면서 레이무가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어디서 가져온 거야. 이 도둑..."
"어쩔 수 없잖아. 나의 레이무가 굶고 있는 걸. 싫으면 돌려줘...?"
".......으. 나중에 확실히 사과하러 가..."
레이무는 곧바로 젓가락을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유카리는 그 앞에 마주앉아서 턱을 괴고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젓가락은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르기로 움직이고 있었다. 다음에는 신사의 쌀독에 쌀을 채워놓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뭘 그렇게 쳐다봐?"
젓가락을 입에 문 채로 레이무가 우물거리면서 물었다. 그릇은 이미 깨끗하게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유카리는 황금빛의 눈동자를 살짝 크게 해 보이면서 되묻는다.
"어떻게 쳐다봤는데?"
"몰라. 실실 쪼개면서. 뭔가 기분 나쁘게 쳐다봤잖아."
"에에. 그랬나?"
탁자에 스륵 미끄러져 내리면서 말꼬리를 길게 늘이는 유카리를 보며 '늙은 게 주책이야...'라고 중얼거린 레이무는 다 먹은 식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보면서 유카리가 싱긋 웃는다.
"화는 풀렸어?"
"하아?"
"안 내쫓을 거지?"
"........됐어. 네 멋대로 해. 이젠."
"이왕이면 왜 심술을 부렸는지도 가르쳐주면 좋을텐데."
"내쫓는다."
"죄송합니다."
어휴. 레이무는 식기를 정돈하기 위해 휘적휘적 부엌으로 향했다. 유카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곧 그녀의 뒤를 따라 졸졸 이동했다. 달그락거리면서 그릇을 씻고 있는 레이무의 뒤에 서서 다시 빤히 그것을 바라본다. 이 여자가 진짜 왜 이래. 레이무는 떫은 표정으로 흘끗 뒤를 돌아본다.
"뭐야. 귀찮게."
"어디 도망 안가나 감시하는 거야."
"...여기 내 신사야... 아무데도 안 가거든."
"그렇네."
뭐가 그리도 좋은지 유카리는 생긋 웃는다. 덜컹. 그 웃는 모습에 놀라 레이무는 그릇을 떨어트렸다. 휘둥그런 눈을 하고 있는 레이무를, 역시 그릇이 떨어지는 소리에 놀란 유카리가 동그란 눈을 해서는 마주본다.
"왜 그래?"
"......."
홱. 레이무가 고개를 돌린다. 하나로 묶어 늘어트린 머리카락이 그 틈이 많은 동작에 맞추어 크게 물결쳤다. 슬몃히 보이는 하얀 목덜미에 눈이 멎었다.
아아, 그런가.
그리고 유카리는 매번 해답을 내지 못하고 묻어두곤 했던 의문에 대한 답은 간신히 찾을 수 있었다.
어째서 그 날 그렇게 정신없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는지,
어째서 당연하다는 듯이 그 몸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는지,
어째서 이렇게까지 그녀를 갈구하여 이 곳에 다다르게 되었는지,
"레이무."
"뭔데."
자꾸 불려서 성가시다는 듯 한 쪽 눈을 찡그리면서 돌아보는 레이무가, 그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
"뭐야. 자꾸 기분나쁘게 웃네."
"네 쌀독. 비지 않도록 내가 도와줄까?"
"하아? 뭐야 그건? 더 이상 신사에 안 오겠다는 소리? 그건 다행─"
"맨날 그득그득하게 채워놓겠다는 소린데."
"진짜?!?!"
어이쿠. 목뼈 부러질라. 맹렬하게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레이무의 모습을 보면서 유카리는 쿡쿡 소리죽에 웃었다. 슬쩍 입꼬리를 끌어당기면서 평소처럼 의뭉스럽게 미소를 뿌리는 유카리를 보고 레이무는 좋지 않은 예감에 어깨를 움츠리면서 긴장한다. 또, 무슨 헛짓을 해올지 모른다.
"물론 대가는 받고."
"...그렇게 나오기냐."
아니, 오히려 그 쪽이 마음이 놓이긴 하지. 유카리에게서 무상의 도움이라니. 기분나빠서 거절이다. 그래서, 뭔데? 눈으로 묻는 레이무를 보며 유카리는 가을 하늘의 새하얀 구름같이 티 하나 없는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당신의 목─"
"거절한다."
쌔액!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부적을 슬쩍 피해내면서 유카리가 투덜거렸다.
"에이."
"에이, 가 아냐! 어째서 고작 쌀 정도에 내 목숨이 거론되는 건데?!"
"...실제로 그 쌀이 없어서 죽을 뻔 했잖니."
"어쨌든."
레이무는 고개를 돌렸다. 항상 반짜증으로 일그러져 있지만, 실지로는 깨끗하고 단정한 얼굴. 그 얼굴이 다시 시야에서 사라졌다. 울컥, 하고 목에서부터 아쉬움의 덩어리가 솟구쳤다. 아아, 이제는 무리야.
"엑?!"
허리가 뒤로 당겨지는 감각에 다시 그릇을 놓친 레이무가 당황하여 소리를 내질렀다. 등에 닿는 것은 보드라운 한 겹의 천과, 그 너머로 느껴지는 매끄러운 피부. 그리고 폭신한 감각.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크고 형태가 잘 잡혀있는 가슴의 감촉에 레이무는 확 얼굴을 붉였다. 어째서? 이유는 자신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이 상황이 상당히 부끄럽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황급히 얼굴을 숙이지만 목덜미까지 화끈거리고 있었다. 분명히 들켰겠지.
"레이무. 목이─"
그래그래. 역시나. 아아, 뭐지 정말. 평소때도 어김없이 덥썩덥썩 잘 안겨오는 녀석이긴 했지만 오늘따라 묘하게 징그러웠다. 뭐랄까, 좀 더 몸에 감기는 느낌이랄까. 옷깃이 스치는 소리마저도 왠지 모르게, 으으, 그래.
요염하다.
어째서 이 녀석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껴안는 거야. 레이무는 자신의 허리를 감싸안은 유카리의 손을 풀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투덜거렸다. 그래, 그 날 밤만 해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레이무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거듭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마치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안 그래도 복잡한 사람의 마음을 그 따위로 뒤흔들어 놓고도, 어째서 그렇게 태연한 얼굴로 쳐다보면서 웃고 있는거야.
그럴 때마다 참을 수 없이 불안해진다는 것을, 이 요괴는 알지 못한다. 분명.
"읏?!"
목덜미에 닿는 촉촉한 감각에 레이무의 어깨가 움찔이면서 크게 요동쳤다.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채 파악도 하지 못한 레이무의 몸을 유카리는 팔을 조이며 좀 더 깊게 그러안았다. 초옥-하고, 목덜미에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 그것이 그녀의 입술이라는 것을 깨달을 즈음에는 다시 한 번 유카리가 레이무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혀로 쓸어내리고 있었다.
"뭐, 뭐해?!"
살갖이 따끔거릴 정도로 화끈거린다. 전신이 새빨갛게 물들어 열을 뿜어내고 있는 착각에 빠졌다. 살짝 뒤집어지는 레이무의 새된 목소리에 응답하는 것은 유카리의 착 가라앉은 낮은 목소리.
"목 접수."
"웃? 무슨..."
전신이 전율한다. 보드랍고 도톰한 혀의 감촉이 피부를 통해 깊숙히 깊숙히 파고들고 있었다. 순식간에 다리에 힘이 풀려 더욱 더 깊게 유카리의 품에 파묻혔다. 간신히 팔에 힘을 넣어 자신을 안고 있는 유카리의 팔을 부여잡으면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흠칫, 흠칫, 유카리의 혀가 목 위에서 튕길 때마가 등이 오싹거리면서 튀어올랐다.
"쌀독은 채워둘께."
"바, 바보냐...! 필요없으니까 이런 거...읏. 으응!"
"으응. 레이무 역시 귀엽네."
