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그녀가 추억하는 16일의 달밤

게임센터에서 후렝-새하 조에게 진 벌칙으로 리퀘받은 샄마. 러브러브도, 달달도 아닙니다. 어쨌든 사쿠야, 마리사가 주역. 그런 이야기. 어쩌다보니 저번 작에 이어집니다. 이야기 마무리를 위해 아마 한 부 정도 또 연작을 쓰지 않을까.



"사쿠야."
"네?"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자연스럽게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레밀리아가 가볍게 고개를 움직이면, 사쿠야는 그 의중을 깨닫고 무릎을 굽혀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레밀리아는 손에 들고 있던 머플러를 그녀의 목에 돌돌 감아주었다. 자그마한 손이 조금은 서툴게, 하지만 꼼꼼히 빈틈을 메워가면서 그녀의 목을 천으로 감싸주었다. 그러고도 한참을 머플러를 매만지고 있는 레밀리아를 보면서 사쿠야는 눈을 가늘게 하면서 웃었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아가씨. 홍백흑백도 함께니까요. 다칠 일은 그 쪽에 미뤄두면 되고요."
"하아. 어째서 그 녀석은 요괴를 건드리지 않는 건데?"

레밀리아는 사쿠야가 직접 손을 잡아서 머플러에서 떼어놓고 나서야 못마땅한 듯 한 발 뒤로 물러서면서 투덜거렸다. 글쎄요. 만나면 한 번 물어볼까요? 사쿠야는 가볍게 대답하면서 일어나 치마자락을 정돈했다.

"서두르면 티타임에 맞출 수 있을 것도 같네요. 그 정도의 일입니다."
"흐응."
"자아자아. 어서 들어가 주세요."

마지못해 돌아서는 그녀를 보고 나서야 사쿠야는 몸을 돌려 현관을 나섰다. 문을 열기 직전, 레밀리아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 붉은 시선은 보이지 않았지만, 사쿠야는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심장을 관통당하는 듯한 감각에 전율하면서 그대로 서서 사쿠야가 레밀리아의 말을 기다린다.

"...조심해."
"네."

생긋. 사쿠야는 미소를 남기고 문을 나섰다.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면서 머리를 감싸는 그녀를 본 파츄리가 잰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확실히 말하지 않았구나."
"...어떻게 말하냐. 그걸."
"상사란 가끔은 엄격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인데."

파츄리는 코를 울리면서 가볍게 웃으면서 사쿠야가 닫고 나간 문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조심하세요, 사쿠야."

당신 자신을.




그녀가 추억하는 16일의 달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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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흔






"늦어!!"

귀를 일직선으로 관통하는 마리사의 목소리에 귀를 막은 채로 사쿠야는 담담하게 응수했다.

"어쩔 수 없지. 마법의 숲에서 보자─라는 약속에 제때 제시간을 맞춰 나올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앙? 나는 제 때 나왔다고?"

당신이 정한 약속이고 당신이 정한 시간에 당신이 정한 장소니까 그렇지. 그런 논리적인 반박을 하려던 사쿠야는 상대를 고려해 본 후 깨끗하게 포기했다. 안그래도 귀찮은 이변이 일어났는데 끝이 날리 없는 유치한 논쟁으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레이무 녀석이야 원래 늦으니까 내버려두고."
"..."

그러니까 그건 당신이─

"상황은 들었어? 뭔가 복잡하게 된 것 같던데."
"어라. 그렇게 복잡한 것도 아니야. 뭔진 모르겠지만 요괴의 손으로는 만지는 것조차 할 수 없는 불한당 하나가 설치고 있으니 잡아 없애라는 거지."
"...음? 으음? 그런 흉흉한 거였어?"

길 잃은 어린애 찾는 거 아니고? 마리사는 반쯤은 진심으로 그렇게 되묻는다.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네. 멀찍이서 홍백의 무녀가 날아오는 모습을 본 사쿠야는 크게 고개를 돌려 주위를 훑어보았다. 범위는 미정, 아직까지는 마법의 숲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낫겠지. 바닥을 디딘 레이무가 다짜고짜 마리사를 두드려 패는 소리를 들으며 사쿠야가 고개를 내렸다.

"자,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가 문제인데."
"오자마자 본론? 빠르네."
"아파! 우왓, 진짜 아파!! 레이무 그만둬!! 왜 내가 맞아야 하는 건데?!?!"

...진짜 모르는거냐. 레이무는 눈 밑을 파르륵 떨더니 그녀의 무릎을 있는 힘껏 걷어차고는 툴툴거리며 돌아섰다. 아이고오. 울상을 지으면서 자신의 무릎을 부여잡고 깽깽거리며 마리사가 자세를 가다듬는다.

"이번 사건에 손을 댈 수 있는 게 인간 밖에 없다는 것 같아. 그래서 모인 게 이렇게 셋."
"백옥루의 반인이나 봉래인 같은 것은 어때?"
"...으음.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안 되지 않을까 싶어."