코를 울리는 유카리의 목소리는 누가 어떻게 들어도 혼이 빠져버릴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발버둥을 칠 힘도 없이 그냥 유카리에게 몸을 내맡긴 채로 눈을 꾹 감았다. 전신에 바싹 힘을 넣어 긴장시킨다. 안그러면 금세 정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작게 부들거리면서 떨고 있는 그녀의 몸을 안은 채로 유카리는 소리없이 웃음을 흘려내었다. 이제 겨우 10대 초반의 어린 소녀의 야들야들한 몸의 감촉에 환희를 느끼면서 유카리는 레이무의 머리카락을 잘근 씹는다. 그대로 미끄러져 내리면서 다시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가볍게 입술을 대고 빨아들였다.
"흐앗?!"
묵직한 아픔에 레이무의 입술을 비집고 비명이 튀어나왔다. 바깥으로 튀어나가려는 그녀의 몸을 다시 끌어당겨서 자국이 남은 그녀의 목 위를 혀로 덧쓸었다. 레이무의 호흡이 급속하게 흐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호흡을 내뱉을 때마다 못다 삼킨 신음성이 묻어나온다. 유카리의 팔에 속박되어 빠져나올 생각은 채 하지도 못하고, 레이무의 몸이 순종적으로 그녀를 받아들인다.
"으... 하아. 아, 아앗...."
눈을 질끈 감은 채로 필사적으로 소리를 죽이면서 본능에 대항하고 있는 레이무를 보며, 유카리는 못마땅한 듯이 볼을 부풀렸다. 그야 레이무는 이런 솔직하지 못한 면이 귀여운 것이지만. 그건 그것대로, 이건 이것대로 다른 거지.
"하아... 하..."
레미우의 목덜미를 끊임없이 탐하던 유카리의 느릿한 동작이 마침내 멈추고, 레이무의 호흡도 간신히 평정을 되찾는다. 잔뜩 움츠러들었던 어깨에 서서히 힘이 풀리는 것이 보인다. 유카리는 갑작스럽게 그녀의 허리에 두르고 있던 손 하나를 움직여 옷깃을 파고들었다.
"흐앗?!"
그것을 피하려는 듯, 레이무의 몸이 유카리에게 밀착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집요하게 레이무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무녀복이 아니니까 가슴에 단단히 둘러진 붕대도 없다. 매끈한 복부를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고, 빙글빙글 원을 그리면서 애무한다.
"레이무?"
"읏...!"
귓바퀴를 가볍게 혀로 핥은 후, 나지막한 소리로 묻는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다정하게 녹아내리는 목소리에 레이무는 몸서리치며 달뜬 호흡과 함께 대답했다.
"으, 왜..."
"어째서 오늘은 무녀복이 아니야?"
레이무의 몸이 순간 멈추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유카리에게 레이무는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는다. 그저 입을 꾹 다물고 묵묵부답으로 그녀의 품에 안겨 있을 뿐이었다. 으응, 싫은데. 아직 성장 도중인 그녀의 가슴을 아래에서 위로 쓸어 당기면서 쉬고 있던 한 손이 허리를 묶고 있는 천 안으로 파고들었다.
"으응? 대답은?"
"흐앗!"
레이무의 허리가 크게 휘면서 유카리의 어깨에 머리가 닿았다. 꽉 감고 있는 눈, 살짝 찡그려진 눈썹.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확 젖혀진 턱선과 이어지는 목에 취하여, 유카리는 가슴에 얹고 있던 손을 들어 그녀의 목선을 천천히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유, 카리."
레이무는 눈을 떴다. 붉은 빛의 눈동자에 가볍게 고여있는 눈물이 도르륵, 하고 흘러내렸다. 맑고, 깨끗하지만, 이상하게 흔들리고 있는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레이무가 무언가 말하고 싶어하고 있구나. 유카리는 미소를 지으면서 가만히 그녀를 응시한다.
"무녀복이 아니면, 싫어?"
"...엥?"
예상 외의 질문에 당황한 유카리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뭐야. 의미하는 바를 모르겠네. 유카리가 당황하는 것을 본 레이무는 다시 천천히 눈을 감으면서 숨을 크게 내쉬며 흐트러진 호흡을 정돈했다. 찡그린 눈썹이 왠지 모르게 고통스러워보인다고, 유카리는 생각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짓을 하는구나."
"에? 그야 그렇지?"
당연하다는 듯한 그 대답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나는 이렇게도 어색하고 부끄러운데, 어째서 당신은 그렇게도 태연한 걸까.
그렇기에 늘 불안해진다.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정말로 '나'인가?
"하..."
레이무의 입술에서 자조적인 웃음이 터져나왔다. 목을 울리면서 작은 소리로 웃는 그 모습에 유카리는 걱정스러운 듯이 이마를 찌푸렸다. 레이무, 괜찮아? 너무 갑작스러운 짓을 해서 그런가. 유카리가 내색하지 않고 안달을 내고 있으면, 이내 레이무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지금까지 몇 명의 하쿠레이에게 이런 짓을 했어?"
"................."
유카리는 후두부에 음양옥을 연속으로 두들겨 맞은 충격에 휩싸였다.
"...유카리?"
갑자기 찾아온 정적에 의아한 듯 레이무가 눈을 뜨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가려 그녀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으응? 레이무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내려온 머리카락을 치우려고 할 때,
"그런가."
돌연 시야가 회전한다.
"꺄악?! 뭐, 뭐야?!?"
풀썩! 유카리에게 안긴 채로 어딘가로 낙하한 몸이 바닥에 닿고, 동시에 다시 빙글 돌아 새하얀 천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참 후에야 레이무는 유카리의 등 뒤로 열린 틈새를 통해 이동하여 자신의 정리 안된 침구 위에 처박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엎어진 몸 위에 그대로 유카리 1인분의 무게가 짓누르고 있다. 이 여자가 진짜! 레이무는 고개를 번쩍 들어 뒤를 향해 돌렸다.
"야! 너 진짜─"
목소리가 나오다 말고 그대로 목에 걸려 멈추었다. 하늘하늘거리는 금빛의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금빛의 눈동자. 불이 켜지지 않은 방은 이렇게도 어두운데, 그녀의 눈동자는 마치 야수처럼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박력에 압도되어 레이무는 말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씨익, 유카리의 입술이 길게 찢어지면서 웃음을 만들어내었다.
"뭐야. 그런 거구나."
"우왓?!"
콰악. 유카리의 손이 그대로 레이무의 머리를 잡고 누른다. 덕분에 다시 이불 위에 푹 얼굴을 박는다. 유카리의 손은 그대로 내려와서 레이무의 오른쪽 어깨를 꽈악꽈악 누른다. 아파, 아파, 아프다고! 소리를 지를 틈도 없이 다른 한 쪽의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옷을 우악스럽게 끌어내렸다. 드러난 맨 어깨에 급작스러운 온도차가 느껴졌다.
"뭐야. 그러니까. 자기는 처음인데. 나만 익숙하니까 삐진 것?"
"윽...?! 누가!!"
레이무는 빈정거리는 유카리의 말에 발끈해서 소리쳤다. 그녀의 몸 아래에 깔린 채로 몸을 버둥거리면서 필사적으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아무래도 잡혀있는 쪽이 불리한 법이라, 허리 께까지 옷을 벗기는 동안에 유카리에게서 채 한 뼘의 거리도 벗어나지 못했다. 어깨를 눌린 채로, 간신히 목만 돌려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야, 야, 야! 뭐하는 짓이야! 당장 나가!"
"싫어."
뚝 끊어서 거절하는 유카리의 목소리가 상상 이상으로 차갑게 식어있었기에 레이무는 뒤틀던 몸을 멈추고 의아한 듯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흘끗 그녀의 시선을 마주받는 유카리의 눈동자에 잔뜩 불만스러운 감정이 배어나왔다.
"...유카리?"
"나 화났어."
"...에?"
"그렇게 보였단 말이지."
"...하아?... 으읏?!"
유카리는 매끈하게 곡선을 그리면서 내려오는 레이무의 등을 손가락으로 짚어 훑어내렸다.
"내가 고작 대를 이어왔다는 것만으로 사람을 착각하고,"
"읏, 하아! 앗... 유,유...!"
가볍게 패인 등골에 입을 맞추고, 혀를 내밀어 그것을 따라 쓸어내린다.
"눈 앞의 상대에 누군가를 겹쳐서 보는 한심한 환상에 젖어서,"
"응... 읏, 아앗. 핫! 하아... 자, 잠깐..."
도드라진 어깨뼈를 손톱으로 긁으면서 그녀의 등에 뺨을 살짝 부볐다.
"대리만족이라는 기분으로 너를 좋아하고 있다고?"
"!!!!"
어깨에 느껴지는 날카로운 고통에 레이무는 소리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양 손이 근처에 있는 이불을 그러쥐면서 새하얗게 마디를 드러내었다. 있는 힘껏 깨물려 놓고도 화조차 낼 수 없다. 어쩐지 여기서 잘못한 것은 자신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어... 그, 미안."
저렇게 울고 있는 사람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 거잖아.
"...사과에 성의가 없어."
"죄송합니다..."
어휴.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레이무는 고개를 빼끔 앞으로 내밀어 숨을 고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깨물린 어깨가 욱신거리면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으으, 살점 떨어져 나간 거 아냐. 투덜거리는 레이무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유카리가 느릿한 동작으로 자신이 깨문 레이무의 어깨를 핥았다.
"흐읏! 아, 돼...유카리. 됐으니까 좀..."
"레이무."
유카리의 목소리와 함께 몸 안 쪽으로 그녀의 손이 파고들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몸을 비틀어 세웠다. 하지만 막힘없이 그녀의 손은 레이무의 몸을 쫓았다. 에? 어라? 앗, 하는 사이에 레이무의 몸이 다시 반 회전했다. 털썩! 정면으로 유카리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너울거리는 금빛이 시야를 물들인다.
"읍..."
들이마신 호흡 가득히 느껴지는 유카리의 향이 레이무의 머리를 순식간에 백지로 만들었다. 그 향기가 전신을 돌고 돌아 그녀의 몸을 마비시킨다. 놀라움에 살짝 벌어진 잇새를 재빠르게 비집고 들어온 유카리의 혀가 그녀의 입 안을 어지럽게 범하기 시작했다. 도망치듯 숨어버리는 레이무의 혀를 몇 번이고 다시 찾아내어 능수능란하게 희롱한다.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되었을 때 즈음에 유카리는 간신히 레이무에게서 떨어져나왔다. 가느다랗게 반짝이는 은빛의 실이 길게 둘 사이의 이어짐을 증명하듯이 늘어졌다.
"핫, 하아...! 후읏..."
크게 숨을 들이키면서 헐떡이는 레이무의 뺨을 가만히 쓰다듬으면서 유카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당신이 처음."
"...하?"
"이런 것을 한 것은, 당신이 처음의 '하쿠레이'."
"...하아..."
"그리고 앞으로 할 일도, 당신이 처음의 '하쿠레이'."
"하, 어? 어??"
어떻게 해야 이 마음이 당신에게 닿을까. 유카리는 레이무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로 중얼거렸다. 부드러운 입술과, 그 입술에서 새어나온 한숨이 레이무의 피부를 훑어내린다. 흠칫흠칫 떨리는 그녀의 몸을 느끼면서 유카리는 마른 웃음을 터트렸다. 피곤해 보였지만, 희미하게 기쁜 속내가 그득히 묻어나고 있었다.
"왜... 웃는 건데."
"바보한테는 안가르쳐 줘."
"뭐 그런─ 으읏!"
레이무의 목소리가 톤을 한 층 더 높였다. 적막으로 그득히 들어 차 있던 신사의 방 안에는 소녀의 애타는 신음소리로 메워지고 있었다. 손톱을 세워 레이무의 가슴을 가볍게 긁는다. 유카리의 손은 헤메는 일 하나 없이 소녀의 몸에 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귀를 울리는 유카리의 거친 호흡소리가, 빠르게 레이무의 몸을 잠식해 들어간다. 마치 독을 마신 듯, 온 몸이 마비되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웃... 유카리..."
허벅지에 닿는 길고 섬세한 손가락을 느끼면서 레이무가 이름을 부른다. 떨리고 있는 목소리에 느껴지는 불안. 유카리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눈을 마주보았다. 거기에 있는 것은 하쿠레이의 무녀가 아닌, 단순한 어린 인간 소녀. 격렬한 쾌감에 아랫배가 욱씬거린다. 유카리는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며 나지막히 속삭였다.
"불안할 것 없어."
"하, 아앗...."
"당신이 사라져도, 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야."
레이무는 눈을 크게 뜨며 유카리의 눈을 마주 보았다. 무슨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휘둘리는 것은 이 쪽이 아니야. 무엇을 불안해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항상 '하쿠레이'가 아닌 '레이무'를 보고 있었는데.
요괴의 생은 인간에 비해 아득할 정도로 길다. 그래, 자신이 그녀의 일생을 휘둘러놓은 후 죽어버린다고 해도.
남은 잔상을 끌어안고 영원에 가까운 삶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윽..."
그녀의 삶에 간섭하는 시간은 그저 찰나일 뿐.
그것이 분하여 레이무는 울었다.
"에? 뭐야? 왜 울고 있어?"
놀리듯 조롱조로 질문하면서 유카리가 쿡쿡 소리를 낮추어 웃는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레이무의 전신을 달린다. 눈을 꽉 감으면서 눈물을 떨쳐내는 레이무를 보면서 유카리는 그녀의 눈가에 입을 맞추었다.
"무서운 거야?"
".........응."
사이를 두고 레이무가 유카리의 질문에 대답했다. 어라, 순순히 나오는 그녀의 대답에 유카리는 조금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이내 짖궂은 웃음을 띄우면서 레이무의 목선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무섭다고 피하면, 행복은 오지 않는 거지."
"읏... 하앗?!"
"곧 즐겁게 될거야. 레이무."
바보, 그런 게 아니야. 레이무의 그런 대답은 곧 높은 자신의 비명소리에 삼켜져 버린다. 그녀의 허벅다리에서 노닐고 있던 손이 빠르게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레이무는 유카리의 어깨를 껴안으면서 몸을 움츠렸다.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몸은 유카리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어린아이를 어르듯이 괜찮아, 괜찮아, 하며 몇 번이고 되뇌이면서 유카리가 레이무의 허리를 가볍게 손으로 어루만졌다. 코끝이 서로 맞닿고, 가쁜 호흡과 호흡이 섞인다. 서서히, 서서히 긴장이 풀리면서 안에 들어와 있는 유카리가 리듬에 맞추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 움직임에 맞추어 목소리가 높아진다.
"앗, 아으... 우읏."
들어와 있는 것은 유카리의 일부인데도, 느껴지는 것은 유카리의 모든 것. 교성을 내지르면서 레이무가 유카리의 품에 깊게 안겼다. 유카리의 손의 움직임에 멎추어 허리가 튕겨오른다. 점점 가속되어가는 행위.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해가면서 오로지 하나만을 갈구한다.
"유, 흐윽! 아앗, 유카...리...!"
"좀 더 불러줘."
레이무의 몸 위에 한 층 더 체중이 실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순간 자체가 꿈이 되어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는 듯이, 레이무는 유카리의 등에 팔을 돌려 마디가 새하얗게 질릴 때까지 힘 주어 껴안았다. 움찔거리면서 레이무가 자신을 조여오는 것을 느낀 유카리는 한 층 더 속도를 올려, 마지막까지 질주한다.
"!!!!"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등골을 타고 치솟아 오르는 쾌감에 아득해지는 정신. 하지만 이대로 잠들어버릴 수는 없었다. 레이무는 유카리가 사라져버리지 않도록 그 몸에 매달려 경련하면서, 마침내 절정에 달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읏..."