단순히 부르러 가는 것이 귀찮았던 레이무는 간단하게 결론을 내리고서는 사쿠야가 했듯이 주변을 훌훌 둘러보았다. 사쿠야는 자신의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일단 멤버가 이렇게 셋이라는 소리인데."

사쿠야는 자신의 턱을 살짝 쓰다듬으면서 잠시 말을 떼었다 다시 잇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부분 협공이라던가 협력 체제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되더란 말이지."

사쿠야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레이무와 마리사에게 한 번 씩 눈길을 주었다. 레이무 역시 한 쪽 눈썹을 찡그리면서 사쿠야와 마리사를 훑어보고, 마리사 역시 두 명을 스윽 쳐다보았다.

"무리겠죠."
"무리네."
"무리지, 그건."

끝말을 잇듯이 줄줄이 그렇게 말하면서 판단을 내린 세 명의 인간은 적당히 다른 방향을 향해 각각 몸을 틀었다. 마리사가 빗자루 끄트머리를 이용해 원을 그린 후, 각각 120도로 3등분 했다.

"대충 이렇게 찾으면 되겠네. 간단하군."
"말이면 단 줄 아니."
"먼저 발견하면 꼭 알려라!"
"네가 먼저 발견하면 어쩔건데?"
"물론 내가 없앤다!!"
"...그러니."

주거니 받거니 토닥거리는 두 사람을 보고 있던 사쿠야는 문득,

─불쾌해졌다.

"오야? 어이, 패드장. 괜찮냐? 얼굴이 안 좋아 보이는데."
"패드 아니야. 모으고 올려주는 브라에요. 그럼 난 이 쪽으로 갈테니. 한 시간 정도 돌아본 후 다시 이 곳에 모이기로 해요."

사쿠야는 그렇게 말한 후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레이무와 마리사는 치맛자락을 팔락이면서 빠르게 사라져가는 그녀의 모습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뭐야?"
"글쎄. 블루데이?"












바람을 맞아 건조해진 입술을 혀로 훑으면서 사쿠야는 멈추어섰다. 이상하게 호흡이 달뜨고 있었다. 체력이 소모됨에 의해 발생하는 열이 아니다. 허공을 날던 몸이 천천히 바닥을 향해 내려왔다. 신발의 바닥이 땅에 닿는 감각을 느끼면서 사쿠야는 눈을 감고 크게 호흡을 들이켰다.

문득 무언가가 가늘고 고운 입자가 호흡기를 타고 폐로 흘러 들어간 듯한 착각이 들었으나, 곧 잊어버렸다.

"...하아."

눈을 뜨면, 세상이 일변한다.

"헤에."

입술이 크게 비틀어지면서 일그러진 미소를 만들어 내었다. 소리없이 호흡으로만 웃는다.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오래 된 습관이었다.

그래,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적에게 들켜버리니까.


죽일 수 없게 되잖아.

"..."

손을 편다. 뒤집는다. 흔든다. 은제의 나이프가 슥슥슥 튀어나왔다. 자아, 여기에는 그 어떠한 장치도 트릭도 없습니다. 신기하고도 흥미로운 마술. 관심이 있다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시죠. 돈은 받지 않아.

받는 것은 당신의 목숨.

"아하,"

웃는다.

"아하! 아하하하하!! 그렇지, 응! 아하하하!!!"

무엇이 그렇게 유쾌한지 사쿠야는 허리를 굽히면서 높은 소프라노 음의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 그녀의 웃음소리가 웅웅 울려 퍼졌다. 시끄러워. 나이프로 소리와 자신 사이의 공간을 절단하여 소리를 끊어버렸다. 손을 흔들어 나이프를 집어넣은 그녀는 눈을 들어 천천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새파랗고 선명한 눈동자가 스멀스멀 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잡아라."

적이 있다.

"죽여라."

의사를 존중하지 마.
마음을 열어주지 마.

겁을 먹을 필요도 없고,
동정할 필요도 없다.

내가 살고 싶고, 당신도 살고 싶다면─
당연히 나의 생명이 우선한다.

"..."

어재서 이 기분을 오래동안 잊고 있었는지, 사쿠야는 기억해 낼 수 없었다. 대신 머리 속에 한 줄기 붉은 스파크가 일면서 옅은 하늘 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아이가 희미하게 스쳤다. 그러나 역시 곧 잊어버렸다.

"흥."

코를 울린 사쿠야가, 바닥을 박차고 질주한다. 혀를 내밀고 거칠게 달리는 사냥개가 되어 먹이감을 쫓기 시작했다. 먹이감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옷토. 레이무, 우연이네."
"흐음. 여기가 당신과 내 구역의 경계가 되는 부분인가 보네. 뭔가 좀 찾아봤어?"
"아니. 별로. 아, 정말 귀찮네. 누가 애를 함부로 길바닥에 버려두는 거야. 미아칮기 한 번 힘드네."

마리사의 투덜거림에 레이무는 벌어지려는 턱을 간신히 추르리면서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저기. 진심?"
"에? 뭐가?"
"지금 제정신이야?!?"