레이무는 누워있는 몸을 일으키다 말고 그대로 다시 이불 안으로 낙하했다. 아랫배 부근에서 급작스럽게 격통이 내달렸기 때문이었다. 욱씬거리는 아픔과 함께 남아있던 쾌감이 미약처럼 전신을 돌았다. 잠시 그대로 몸을 멈추고 그것을 다스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몸 여기저기가 쿡쿡 쑤셔오는 것이 당분간은 고생할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 대체 몇 번이나 유카리에게 안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저 발정녀가... 초심자를 상대로 너무하는 거 아냐. 배려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어.
"....에?"
다시 몸을 일으키려던 레이무는, 이번에는 다른 저항에 걸려서 다시 몸을 멈추었다. 자신의 허리에 단단히 손을 두른 채로, 유카리가 잠들어 있었다. 손마디에 단단히 깍지까지 끼고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풀리지 않는다.
"...애도 아니고..."
우응... 레이무의 중얼거림에 답하듯이 웅얼거리면서 유카리가 몸을 움직였다. 피곤했는지 깊게 잠에 빠져 있어, 여간해서는 깰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러고보니 유카리의 자는 모습은 처음 보는데. 어쨌든 힘으로 그녀의 손을 풀고 속박에서 벗어난 레이무는 아직 후들거리는 몸을 가누면서 천천히 허리를 일으켰다.
"우앗!"
휘청! 다시 몸이 뒤로 꺾인다. 유카리의 손이 그녀의 옷깃을 강하게 잡아당긴 탓이다. 이 녀석, 진짜 자고 있는 것 맞지?조심스럽게 자신의 옷깃을 빼내면서 레이무는 미심쩍은 눈으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긴다. 황금빛의 물결은 빛 한 조각 떨어지지 않는 어두운 방 안에서도 반짝거리면서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후."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려낸다. 이유도 알 수 없이, 그저 그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언어로 꼬집어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몸이 그것을 어렵지 않게 수긍하고 있었다. 그런가. 자신을 보고 웃음짓던 유카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아, 바보에게는 가르쳐 줄 수 없다고 했었지.
"하지만."
왠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타 수정 귀찮음... 내일부터 다시 팬시 작업 재개하쟈...
실낱같이 가느다란 달이 뜬 밤이었다.
"..."
잠든 어린아이의 새근거림과도 같은 바람 소리가 유유히 신사를 감돌고 있었다. 밤벌레의 소리가 멀찍히서 울려왔지만 이 공간을 감히 범점할 수 없다는 듯, 아득하기만 하다. 온후한 적막. 그 한가운데에 레이무가 있었다.
"..."
쪼르륵. 술병을 기울여 빈 잔에 술을 채웠다. 레이무는 소리만으로 잔이 다시 채워졌다는 것을 아는지, 다시 자신의 잔을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벚꽃잎의 색을 띄우고 있는 입술이 젖어 탐스러운 붉은 빛을 머금는다.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같은 곳을 바라보아도, 보이는 것은 허공 뿐.
"...좋은 달이네."
보이지도 않는 달을 모양을 칭찬하면서 운을 떼었다. 그녀의 의식이 날아, 내가 닿을 수 없는 그 어딘가로 가버리기 전에 다시 붙들어 세운다. 레이무는 그 소리에 살짝 어깨를 움츠렸다. 목소리가 귀에 달라붙기라도 한 듯 한 손을 들어 자신의 귀를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마침내 고개를 돌려 이 쪽을 바라보았다. 얼굴을 한 번, 달을 한 번,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 그리고 다시 돌아와 얼굴을 바라본다. 면박이라도 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후─ 하고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면서 레이무는 웃는다.
"그래."
그 모습이 너무나도─
"레이무."
"에?"
─그런 생각을 끝낼 틈도 없이,
어느새 그녀의 가느다란 몸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있었다.
무엇 하나 이상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유카리."
봄이 되어 벚꽃이 피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었는데.
"내일부터는 신사에 오지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낸 레이무의 얼굴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었는지,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왔건만 유카리는 도무지 그것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初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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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상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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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유카리는 신사의 토리이 앞에 멈추어섰다. 코를 울리면서 일자로 굳게 다문 입술에 꾸욱 힘을 주었다.
"좋아."
출입금지 선고를 받은 지 보름 째 날.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눈 앞이 아찔해 질 정도로 겹겹히 쌓아 팽팽하게 펼쳐놓은 결계의 연속이었다. 이런 극악무도한 결계식을 쳐놓아도 이 신사는 정말 괜찮은 겁니까. 유카리는 아연한 얼굴로 그렇게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물었지만, 당연히 괜찮았다. 그 결계는 오로지 유카리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계는 다른 사람이 아닌, 유카리만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었다. 무섭군, 하쿠레이의 무녀. 역대 무녀 최강의 영력을 이런 데에 다 쏟아부었어. 이런 힘은 좀 더 건설적인 데에 쓰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 틈새를 주무르는 힘을 고작 남의 저녁밥이나 훔치는데에 사용하는 유카리가 쯧쯧 혀를 차면서 손을 내밀어 레이무의 결계를 가늠해보았다. 파직, 손 끝에 닿자마자 작은 스파크가 일어났다. 이 기집애가 정말. 이마의 혈관이 오독오독 하는 소리를 내면서 도드라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렇게까지 거절하는 이유가 뭐야, 대체?"
이유야 어떻든간에 처음에는 제법 신선한 기분이었다. 그 천하의 하쿠레이 레이무가 오로지 나만을 배제한다. 그것은 어떤 의미로의 특별 취급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노라니 며칠간은 심지어 기분이 좋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괴이한 논리는 유카리에게조차 오래 통용되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찾아가 본 신사는 촘촘한 결계가 거미줄처럼 쳐져서 그녀의 출입을 거절하고 있었다. 물론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라면 못할 것도 없지만, 숙녀다운 것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고 해서 처음에는 정중히 대화를 요청했다.
[꺼져.]
물론 거절당했다. 다음에는 정중히 방문 요청.
[꺼져.]
역시 거절당했다. 홧김에 가볍게 신사에 대고 탄막 발사.
[꺼져!!]
전력전개로 대응해왔다. 뭐니 대체.
그런고로 유카리는 지금 신사의 토리이 앞에 서 있다. 물론 중간까지야 틈새를 건너 오기는 했지만, 적어도 100M 정도 앞에서는 두 다리로 걸어서 그 앞에 당도했다. 그녀로서는 파격적으로 예우를 갖춘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전혀 이해도 납득도 가지 않지만. 양산을 비스듬히 어깨에 걸치고 토리이 앞에 서서 목소리를 높였다.
"레이무! 들어간다."
언젠가는 화도 풀겠지 싶어서 내버려두고 있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이대로라면 겨울잠을 잘 때까지 영영 이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건 꽤나 괴로운 일이었다. 겨울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그 동안 레이무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고? 그런 건, 그런 건─
─모르겠지만, 어쨌든 불유쾌하다.
"화를 내도 좋고 때려도 좋으니까 일단 들어갈거야. 난 분명히 말했어. 들었지?"
좋아. 이젠 나도 못 참으니까. 유카리는 눈을 크게 흡뜨면서 레이무가 편 결계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키잉, 키잉, 눈 안에서 불꽃이 튀면서 하나하나의 결계를 분해하고 분석한다. 과연... 어지간한 인요는 범접도 못할 완성도였다. 하지만 아주 난공불략은... 아닌 것 같은데. 힘을 좀 써야하는 것 같기는 하겠지만.
"어휴... 어째서 내가 이렇게까지 힘을 써야 하는 거야? 고작 신사에 들어가는 것 뿐인데."
요괴가 멋대로 신사에 들락날락거린다는 것이 '고작'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요 근래에는 그야말로 '고작'이었으니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할 수 없지. 최대한 피해가 안가게는 하겠지만, 신사 건물 자체에 충격이 갈지도 모르겠다. 유카리는 결계 핵심을 파악하여 그것을 파괴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
"...어라?"
자칫 잘못했다간 마을 하나 정도는 가볍게 날아갈 정도로 위험한 일을 시작하려는 찰나, 유카리의 손이 그대로 멈추었다. 시선이 토리이 바로 옆의 가느다란 틈새에 멈추었다.
"...뭐야, 이 구멍은?"
결계의 구멍이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결계의 틈새가 자리잡고 있었다. 으음? 혹시 함정? 유카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허리를 굽혀 그 곳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아무리 뜯어보고 뜯어봐도 유카리의 능력이 갑자기 퇴화해버린 것이 아니라면 분명 이것은 결계의 틈새였다. 좁기는 하지만 틈새니까, 유카리가 못지나갈 것도 없다.
"언제 생겼지?"
어쨌든 이런 게 있다면 괜히 힘 쓸 필요는 없나. 유카리는 틈새를 벌려 그 안을 파고들었다. 겉에서 보기에는 토리이 옆에 틈새를 열고 세 걸음 정도의 거리를 이동하는,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렇게 하여 유카리는 신사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서고보니 슬슬 화가 나네. 유카리는 눈썹을 찡그리면서 일직선으로 신사를 향해 척척척 걸어나갔다. 일단 툇마루에 다다라서, 양산을 내려놓고 거기에 살짝 걸터앉는다. 굳게 닫힌 장지문 너머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레이무! 있지?"
대답은 없었다.
"정말, 내 이야기 듣고 있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뭘 그렇게 역정이 나셔서 신사에는 발도 못 들이게 하는 건데? 저거 보여? 보이겠지, 당신이 펼친 결계니까. 뭐야, 저 살벌한 결계는? 그렇게 마음에 안 든다면 안든다고 똑바로 내 얼굴을 보고 말을─"
덜컹! 문에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면서 유카리의 말을 끊었다. 검은 그림자가 문에 한 번 크게 부딪히더니 다시 흔들흔들 흔들리고는, 쿵쿵 몇 번을 더 부딪힌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아마 문고리를 손으로 긁으면서 나는 소리일 것이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당연히 레이무겠지. 그런데 뭐하고 있는 거야? 유카리의 의아한 듯 그것을 바라보다가 일어서서 대신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꺄악?!"
그리고 그 너머에 있던 소녀가 균형을 잃은 채로 유카리의 품으로 쓰러져왔다. 반사적으로 그 몸을 받아 안으면서 툇마루에 함께 주저앉는다. 털썩! 유카리의 짙은 보라빛 옷과 함께 흔들리는 것은 얇고 보드라운 하얀색의 천.
".......레이무?"
유카리는 자신의 품 안에 안겨 있는 소녀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확실히 레이무 맞지?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품 안에 안겨 있는 몸집으로 가늠해 보면서 유카리가 레이무를 훑어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의 레이무의 모습이 아니다.
".......정말.... 시끄럽네."
입고 있는 것은 홍백의 무녀복이 아닌 간소한 흰 색의 유카타였다. 화려하게 리본을 매어 치장하고 있던 머리카락도 오늘은 단순하게 하나로 묶어 어깨 너머로 흘려내리고 있었다. 평소보다 가느다란 그녀의 목소리에 유카리의 정신이 번뜩하고 돌아왔다. 레이무는 유카리를 멀찍이 밀어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휘청, 하고 다리가 살짝 풀리는 것이 똑똑히 보인다. 하지만 표정만은 여전히 귀찮다는 듯 눈을 내리깔면서 유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 어떻게 들어온 거야. 이 여자는...!"
"아니. 결계에 틈새가 있길래?"
"....하아? 그럴리가─"
"잠깐, 괜찮은거야, 그것보다. 레이무, 휘청휘청하고 있잖아."
유카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를 따라 일어서면서 묻는다. 그런 유카리의 표정을 보았다면 란은 틀림없이 당황하여 패닉에 빠질 것이고, 첸은 무서워서 도망가 버릴테지. 하지만 레이무는 눈치채지 못했다. 시야가 뿌옇게 흐린 탓이다.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면서 레이무는 머리를 붕붕 가로젓고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쫄쫄쫄 따라 들어오는 유카리를 향해 새털과도 같은 한숨을 섞어서 말했다.
"그냥... 쌀이 떨어졌어. 며칠 굶은 거 같아."
"..............................하아?"
뭐야, 그 궁상맞은 답변은? 유카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빈곤함으로 점철된 대답이었다. 그것이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고민하는 동안, 레이무는 힘없이 다시 바닥으로 주저앉아 근처에 있던 탁자에 푹 엎드렸다. 유카타의 옷깃과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흘끗 드러나보이는 목 언저리가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더 말라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진짜인가. 유카리는 답답하다는 듯이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답답하기는. 자기 식량 정도도 확보 못 해 놓는거야?"
"야! 이게 다 너 때문... 어휴, 됐어."
아, 그런가. 요즘에는 맨날 이 쪽에 와서 식사를 했으니까. 예상보다 빨리 쌀이 떨어져버린 거구나. 유카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진지하게 묻는다.
"저기. 설마 쌀이 다 떨어져서 나더러 오지 말라고 한 거였어?"
"바보냐!!! 아, 정말... 힘 없는데 소리지르게 하지 말고 얼른 나갓...! 오지 말라고 한 말 아직도 유효해..."
"쫓아낼 힘도 없으면서."
욱. 레이무는 발끈한 얼굴로 고개만 빼끔 들어 유카리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정곡을 찔린 듯, 마땅히 반론도 하지 못하고 볼만 부풀릴 뿐이다. 할 수 없지. 이건 내 책임이기도 하고.
"잠깐 기다려 봐."
지익. 유카리를 바로 틈새를 가르고 그 안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달그락, 달그락, 무언가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더니 작은 아우성 소리, 깨지는 소리, 이런저런 잡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틈새에서 빼낸 것은 갓 지은 밥이 담겨 있는 공기 하나. 그것을 레이무의 앞에 내려놓고는 다시 손을 집어넣어 잘 구운 생선 한 토막도 가져왔다. 퀭한 눈으로 틈새를 닫는 유카리를 바라보면서 레이무가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어디서 가져온 거야. 이 도둑..."
"어쩔 수 없잖아. 나의 레이무가 굶고 있는 걸. 싫으면 돌려줘...?"
".......으. 나중에 확실히 사과하러 가..."
레이무는 곧바로 젓가락을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유카리는 그 앞에 마주앉아서 턱을 괴고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젓가락은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르기로 움직이고 있었다. 다음에는 신사의 쌀독에 쌀을 채워놓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뭘 그렇게 쳐다봐?"
젓가락을 입에 문 채로 레이무가 우물거리면서 물었다. 그릇은 이미 깨끗하게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유카리는 황금빛의 눈동자를 살짝 크게 해 보이면서 되묻는다.
"어떻게 쳐다봤는데?"
"몰라. 실실 쪼개면서. 뭔가 기분 나쁘게 쳐다봤잖아."
"에에. 그랬나?"
탁자에 스륵 미끄러져 내리면서 말꼬리를 길게 늘이는 유카리를 보며 '늙은 게 주책이야...'라고 중얼거린 레이무는 다 먹은 식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보면서 유카리가 싱긋 웃는다.
"화는 풀렸어?"
"하아?"
"안 내쫓을 거지?"
"........됐어. 네 멋대로 해. 이젠."
"이왕이면 왜 심술을 부렸는지도 가르쳐주면 좋을텐데."
"내쫓는다."
"죄송합니다."
어휴. 레이무는 식기를 정돈하기 위해 휘적휘적 부엌으로 향했다. 유카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곧 그녀의 뒤를 따라 졸졸 이동했다. 달그락거리면서 그릇을 씻고 있는 레이무의 뒤에 서서 다시 빤히 그것을 바라본다. 이 여자가 진짜 왜 이래. 레이무는 떫은 표정으로 흘끗 뒤를 돌아본다.
"뭐야. 귀찮게."
"어디 도망 안가나 감시하는 거야."
"...여기 내 신사야... 아무데도 안 가거든."
"그렇네."
뭐가 그리도 좋은지 유카리는 생긋 웃는다. 덜컹. 그 웃는 모습에 놀라 레이무는 그릇을 떨어트렸다. 휘둥그런 눈을 하고 있는 레이무를, 역시 그릇이 떨어지는 소리에 놀란 유카리가 동그란 눈을 해서는 마주본다.