쾅! 후두부에 작렬하는 음양옥에 빗자루에서 미끄러질 뻔한 마리사는 간신히 한 손으로 빗자루를 붙들고 낑낑 기어올랐다. 안전하게 착석한 후에 한숨을 돌리고 발끈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얌마 죽일 셈이냐?!"
"지금 우리가 하는 건 미아찾기 아니거든?!"
"알아알아 대충 비슷한 거잖아!!"
"달라!! 그런 태도로 돌아다녔다간 넌 당한다."
"...엉? 그렇게 심각한 이야기였어?"

레이무가 경계할 정도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모자를 고쳐쓰면서 마리사가 아래를 흘끗흘끗 쳐다보면서 물었다.

"별로 자세한 이야기는 못 들었어. 그냥 피안향에서 어떤 녀석이 탈출했는데, 그 녀석을 붙들어오라는 거 아니었어? 이상하게도 요괴는 손을 댈 수 없다고. 우리가 나선 거고."
"...그냥 평범한 인간의 영혼이 아니거든. 뭐랬더라. 사쿠야가 말 안 했어? 그 녀석, 인간의 기억을 헤집을 수 있다고."
"엉? 그런 소리 못 들었어."
"그래? 이상하네. 레밀리아에게는 말해 두었는데. 설마 전하지 않은 건가?"

레이무가 의아한 듯 혼잣말로 웅얼거리는 것을 보고 마리사가 기운 빠지는 목소리로 흐느적거리면서 여전히 태평하게 질문했다.

"그런 정도야 근성으로 되는 거 아냐...? 별로 위험하다고는 못 느끼겠는데."
"바보네. 이건 탄막 대결이 아니라니까. 뭐, 나도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으니까 그 쪽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피안향에서도 간단히 탈출했다는 것 같으니까, 정신 차려두는 게 좋아. 레이무의 말에 마리사는 흐음─하고 길게 꼬리를 끌면서 볼을 긁적였다.

"사쿠야를 찾아볼께."
"...에?"
"그 정도로 위험한 거면 역시 녀석한테도 알려줘야겠지. 태평하게 돌아다니면 안된다며."
"아니, 너만 그랬거든."
"곧 약속 시간이고 하니 레이무는 먼저 돌아가 있어. 가면서 다시 한 번 훑어봐 주고. 나는 사쿠야랑 같이 가지."

마리사의 지시에 레이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응했다. 하지만 그 빠릿빠릿한 메이드를 그렇게까지 챙길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것도 가장 못미더운 사람이 나서니 더더욱 쓸데없는 짓 같고.

"...너, 뭔가 굉장히 무례한 생각 하지 않았냐?"
"진실은, 때로는 가혹한 법이지. 왠 일이야? 이상하게 그 메이드를 많이 신경쓰잖아."
"에? 아, 뭐랄까... 아까 전에 표정이 아무래도 좀 걸려."

그런가. 레이무가 턱을 긁적이면서 살짝 하얗게 질려 있던 사쿠야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확실히 좀 평소답지 않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레이무 성격 상 남을 신경쓸 일이 없기 때문에 곧바로 넘어가 버렸던 것이다.

"그래라, 그럼. 먼저 갈께. 길 잃지 마."
"오우!"

흔들흔들 사라져 가는 레이무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리사는 빗자루의 머리를 돌렸다. 왠지 쿵쿵 심장이 불안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호흡과 함께 이 주변에 부유하고 있는 입자들을 들이켰다 뱉을 때마다 머리 속이 한 번씩 우웅─하고 소리를 내면서 울렸다. 레이무에게 먼저 정신만 안 놓고 있으면 괜찮아, 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이 입자가 무슨 작용을 하는지도 듣지 못했다- 기분 나쁜 감각은 영 가시질 않았다.

"서두를까."

기분 탓이면 좋으련만. 어딘가에서 희열에 가득 찬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킁.

사쿠야가 코를 울렸다.

"..."

풀과 흙 냄새 밖에 없던 곳에 인간의 냄새가 흘러들었다. 강한 인간의 냄새였다. 달리던 다리가 그대로 멈추었다. 사쿠야의 몸이 관성의 법칙도 잊은 채 그대로 정지했다. 정지하는 순간 눈을 들어 하늘을 쫓았다. 적은 위에서 온다. 사쿠야는 나는 법을 잊고 있었다. 환상향에 오기 전까지는 '날아다닌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위에서 날아오는 인간? 그건 인간인가? 의문을 품었던 그녀는 곳 이를 드러내면서 차갑게 웃었다. 나도 인간인데, 녀석이라고 인간이 아닐리 없지.

의심할 것도 없다.
인간만이 이런 냄새가 난다.

그래,
아무리 악마라 매도해도 이 냄새만큼은 지워지지 않아.
어째서 그것을 아무도 모르는 걸까. 어째서 나를 비난해.

그렇기에 나는
신도, 악마도, ─결국은 인간도 될 수 없었다.