"왜 그래?"
"......."
홱. 레이무가 고개를 돌린다. 하나로 묶어 늘어트린 머리카락이 그 틈이 많은 동작에 맞추어 크게 물결쳤다. 슬몃히 보이는 하얀 목덜미에 눈이 멎었다.
아아, 그런가.
그리고 유카리는 매번 해답을 내지 못하고 묻어두곤 했던 의문에 대한 답은 간신히 찾을 수 있었다.
어째서 그 날 그렇게 정신없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는지,
어째서 당연하다는 듯이 그 몸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는지,
어째서 이렇게까지 그녀를 갈구하여 이 곳에 다다르게 되었는지,
"레이무."
"뭔데."
자꾸 불려서 성가시다는 듯 한 쪽 눈을 찡그리면서 돌아보는 레이무가, 그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
"뭐야. 자꾸 기분나쁘게 웃네."
"네 쌀독. 비지 않도록 내가 도와줄까?"
"하아? 뭐야 그건? 더 이상 신사에 안 오겠다는 소리? 그건 다행─"
"맨날 그득그득하게 채워놓겠다는 소린데."
"진짜?!?!"
어이쿠. 목뼈 부러질라. 맹렬하게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레이무의 모습을 보면서 유카리는 쿡쿡 소리죽에 웃었다. 슬쩍 입꼬리를 끌어당기면서 평소처럼 의뭉스럽게 미소를 뿌리는 유카리를 보고 레이무는 좋지 않은 예감에 어깨를 움츠리면서 긴장한다. 또, 무슨 헛짓을 해올지 모른다.
"물론 대가는 받고."
"...그렇게 나오기냐."
아니, 오히려 그 쪽이 마음이 놓이긴 하지. 유카리에게서 무상의 도움이라니. 기분나빠서 거절이다. 그래서, 뭔데? 눈으로 묻는 레이무를 보며 유카리는 가을 하늘의 새하얀 구름같이 티 하나 없는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당신의 목─"
"거절한다."
쌔액!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부적을 슬쩍 피해내면서 유카리가 투덜거렸다.
"에이."
"에이, 가 아냐! 어째서 고작 쌀 정도에 내 목숨이 거론되는 건데?!"
"...실제로 그 쌀이 없어서 죽을 뻔 했잖니."
"어쨌든."
레이무는 고개를 돌렸다. 항상 반짜증으로 일그러져 있지만, 실지로는 깨끗하고 단정한 얼굴. 그 얼굴이 다시 시야에서 사라졌다. 울컥, 하고 목에서부터 아쉬움의 덩어리가 솟구쳤다. 아아, 이제는 무리야.
"엑?!"
허리가 뒤로 당겨지는 감각에 다시 그릇을 놓친 레이무가 당황하여 소리를 내질렀다. 등에 닿는 것은 보드라운 한 겹의 천과, 그 너머로 느껴지는 매끄러운 피부. 그리고 폭신한 감각.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크고 형태가 잘 잡혀있는 가슴의 감촉에 레이무는 확 얼굴을 붉였다. 어째서? 이유는 자신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이 상황이 상당히 부끄럽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황급히 얼굴을 숙이지만 목덜미까지 화끈거리고 있었다. 분명히 들켰겠지.
"레이무. 목이─"
그래그래. 역시나. 아아, 뭐지 정말. 평소때도 어김없이 덥썩덥썩 잘 안겨오는 녀석이긴 했지만 오늘따라 묘하게 징그러웠다. 뭐랄까, 좀 더 몸에 감기는 느낌이랄까. 옷깃이 스치는 소리마저도 왠지 모르게, 으으, 그래.
요염하다.
어째서 이 녀석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껴안는 거야. 레이무는 자신의 허리를 감싸안은 유카리의 손을 풀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투덜거렸다. 그래, 그 날 밤만 해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레이무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거듭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마치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안 그래도 복잡한 사람의 마음을 그 따위로 뒤흔들어 놓고도, 어째서 그렇게 태연한 얼굴로 쳐다보면서 웃고 있는거야.
그럴 때마다 참을 수 없이 불안해진다는 것을, 이 요괴는 알지 못한다. 분명.
"읏?!"
목덜미에 닿는 촉촉한 감각에 레이무의 어깨가 움찔이면서 크게 요동쳤다.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채 파악도 하지 못한 레이무의 몸을 유카리는 팔을 조이며 좀 더 깊게 그러안았다. 초옥-하고, 목덜미에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 그것이 그녀의 입술이라는 것을 깨달을 즈음에는 다시 한 번 유카리가 레이무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혀로 쓸어내리고 있었다.
"뭐, 뭐해?!"
살갖이 따끔거릴 정도로 화끈거린다. 전신이 새빨갛게 물들어 열을 뿜어내고 있는 착각에 빠졌다. 살짝 뒤집어지는 레이무의 새된 목소리에 응답하는 것은 유카리의 착 가라앉은 낮은 목소리.
"목 접수."
"웃? 무슨..."
전신이 전율한다. 보드랍고 도톰한 혀의 감촉이 피부를 통해 깊숙히 깊숙히 파고들고 있었다. 순식간에 다리에 힘이 풀려 더욱 더 깊게 유카리의 품에 파묻혔다. 간신히 팔에 힘을 넣어 자신을 안고 있는 유카리의 팔을 부여잡으면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흠칫, 흠칫, 유카리의 혀가 목 위에서 튕길 때마가 등이 오싹거리면서 튀어올랐다.
"쌀독은 채워둘께."
"바, 바보냐...! 필요없으니까 이런 거...읏. 으응!"
"으응. 레이무 역시 귀엽네."
코를 울리는 유카리의 목소리는 누가 어떻게 들어도 혼이 빠져버릴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발버둥을 칠 힘도 없이 그냥 유카리에게 몸을 내맡긴 채로 눈을 꾹 감았다. 전신에 바싹 힘을 넣어 긴장시킨다. 안그러면 금세 정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작게 부들거리면서 떨고 있는 그녀의 몸을 안은 채로 유카리는 소리없이 웃음을 흘려내었다. 이제 겨우 10대 초반의 어린 소녀의 야들야들한 몸의 감촉에 환희를 느끼면서 유카리는 레이무의 머리카락을 잘근 씹는다. 그대로 미끄러져 내리면서 다시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가볍게 입술을 대고 빨아들였다.
"흐앗?!"
묵직한 아픔에 레이무의 입술을 비집고 비명이 튀어나왔다. 바깥으로 튀어나가려는 그녀의 몸을 다시 끌어당겨서 자국이 남은 그녀의 목 위를 혀로 덧쓸었다. 레이무의 호흡이 급속하게 흐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호흡을 내뱉을 때마다 못다 삼킨 신음성이 묻어나온다. 유카리의 팔에 속박되어 빠져나올 생각은 채 하지도 못하고, 레이무의 몸이 순종적으로 그녀를 받아들인다.
"으... 하아. 아, 아앗...."
눈을 질끈 감은 채로 필사적으로 소리를 죽이면서 본능에 대항하고 있는 레이무를 보며, 유카리는 못마땅한 듯이 볼을 부풀렸다. 그야 레이무는 이런 솔직하지 못한 면이 귀여운 것이지만. 그건 그것대로, 이건 이것대로 다른 거지.
"하아... 하..."
레미우의 목덜미를 끊임없이 탐하던 유카리의 느릿한 동작이 마침내 멈추고, 레이무의 호흡도 간신히 평정을 되찾는다. 잔뜩 움츠러들었던 어깨에 서서히 힘이 풀리는 것이 보인다. 유카리는 갑작스럽게 그녀의 허리에 두르고 있던 손 하나를 움직여 옷깃을 파고들었다.
"흐앗?!"
그것을 피하려는 듯, 레이무의 몸이 유카리에게 밀착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집요하게 레이무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무녀복이 아니니까 가슴에 단단히 둘러진 붕대도 없다. 매끈한 복부를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고, 빙글빙글 원을 그리면서 애무한다.
"레이무?"
"읏...!"
귓바퀴를 가볍게 혀로 핥은 후, 나지막한 소리로 묻는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다정하게 녹아내리는 목소리에 레이무는 몸서리치며 달뜬 호흡과 함께 대답했다.
"으, 왜..."
"어째서 오늘은 무녀복이 아니야?"
레이무의 몸이 순간 멈추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유카리에게 레이무는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는다. 그저 입을 꾹 다물고 묵묵부답으로 그녀의 품에 안겨 있을 뿐이었다. 으응, 싫은데. 아직 성장 도중인 그녀의 가슴을 아래에서 위로 쓸어 당기면서 쉬고 있던 한 손이 허리를 묶고 있는 천 안으로 파고들었다.
"으응? 대답은?"
"흐앗!"
레이무의 허리가 크게 휘면서 유카리의 어깨에 머리가 닿았다. 꽉 감고 있는 눈, 살짝 찡그려진 눈썹.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확 젖혀진 턱선과 이어지는 목에 취하여, 유카리는 가슴에 얹고 있던 손을 들어 그녀의 목선을 천천히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유, 카리."
레이무는 눈을 떴다. 붉은 빛의 눈동자에 가볍게 고여있는 눈물이 도르륵, 하고 흘러내렸다. 맑고, 깨끗하지만, 이상하게 흔들리고 있는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레이무가 무언가 말하고 싶어하고 있구나. 유카리는 미소를 지으면서 가만히 그녀를 응시한다.
"무녀복이 아니면, 싫어?"
"...엥?"
예상 외의 질문에 당황한 유카리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뭐야. 의미하는 바를 모르겠네. 유카리가 당황하는 것을 본 레이무는 다시 천천히 눈을 감으면서 숨을 크게 내쉬며 흐트러진 호흡을 정돈했다. 찡그린 눈썹이 왠지 모르게 고통스러워보인다고, 유카리는 생각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짓을 하는구나."
"에? 그야 그렇지?"
당연하다는 듯한 그 대답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나는 이렇게도 어색하고 부끄러운데, 어째서 당신은 그렇게도 태연한 걸까.
그렇기에 늘 불안해진다.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정말로 '나'인가?
"하..."
레이무의 입술에서 자조적인 웃음이 터져나왔다. 목을 울리면서 작은 소리로 웃는 그 모습에 유카리는 걱정스러운 듯이 이마를 찌푸렸다. 레이무, 괜찮아? 너무 갑작스러운 짓을 해서 그런가. 유카리가 내색하지 않고 안달을 내고 있으면, 이내 레이무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지금까지 몇 명의 하쿠레이에게 이런 짓을 했어?"
"................."
유카리는 후두부에 음양옥을 연속으로 두들겨 맞은 충격에 휩싸였다.
"...유카리?"
갑자기 찾아온 정적에 의아한 듯 레이무가 눈을 뜨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가려 그녀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으응? 레이무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내려온 머리카락을 치우려고 할 때,
"그런가."
돌연 시야가 회전한다.
"꺄악?! 뭐, 뭐야?!?"
풀썩! 유카리에게 안긴 채로 어딘가로 낙하한 몸이 바닥에 닿고, 동시에 다시 빙글 돌아 새하얀 천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참 후에야 레이무는 유카리의 등 뒤로 열린 틈새를 통해 이동하여 자신의 정리 안된 침구 위에 처박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엎어진 몸 위에 그대로 유카리 1인분의 무게가 짓누르고 있다. 이 여자가 진짜! 레이무는 고개를 번쩍 들어 뒤를 향해 돌렸다.
"야! 너 진짜─"
목소리가 나오다 말고 그대로 목에 걸려 멈추었다. 하늘하늘거리는 금빛의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금빛의 눈동자. 불이 켜지지 않은 방은 이렇게도 어두운데, 그녀의 눈동자는 마치 야수처럼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박력에 압도되어 레이무는 말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씨익, 유카리의 입술이 길게 찢어지면서 웃음을 만들어내었다.
"뭐야. 그런 거구나."
"우왓?!"
콰악. 유카리의 손이 그대로 레이무의 머리를 잡고 누른다. 덕분에 다시 이불 위에 푹 얼굴을 박는다. 유카리의 손은 그대로 내려와서 레이무의 오른쪽 어깨를 꽈악꽈악 누른다. 아파, 아파, 아프다고! 소리를 지를 틈도 없이 다른 한 쪽의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옷을 우악스럽게 끌어내렸다. 드러난 맨 어깨에 급작스러운 온도차가 느껴졌다.
"뭐야. 그러니까. 자기는 처음인데. 나만 익숙하니까 삐진 것?"
"윽...?! 누가!!"
레이무는 빈정거리는 유카리의 말에 발끈해서 소리쳤다. 그녀의 몸 아래에 깔린 채로 몸을 버둥거리면서 필사적으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아무래도 잡혀있는 쪽이 불리한 법이라, 허리 께까지 옷을 벗기는 동안에 유카리에게서 채 한 뼘의 거리도 벗어나지 못했다. 어깨를 눌린 채로, 간신히 목만 돌려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야, 야, 야! 뭐하는 짓이야! 당장 나가!"
"싫어."
뚝 끊어서 거절하는 유카리의 목소리가 상상 이상으로 차갑게 식어있었기에 레이무는 뒤틀던 몸을 멈추고 의아한 듯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흘끗 그녀의 시선을 마주받는 유카리의 눈동자에 잔뜩 불만스러운 감정이 배어나왔다.
"...유카리?"
"나 화났어."
"...에?"
"그렇게 보였단 말이지."
"...하아?... 으읏?!"
유카리는 매끈하게 곡선을 그리면서 내려오는 레이무의 등을 손가락으로 짚어 훑어내렸다.
"내가 고작 대를 이어왔다는 것만으로 사람을 착각하고,"
"읏, 하아! 앗... 유,유...!"
가볍게 패인 등골에 입을 맞추고, 혀를 내밀어 그것을 따라 쓸어내린다.
"눈 앞의 상대에 누군가를 겹쳐서 보는 한심한 환상에 젖어서,"
"응... 읏, 아앗. 핫! 하아... 자, 잠깐..."
도드라진 어깨뼈를 손톱으로 긁으면서 그녀의 등에 뺨을 살짝 부볐다.
"대리만족이라는 기분으로 너를 좋아하고 있다고?"
"!!!!"
어깨에 느껴지는 날카로운 고통에 레이무는 소리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양 손이 근처에 있는 이불을 그러쥐면서 새하얗게 마디를 드러내었다. 있는 힘껏 깨물려 놓고도 화조차 낼 수 없다. 어쩐지 여기서 잘못한 것은 자신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어... 그, 미안."
저렇게 울고 있는 사람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 거잖아.
"...사과에 성의가 없어."
"죄송합니다..."
어휴.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레이무는 고개를 빼끔 앞으로 내밀어 숨을 고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깨물린 어깨가 욱신거리면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으으, 살점 떨어져 나간 거 아냐. 투덜거리는 레이무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유카리가 느릿한 동작으로 자신이 깨문 레이무의 어깨를 핥았다.
"흐읏! 아, 돼...유카리. 됐으니까 좀..."
"레이무."
유카리의 목소리와 함께 몸 안 쪽으로 그녀의 손이 파고들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몸을 비틀어 세웠다. 하지만 막힘없이 그녀의 손은 레이무의 몸을 쫓았다. 에? 어라? 앗, 하는 사이에 레이무의 몸이 다시 반 회전했다. 털썩! 정면으로 유카리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너울거리는 금빛이 시야를 물들인다.
"읍..."