자신을 향해 맹렬하게 쏘아져 들어오는 흑백의 물체를 보며 사쿠야는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상대는 빗자루를 탄 모노톤의 옷을 입은 여자. 금발에 금안. 나이는 10대. 외모에 속지는 말자. 검지와 중지, 약지 사이에 나이프를 꺼내 앞으로 들이미는 그녀를 보지 못하고 타고 온 빗자루에서 내리면서 마리사가 입을 열었다.

"여어, ■■■."

뭐?

무언가 희안한 발음의 음색을 내었다. 전혀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였다.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제대로 어절을 파악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마리사는 고개를 들고 자신을 향해 나이프를 겨누고 있는 사쿠야를 발견하고는 기겁을 해서 물러났다.

"우와악?! 뭐야? 깜짝이야. 놀래키지마, ■■■."

또 말했다. 사쿠야는 의문을 품었지만,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태도로 나이프를 잡은 손에 힘을 넣었다.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다. 레밀리아도 저런 눈이었는데. 마리사는 사쿠야가 평소와는 다른 것을 깨닫고 전신을 긴장시켰다. 상대를 바로보고 나서야 느껴졌다. 그녀의 전신에서 짙은 살의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눈이 차갑다. 평소에도 산뜻하고 깨끗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사쿠야였지만 이것은 질이 틀리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무기질인 것만 같다.

"■■■?"

마리사가 세번째로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나서야, 그녀는 그것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 굳게 다문 입술을 떼고, 천천히 목을 울린다.

"사. 쿠. 야."
"...헤?"
"뭐지, 그건."
"...뭐냐니. 네 이름이잖아. 어이, 사쿠야. 너 정말 괜찮냐?"

친숙하게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금발의 소녀에게 사쿠야는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아주 찰나. 그것조차 용서할 수 없다는 듯, 그녀의 미간이 불쾌하게 찡그려졌다. 어째서 마음을 놓는가. 어째서 긴장하지 않는가. 앞에 있는 것은 인간. 그것도 매우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인간. 그렇다면,

죽여라.

"큭!"

사쿠야의 입술이 비틀어지면서 싸늘한 미소를 자아내었다. 그런 표정,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마리사가 뒤로 물러서는 순간, 사쿠야가 빠르게 그녀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어?!"
"하!"

심장에 파고드는 두 개의 나이프. 망설임이라고는 어디에도 없다. 최속의 마법사를 자부하는 마리사였기에 간신히 피할 수 있었을 정도의 속도였다.

"야, 임...마! 장난이... 헉, 하아... 심하잖냐!!"

가슴팍에 스친 상흔이 천천히 핏방울을 뿌리면서 마리사의 옷을 붉게 물들여가기 시작했다. 확실하게 하나는 알겠다. 이 자식, 지금 제 정신이 아니구만. 그리고 뭔지는 몰라도 분명 이번 이변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마리사는 직감적으로 판단했다. 사쿠야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마리사를 뜯어보고 있었다. 차갑게 좀먹어들어가는 시선에 소름이 돋는다. 저 녀석은 나를─ 가늠하고 있다!

큭, 하고 사쿠야가 다시 목을 울리면서 웃는다. 즐거워서 참을 수가 없다는 듯 입을 길게 찢으면서 웃고 있었다. 손을 흔들 때마다 나이프가 세 개씩, 네 개씩 늘어난다. 슥. 그 순간, 사쿠야의 모습이 사라졌다.

"크윽!!!"

본능적으로 뒤를 돌면서 빗자루를 들었다. 시간을 뛰어넘고 공간을 가로질러 사쿠야가 모습을 나타냈다. 동시에 양 손에 들린 나이프가 그녀를 향해 날아들어왔다. 뒤로 넘어져 구르면서 나이프를 피해냈다. 사쿠야는 다시 나이프를 던진 방향에서 나타나 그것을 회수하고 집어넣었다. 순식간에 흙투성이가 되어버린 마리사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얌마, 스펠도 안 쓰고 이 무슨 무식한 짓이야?!"
"...스펠?"

사쿠야가 마리사의 말을 따라 읊었다. 의아한 듯 탁한 동공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짧게 생각을 가다듬고는 곧바로 말로 뱉어내었다.

"말(spell)? 어째서 그런 것이 필요해?"

사쿠야가 흉악하게 이를 드러내면서 웃는다.

"서로 죽이는 데에 그런 고상한 건 필요없어."
"이 여자가 진짜 미쳤나! 레밀리아한테 이를 줄 알아!!!"

사쿠야의 동작이 순간 멈추었다. 놓치지 않아. 마리사는 총탄이 되어 그녀의 몸 쪽으로 파고들었다. 일단 기절시키고 레이무에게든 레밀리아에게든 데려가자. 어떻게든 해결해 줄테니까. 일단은 이 녀석을 행동정지시켜야─

샤악.
목덜미에 닿는 서늘한 감촉.

"큿?!!!"