들이마신 호흡 가득히 느껴지는 유카리의 향이 레이무의 머리를 순식간에 백지로 만들었다. 그 향기가 전신을 돌고 돌아 그녀의 몸을 마비시킨다. 놀라움에 살짝 벌어진 잇새를 재빠르게 비집고 들어온 유카리의 혀가 그녀의 입 안을 어지럽게 범하기 시작했다. 도망치듯 숨어버리는 레이무의 혀를 몇 번이고 다시 찾아내어 능수능란하게 희롱한다.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되었을 때 즈음에 유카리는 간신히 레이무에게서 떨어져나왔다. 가느다랗게 반짝이는 은빛의 실이 길게 둘 사이의 이어짐을 증명하듯이 늘어졌다.
"핫, 하아...! 후읏..."
크게 숨을 들이키면서 헐떡이는 레이무의 뺨을 가만히 쓰다듬으면서 유카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당신이 처음."
"...하?"
"이런 것을 한 것은, 당신이 처음의 '하쿠레이'."
"...하아..."
"그리고 앞으로 할 일도, 당신이 처음의 '하쿠레이'."
"하, 어? 어??"
어떻게 해야 이 마음이 당신에게 닿을까. 유카리는 레이무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로 중얼거렸다. 부드러운 입술과, 그 입술에서 새어나온 한숨이 레이무의 피부를 훑어내린다. 흠칫흠칫 떨리는 그녀의 몸을 느끼면서 유카리는 마른 웃음을 터트렸다. 피곤해 보였지만, 희미하게 기쁜 속내가 그득히 묻어나고 있었다.
"왜... 웃는 건데."
"바보한테는 안가르쳐 줘."
"뭐 그런─ 으읏!"
레이무의 목소리가 톤을 한 층 더 높였다. 적막으로 그득히 들어 차 있던 신사의 방 안에는 소녀의 애타는 신음소리로 메워지고 있었다. 손톱을 세워 레이무의 가슴을 가볍게 긁는다. 유카리의 손은 헤메는 일 하나 없이 소녀의 몸에 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귀를 울리는 유카리의 거친 호흡소리가, 빠르게 레이무의 몸을 잠식해 들어간다. 마치 독을 마신 듯, 온 몸이 마비되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웃... 유카리..."
허벅지에 닿는 길고 섬세한 손가락을 느끼면서 레이무가 이름을 부른다. 떨리고 있는 목소리에 느껴지는 불안. 유카리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눈을 마주보았다. 거기에 있는 것은 하쿠레이의 무녀가 아닌, 단순한 어린 인간 소녀. 격렬한 쾌감에 아랫배가 욱씬거린다. 유카리는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며 나지막히 속삭였다.
"불안할 것 없어."
"하, 아앗...."
"당신이 사라져도, 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야."
레이무는 눈을 크게 뜨며 유카리의 눈을 마주 보았다. 무슨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휘둘리는 것은 이 쪽이 아니야. 무엇을 불안해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항상 '하쿠레이'가 아닌 '레이무'를 보고 있었는데.
요괴의 생은 인간에 비해 아득할 정도로 길다. 그래, 자신이 그녀의 일생을 휘둘러놓은 후 죽어버린다고 해도.
남은 잔상을 끌어안고 영원에 가까운 삶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윽..."
그녀의 삶에 간섭하는 시간은 그저 찰나일 뿐.
그것이 분하여 레이무는 울었다.
"에? 뭐야? 왜 울고 있어?"
놀리듯 조롱조로 질문하면서 유카리가 쿡쿡 소리를 낮추어 웃는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레이무의 전신을 달린다. 눈을 꽉 감으면서 눈물을 떨쳐내는 레이무를 보면서 유카리는 그녀의 눈가에 입을 맞추었다.
"무서운 거야?"
".........응."
사이를 두고 레이무가 유카리의 질문에 대답했다. 어라, 순순히 나오는 그녀의 대답에 유카리는 조금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이내 짖궂은 웃음을 띄우면서 레이무의 목선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무섭다고 피하면, 행복은 오지 않는 거지."
"읏... 하앗?!"
"곧 즐겁게 될거야. 레이무."
바보, 그런 게 아니야. 레이무의 그런 대답은 곧 높은 자신의 비명소리에 삼켜져 버린다. 그녀의 허벅다리에서 노닐고 있던 손이 빠르게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레이무는 유카리의 어깨를 껴안으면서 몸을 움츠렸다.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몸은 유카리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어린아이를 어르듯이 괜찮아, 괜찮아, 하며 몇 번이고 되뇌이면서 유카리가 레이무의 허리를 가볍게 손으로 어루만졌다. 코끝이 서로 맞닿고, 가쁜 호흡과 호흡이 섞인다. 서서히, 서서히 긴장이 풀리면서 안에 들어와 있는 유카리가 리듬에 맞추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 움직임에 맞추어 목소리가 높아진다.
"앗, 아으... 우읏."
들어와 있는 것은 유카리의 일부인데도, 느껴지는 것은 유카리의 모든 것. 교성을 내지르면서 레이무가 유카리의 품에 깊게 안겼다. 유카리의 손의 움직임에 멎추어 허리가 튕겨오른다. 점점 가속되어가는 행위.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해가면서 오로지 하나만을 갈구한다.
"유, 흐윽! 아앗, 유카...리...!"
"좀 더 불러줘."
레이무의 몸 위에 한 층 더 체중이 실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순간 자체가 꿈이 되어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는 듯이, 레이무는 유카리의 등에 팔을 돌려 마디가 새하얗게 질릴 때까지 힘 주어 껴안았다. 움찔거리면서 레이무가 자신을 조여오는 것을 느낀 유카리는 한 층 더 속도를 올려, 마지막까지 질주한다.
"!!!!"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등골을 타고 치솟아 오르는 쾌감에 아득해지는 정신. 하지만 이대로 잠들어버릴 수는 없었다. 레이무는 유카리가 사라져버리지 않도록 그 몸에 매달려 경련하면서, 마침내 절정에 달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읏..."
레이무는 누워있는 몸을 일으키다 말고 그대로 다시 이불 안으로 낙하했다. 아랫배 부근에서 급작스럽게 격통이 내달렸기 때문이었다. 욱씬거리는 아픔과 함께 남아있던 쾌감이 미약처럼 전신을 돌았다. 잠시 그대로 몸을 멈추고 그것을 다스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몸 여기저기가 쿡쿡 쑤셔오는 것이 당분간은 고생할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 대체 몇 번이나 유카리에게 안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저 발정녀가... 초심자를 상대로 너무하는 거 아냐. 배려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어.
"....에?"
다시 몸을 일으키려던 레이무는, 이번에는 다른 저항에 걸려서 다시 몸을 멈추었다. 자신의 허리에 단단히 손을 두른 채로, 유카리가 잠들어 있었다. 손마디에 단단히 깍지까지 끼고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풀리지 않는다.
"...애도 아니고..."
우응... 레이무의 중얼거림에 답하듯이 웅얼거리면서 유카리가 몸을 움직였다. 피곤했는지 깊게 잠에 빠져 있어, 여간해서는 깰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러고보니 유카리의 자는 모습은 처음 보는데. 어쨌든 힘으로 그녀의 손을 풀고 속박에서 벗어난 레이무는 아직 후들거리는 몸을 가누면서 천천히 허리를 일으켰다.
"우앗!"
휘청! 다시 몸이 뒤로 꺾인다. 유카리의 손이 그녀의 옷깃을 강하게 잡아당긴 탓이다. 이 녀석, 진짜 자고 있는 것 맞지?조심스럽게 자신의 옷깃을 빼내면서 레이무는 미심쩍은 눈으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긴다. 황금빛의 물결은 빛 한 조각 떨어지지 않는 어두운 방 안에서도 반짝거리면서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후."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려낸다. 이유도 알 수 없이, 그저 그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언어로 꼬집어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몸이 그것을 어렵지 않게 수긍하고 있었다. 그런가. 자신을 보고 웃음짓던 유카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아, 바보에게는 가르쳐 줄 수 없다고 했었지.
"하지만."
왠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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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수정 귀찮음... 내일부터 다시 팬시 작업 재개하쟈...
# by | 2007/08/12 04:54 | └ fan fiction | 트랙백 | 덧글(6)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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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에로하게 잘사는 이야기[?] 잘봤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