마리사는 목을 감싸면서 뒤로 물러섰다. 시간을 멈춘 사쿠야가 그녀의 목을 나이프로 베어내는 중이었다. 칼날이 파고들 때까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당연하지...!'

그것이 그녀의 능력. 시간을 다루는 것이니까. 하지만 사쿠야는 조금 놀란 듯이 그 희뿌연 홍안을 동그랗게 떴다. 의외로 말투는 침착하고 예의 있었다. 하지만 높낮이가 심하고 불안정하여,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신경을 뒤흔들고 있었다.

"피했네."
"아아. 이 몸은 이 환상향의 최속이니까!"

자신만만하게 멋대로 공언한 마리사를 보며 사쿠야가 다시 큭큭 목을 울리면서 웃는다. 점점 더 미소에 광기의 밀도가 더해가고 있었다. 야아, 멋진데. 그 표정. 까마귀 녀석이 있다면 당장 제보하고 싶구나. 저 녀석의 저런 얼굴. 당연히 톱기사 감인데. 저건 마치.

"살인귀."
"고마워요."

다리를 굽히면서 정중하게 인사한 사쿠야가 고개를 들고는 어깨를 두어번 움츠리면서 풀었다. 쉭, 쉭, 나이프의 개수를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마리사를 보면서 이야기했다.

"근간의 시간들이 잘 기억나지 않아. 골치 아픈 상황이지만, 그것보다 먼저 이 둔감해진 감각을 되찾지 않으면 안되겠지. 거기 네 녀석이 나를 도와줬으면 하는데."
"뭐야, 그거. 리허빌린가 하는 녀석?"
"...특이한 말을 쓰네. 계속해서."
"흥. 기분 나쁘냐?"

마리사가 퉁퉁거리면서 내뱉는 대답에 사쿠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정하게 매어놓은 녹색의 리본이 풀려서 그녀의 은발이 잔뜩 헝클어진 채로 하늘하늘 춤추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에 홀려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니. 오늘의 나는 기분이 좋아."
"하아?"
"나의 나이프를 두 번이나 피하던걸. 상대가 강하다는 건 나로서는 기뻐. 죽일 때의 흥분도가 격이 달라지는 걸."
"그 변태 발언. 고스란히 레밀리아한테 넘겨줄거다."
"...레밀...? 뭐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은 그만 둬."

심장이 욱씬거려서 기분 나빠.

"있잖아."

이 아이가 나를 바라보는 눈이 계속해서 변하지 않아. 사쿠야는 불쾌한 듯이 혀를 찼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그런 곧은 눈으로 쳐다보지 말아. 저주해라. 경멸해라. 인간임을 부정하며 걷어차. 두려워하고 경외하여 검을 겨눠. 겨눈 그 검으로 내 목을 찢고 그 피를 마셔. 시체를 짓밟고 그 위에 침을 뱉어, 갈기갈기 찢어서 이 존재를 말살시켜.

그리하여, 나의 시간을 멈춰라.

"나를, 죽여."
"하?! 야, 사쿠야. 적당히 안하면─."
"아핫!!!!"

사쿠야는 웃었다.

"큭! 처치곤란이구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쿠야에게는 스펠의 개념이 없었다. 그녀의 기술은 순수하게 그녀의 능력과 신체만으로 구사되는 살인술이었다. 나이프를 쥐고 휘두르고 던져서 사람의 살을 찢고 뼈를 부순다. 공격의 하나하나에 위협은 전혀 없다. 모든 것이 치명타, 모든 것이 목숨을 빼앗는 비수.

"젠장."

마리사는 팔괘로 대신 빗자루를 고쳐쥐었다. 그런 녀석에서 스펠 같은 건 쓸 수 없잖아. 체술이라고는 중국 녀석이랑 놀면서 겸사겸사 익혀둔 것 뿐인데. 고전하겠군. 피식,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사쿠야의 기척이 사라졌다.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는 순간 마리사는 정신을 자신의 신체에 집중시켰다. 몸에 닿는 날붙이의 감각을 느껴라. 그녀가 나의 시간에 침범하는 순간만이 반격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

"핫!!"

마리사는 정수리를 향해 내리꽂히고 있는 나이프를 빗겨 피해내면서 사쿠야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휘청, 흔들리는 사쿠야의 몸이 순간 사라졌다가 1미터 뒤에서 다시 나타난다.

"세 번째."
"하아?"
"세 번째로 피했군. 우연이 아냐."

촤르륵. 사쿠야는 나이프를 열 개 공중에서 펼쳤다가 다시 지워버렸다. 마리사는 놀라는 눈치도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쿠야는 눈썹을 찡그리면서 낮은 어조로 물었다.

"너는, 나의 트릭을 알아?"
"하? 무슨 소리야. 시간을 멈추는 거잖냐, 이 반칙 메이드야. 하여간 이 동네는 여기고 저기고 사기꾼들이라니까."

마리사의 말에 사쿠야는 눈을 크게 흡떴다. 순간적으로 눈이 본디의 맑은 푸른 빛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스멀스멀 붉어지기 시작했다. 까드득. 무언가 부수어지는 소리가 났다. 어금니를 너무 세게 악물어서 나는 마찰음이었다.

어째서 이 소녀는 그것을 알고 있는가.

"넌, 누구야."

어째서 나의 능력을 알고도 두려워 하지 않는 거야?
어째서 악마라고 매도하고 총을 겨누어서, 내가 너를 죽이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확립시키지 않아?

마리사는 씨익,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먼지투성이가 되어서도 그녀의 머리카락처럼 반짝거리는 미소였다.

"키리사메 마리사다. 네 친구잖냐."
"...하?"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너무나도 생소한 그 단어를 알고 있다한 듯, 이해하여 가슴으로 흡수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친구."
"어. 친구."

가각, 가가각. 머리 속의 수많은 톱니바퀴들이 흔들리면서 저릿한 금속성의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들기 위해 자신의 손에 나이프를 찔러넣었다.

"우악!! 얌마, 뭐 하는 짓이야!!"

아아, 알고 있다. 분명.
이해하고 인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친구'라는 것은,

그 때의 홍백과 흑백처럼─

"큿?!?!"

자신의 관자놀이를 구부린 집게 손가락으로 콰악 짓누르면서 사쿠야는 몸을 퉁겨 마리사에게로 쏘아져 들어갔다. 시간을 밟고 공간을 넘어, 찰나의 순간에 마리사의 앞에 나타났다. 크게 입을 벌리고 그녀의 하얀 목덜미를 물어뜯는다.

"으아아아아아악!!!!"
"크흑?!"

복부에 오는 둔중한 충격. 마리사의 정권이 그녀의 복부에 정확하게 틀어박혔다. 묵직한 주먹이었다. 반동을 이용해 뒤로 가볍게 튀어 물러나면서 나이프를 네 개씩 꺼내어 양 손가락 사이에 끼워넣는다. 순간적으로 막힌 호흡을 재빠르게 다스리면서 눈을 찡그렸다.

"좋긴 하지만."

문지기에 비하면 그다지─

"...?"

문지기란 누구? 사쿠야는 자신의 생각에 스스로 묻는다. 머리 속에 가득 끼어 있는 희뿌연 안개가 답을 내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쿠야는, 간신히 자신의 머리속에 그런 짙은 안개가 끼어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몸은 멈추지 않는다. 이 눈 앞에 있는 금발의 소녀를 살해하기 위해 전 세포가 살아서 날뛰기 시작했다. 사쿠야는 목에 둘러져 있는 천조각을 풀어내었다. 짧게 시간을 정지시킴과 동시에 상대의 목에 그것을 두르고 세차게 조였다.

"큭!!"

방심했다. 나이프의 차가운 감각에만 집중하고 있던 마리사는 자신의 목을 죄여오기 시작하는 머플러를 눈치채지 못했다. 황급히 그것을 풀어내려고 버둥거리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깊게 그녀의 살을 파고들었다.

"죽어."

사쿠야가 입을 열었다.

"죽어, 죽어, 죽어라, 죽어버려."

나직하게 읊어내는 그 소리는 ─괴로움에 몸서리를 치면서 내뱉는 절규였다. 어째서 이 사람은 이렇게도 슬플까. 마리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분명 사귐은 깊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은 분명하게 이 녀석을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사쿠야는 그저 싱긋 웃으면서 자신의 시간을, 공간을 숨긴다. 그렇기에 무엇을 해도 다가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하게 알고 있다.

"사쿠야아아아아아!!!!!"

마리사는 목이 막히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쳤다. 숲이 그녀의 목소리에 응답하듯 웅웅 진동했다. 흠칫, 하고 사쿠야의 몸이 작게 떨리는 순간 마리사가 사쿠아에게서 벗어나면서 머플러를 가로챘다. 그녀는 그대로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그것을 그녀의 코 앞에 들이밀었다. 눈을 부릅뜨고, 사납게 소리친다.

"레밀리아는 사람을 죽이라고 너한테 이걸 준 게 아냐!!!!"
"...뭐?"

흐읍. 마리사는 숨을 들이켰다.

"돌아오라고!!!!"

마리사의 길고 우렁찬 외침에 사쿠야는 눈을 크게 흡떴다.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하는 그 모습은 마치 맹수와도 같았다. 그 목소리에 이끌려 그녀는 묻는다.


어디로?



답은, 곧 기억이 날 것 같은데─


"뭣?!"

자신의 가슴팍까지 파고들어 있는 마리사를 본 사쿠야는 황급히 그녀의 어깨에 나이프를 박아넣었다. 콰득, 콰득, 살을 뚫고 틀어박히는 나이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턱에 마리사는 주먹을 꽂아넣는다. 스매쉬라고 하는 녀석, 분명 홍마관의 문지기에게 체술을 가르쳐달라고 졸라서 얻어낸 기술 중의 하나.

시간을 멈출 새도 없이, 그녀는 그 충격을 고스란히 뇌로 흡수했다.

"!!"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격렬한 충격에 시야가 일변한다.
그녀의 내부에 있는 시간이 뒤엉킨다.






[네가 먼저 발견하면 어쩔건데?]
[물론 내가 없앤다!!]
[...그러니.]

하늘을 날고 있던 홍백의 무녀와 흑백의 마녀.
무척이나 사이가 좋아보였던 것 같았다.









[그렇다면 계속 함께 있을 수 있을텐데.]
[저는 일생동안 살고서 죽을 거에요. 괜찮아요, 살아 있는 동안은 곁에 있을테니.]

악마의 날개를 가진 어린 소녀는 차가운 대답에 눈을 크게 떠 보일 뿐이었고,
그렇게 그녀를 상처주었던 것에 후회했다.










[지옥이라 해 봤자, 마계보단 무섭지 않아.
귀신이라고 해도, 악마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지.]

틈새에 사는 요괴를 향해 그렇게 호언한 적이 있다.








[햇볕이 방해되기 때문이야. 아가씨는 어둠을 좋아하시니까.]

그렇기 때문에 원한다면 모든 것을 바쳐 그 바램을 이루어 드리겠노라고─







아가씨란 누구?









[예쁜 밤이죠? 마치 당신과 나의 만남을 축복해주듯이.]

[나는 레밀리아. 레밀리아 스칼렛.]

[당신이 원한다면, 이 밤을 당신에게 선사하지.]

[그래. 16일의 달밤.]


─이자요이 사쿠야.


나의 모든 죄는 그녀에게 용서받고,
나의 모든 시간이 그녀에게 귀속되어,

악마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나는 인간이 된다.












"크-핫!!!"

사쿠야의 입에서 한 웅큼의 피가 터져나왔다. 그 사이에 섞여 있는 빛나는 결정을, 마리사는 눈치챘다. 된걸까, 이걸로? 마리사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가 떨어지는 그녀의 몸을 받아들었다. 피를 많이 흘린 터라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마리사는 균형을 잃고 넘어지면서 사쿠야와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칼이 박힌 어깨가 아직도 욱신거린다. 아직도 녀석이 제정신이 아니라면?

...뭐, 그대로 17조각이 나는 수 밖에 없는거지.

"풋."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마리사의 목소리에 응하듯, 희미한 소녀의 목소리가 사쿠야의 입술을 타고 흘러나온다. 피곤에 잔뜩 절어있었지만, 그 낭랑한 음색만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웃음이 나오니...?"
"이야하하... 가 아니라, 이 자식! 작작 좀 하지 못해?! 내 어깨 변상해!!"
"후후, 미안하게 됐네."

사쿠야는 마리사의 몸에 기대어서 천천히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아아, 따듯해서 기분이 좋다. 급박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좀처럼 몸이 움직여 주지 않는다. 그녀는 전신에 힘을 빼고 마리사의 몸에 기대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리사."
"앙?"
"나는, 인간?"
"...무슨 소리냐. 당연하잖아."

"그리고, 당신의 친구?"

사쿠야는 주저하며 묻는다.

"아아,"

대답은 곧 시원스럽게 터져나온다. 언제나 그랬듯이, 청량한 음색으로 일직선.

"물론."

후, 목을 울리면서 사쿠야는 웃었다. 유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웃음이 멈추지 않아 한참을 그렇게 웃어야만 했다. 마리사는 '뭐야, 이 녀석, 이번에는 웃음 귀신이라도 씌인건가?'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제대로 그녀의 몸을 잡아 쓰러지지 않도록 받쳐주었다.

"뭐, 좋아요."

샤악.

어느새 마리사의 품에서 벗어난 사쿠야는 마리사에게서 세 걸음 정도 물러난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더러워진 옷을 정리하고 머리를 가다듬는다. 그리고 목에 다시 천천히 머플러를 둘렀다. 에? 마리사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빼 갔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마리사는 소리없이 웃는다. 왠지 모르게 그 모습이 귀엽다고 느껴졌다. 정확한 나이는 들은 적이 없지만 항상 어른스럽기에 연상처럼 보였던 그녀가, 지금 이 순간은 자신과 별다를 것 없는 또래의 소녀로만 보인다.

"홍백에게 가서 전해주세요. 적은 대강 알 것 같으니."
"엉?! 정말?"
"에에. 기억을 조작하는 녀석인 것 같네. 한심한 재간에 놀아난 것 같지만. 덕분에 상대의 기척도 잡았고."
"후응... 그런가. 복수전인가!"
"........항상 인생이 간단해서 좋겠네, 당신은."
"부럽냐?"

가슴을 내밀면서 당당하게 어깃장을 놓는 그녀를 보면서 사쿠야는 평소같이 '아니'하고 서늘하게 내뱉으려다가 곧 그만두었다. 아아, 오늘은 제법 폐를 끼쳤으니까, 조금은 어울려주어도 괜찮겠지.

"부럽네."













"서세요, 망령."

사쿠야는 소녀의 혼을 향해 선언했다. 둥실둥실, 소녀의 주변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입자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흠칫. 작게 떨리는 어깨에 동정하는 순간, 곧 그 마음을 깨끗하게 지워버릴 정도의 기세로 상대가 돌아보았다. 감정의 소용돌이가 희미하게 어른거린다. 증오, 분노, 좌절, 어느 것 하나 긍정적인 것이 없는 마이너스적인 감정들. 사지만 사쿠야는 눈을 찌푸리는 일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소녀의 모습을 한 영혼이 손을 들면서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머리에 직접 그 의미가 전달되어 온다.

[당.신.이.라.면. 나.를. 이.해.해. 줄.거.라. 생.각.했.는.데.]

"에에. 이해해요. 하지만 이해와 동조는 다른 거야. 당신이 앞으로 하려는 일이 무언지는 잘 알았고, 그것을 저지하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끝나는거지."

소녀는 눈을 흡떴다. 하지만 분노보다 먼저 슬픔이 느껴지는 것은, 사쿠야이기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능 때문에 박해받고 버려진 소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점점 더 상황을 악화시켜─ 마침내 인간을 포기한다. 모두가 포기하라고 강요했기에.

[당.신.도. 인.간.이. 아.니.잖.아.]
"실례네."

슥. 자신의 은발을 매만지면서 사쿠야는 눈을 가볍게 흘겼다.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희미하게 비추었다.

"내가 인간이라고, 말해 준 사람이 있어."
[??]
"답은, 그거로도 충분해."

원했던 것은 단지 하나.
존재를 허락받고, 이 생을 용서받는다.

인간으로서.


소녀의 망령이 포효한다.
동물의, 짐승의 울음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 그 거대한 비명에도 불구하고, 사쿠야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가는 정확하게 포착하였다. 망설이지 않고, 그녀를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내딛어오는 걸음에 적의가 없음을 알고 소녀의 망령은 진심으로 의아해하고 있었다. 아아, 그렇겠지. 두려웠기 때문에 다가가지 않는다. 멀찍히 서서 돌을 던질 뿐, 상냥하게 말을 건넬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아이에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단 한마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텐데.

사쿠야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당신도,"

낭랑한 목소리가 숲을 꿰뚫었다.

"인간."

악마에게 구원받았던 그 날을 떠올리게 해 준 마법사를 생각하면서,
사쿠야는 행복하게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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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쿠야는 이후 개차발려서 사망 플래그('그녀-일주일'로 이어짐). 맘에 드니? 맘에 들어? H님이랑 S님아 ^ㅁ^ (...) 샄마 쓰래서 용트림 좀 해봤어요... 글 쓰면서 윈엠에 오직 한 곡 매드 Scarlet Knives 삽입곡인 蒼き炎만 넣고 무한 재생했거든요. 사실 이거 보고 감동받아서 '맛 간 사쿠야를 꼭 써보이고 말겠어!!'라고 다짐했다가 '샄마 써주셈'이란 리퀘를 받고 나온 작품...

미안해요. 샄마 달달물 썼다간 앨리스가 울 것 같아서 못하겠더라고요...

제목은 또 적당히 지었습니다. 내용이랑 별로 연관없는 것 같은데...라는 건 기분 탓이 아닙니다.


...그나저나 생각해보니 의외로 사쿠야 관련 SS를 많이 썼네요. 미안 레이무, 다음에는 꼭 너를 주역으로 에로를(됐거든...)


by 상흔 | 2007/07/29 03:10 | └ fan fiction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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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후렝 at 2007/07/29 05:59
저 녀석의 저런 얼굴. 당연히 톱기사 감인데. 저건 마치.

"살인귀."
"고마워요."

이부분 왤케 좋죠???????ㅠㅠ???;;;;; 악 막 사쿠야미소가 상상가서 완전 오싹해써/ㄷㄷ
(숑가느라 오싹..(..)

님 근데 저래놓고 사쿠야 죽으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게 뭔쪽이야 ㅠㅠ으앙;;;;;
Commented by chizru at 2007/07/31 20:45
후렝/ 왜!! 멋지잖아!! 간지났잖아!! 적어도 이 편에서는 안죽잖아......./라썩1 어휴, 전 왤케 사쿠야 맛간모드가 좋죠 ㅠㅠㅠㅠ
Commented by 새-하 at 2007/08/01 01:48
아 미친 사쿠야 넘 좋아..
님 왜 우리 사쿠야 죽여!!!!!!!!!!!ㅠㅠㅠㅠㅠ 아 마리사 터지는 건 좋네요..
Commented by 상흔 at 2007/08/01 23:16
새-하/ 나도 짱 조아 ㅠㅠㅠㅠㅠㅠ 왜 죽였다 그래여:@! 여기선 안 죽었잖아... 그리고 담 편에 죽는 거 따지고 보면 님들때문이잖아... 사쿠야 죽으면 레미랴 울겠지 ㅋㅋㅋ 하고 나의 팬심을 자극해 놓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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