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無題

06.12.08. 동방 프로젝트 ss
처음으로 써본 동방 팬픽. 제목조차 안 정하고 다른 포스팅에 곁다리로 붙여서 올렸던 작. 초기작이라 렝마. 이 때는 그다지 불타오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완전 동방 홀릭이야. 시들해가던 동인심이 다시 장르를 바꿔 불타오르는 건 좋은데... 공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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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흔



발로 땅을 구르면 하늘을 날 수 있다. 어떠한 준비도,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 하쿠레이의 무녀가 갖는 힘은 갈구해서 얻어지는 성과물이 아니다. 숨을 쉬는 것처럼 지극히 당연하게, 그것은 이 두 손에 있다.

"..."

손에 쥐인 대빗자루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나무로 만들어진 딱딱한 봉에 가지를 엮어서 만든 평범한 빗자루이다. 다리를 걸쳐 그 위에 앉는다고 해서 하늘은 난다던가 하는 효과는 없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녀는 날기 위해서 빗자루를 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가끔씩 한가할 때, 가볍게 신사의 마당을 쓸어내는 정도다. 하쿠레이의 신사 안에서는 모든 것이 일상적,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의 역할을 지닌다. 찻잔에 먹물을 담는다던가, 이불을 망토로 하여 두른다던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혹자는 그것을 '따분하다'고도 말한다.

"오늘의 손님은 나 뿐인가?"

눈 앞의 공간이 길게 찢어졌다. 사이로 팔랑거리는 옷자락과 화려한 금은발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태양이 그리 비치지도 않는데-랄까 오늘은 흐렸다.- 양산을 펼치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상식에서 어긋나 있다.

"가끔은 한가한 것도 좋네."
"신사는 만남의 광장 같은 곳이 아냐."

레이무는 나타난 경계의 요괴에게 툭 쏘아붙이면서 벌써 몇 번이나 쓸어냈던 마당을 다시 쓸기 시작했다. 조금씩 옆으로 이동해가는 레이무를 따라 유카리도 종종걸음으로 쫓는다.

"..."
"..."
"..."
"...차라도?"
"그건 찾아온 쪽에서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은데."

삭, 삭, 가벼운 마찰음과 함께 바닥에서 모래가 일어났다. 바람에 까만 흑발이 살랑거리면서 흔들렸다. 움직임에 맞추어 나풀거리는 홍백의 옷. 그 모습을 가만히 눈으로 음미하면서 느린 걸음으로 그녀의 걸음을 따랐다. 보다못한 레이무가 드디어 빗자루를 움직이는 손을 멈추었다.

"정신사납네. 앉아있기라도 해."
"주인이 일하는데 손님이 방해는 할 수 없지."
"...어디서 상식적인 척 하고 있는 거야. 설마 어딘가 아픈가?"

의아한 듯 하지만 결국 아무래도 좋다는 말투였다. 그렇지. 그야말로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게 너의 마음. 유카리는 그런 레이무의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고작 인간이면서, 쓸데없을 정도까지 관대한 그 포용력. 좋게 들리는 것 같지만 결국 그건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녀의 앞에서는 누구나가 평등하다. 그렇다는 것은 누구나가 그녀에게는 특별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유카리에게조차도 평등하다. 유카리에게 있어 그것은 제법 신선한 기분이었고, 또 흥미를 돋게 만드는 일이었다.

"훗, 후후..."
"기분나쁘게 웃네."

하지만 요즘의 그녀는 조금 유카리를 즐겁게 만들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아까 전부터 삐걱거리는 태도로 빗자루질을 하면서 옅은 밀도의 초조함을 발산하고 있는 레이무의 태도 같은 것이랄까. 근래의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유쾌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 작디 작은 변화의 시작점은 언제 시작했는지조차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보잘 것 없었다. 그것이 꾸준히 시간을 쌓아가면서 겹치고 쌓여, 이제는 유카리의 눈에 간혹가다 잡힐 정도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감이 예리하기로 유명한 레이무가 정작 자신의 변화를 눈치채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은 느낌이 좋다. 어쩌면 레이무를 이렇게 변화시킨 그 작은 불씨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뭐야. 누군가라도 기다리는 거야?"

유카리는 레이무를 관찰하다가 문득 그렇게 물었다. 아까 전부터 묘하게 흘끗거리면서 신사의 입구 쪽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레이무는 조금 놀란 눈을 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왜?"
"...왜? 냐니. 아까 전부터 계속 문 쪽을 바라보고 있잖아."
"그런 적 없어."

흔들림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목소리로 그렇게 잘라 말했다. 그런 말이 오히려 마음의 흔들림을 보여주는 거라고, 유카리는 멋대로 단정했다.

"그럼 이제 들어가서 차라도 하는 게 어때. 벌써 몇 번이나 쓸었잖아."
"...아아. 그랬나?"

그러고보니 왜 계속 마당을 쓸고 있었을까. 평소라면 느긋하게 툇마루에 앉아서 오후의 차를 즐기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레이무는 왠지 모를 압력에 밀려서 빗자루를 쥐고 마당으로 나온 것이다. 툇마루보다는 마당이 좋다. 신사의 입구가 더 잘 보이니까.

"...어라...?"

왜 입구가 잘 보여야 하는 거지? 방금 전 유카리의 '계속 문 쪽을 바라보고 있잖아'라는 발언이 새삼 다시 머리 속에 휘돌았다. 그러고보니 몸은 항상 문이 잘 보이는 방향으로 돌려져 있었다. 입구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만을 계속 쓸고 있었다.

"음. 생각해보니 그럴지도."
"뭘 혼자 중얼거리고 있어? 그렇게 맥락없이 말하면 상대가 알아듣지 못해."
"그러고보니 요 며칠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그 녀석."

레이무는 간신히 오늘 아침부터 내내 자신의 가슴 한 구석을 묵지근하게 누르고 있던 '무언가'의 원인을 알아냈다. 그래. 지금까지의 패턴대로라면 이미 며칠 전에 그 녀석이 찾아왔어야 했는데.

"뭐야. 역시 신경 쓰여? 올 사람이 있다던가."
"...아니. 별로."

부정하기 전에 호흡이 살짝 떨리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레이무 자신이 여전히 눈치채고 있지 못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아아, 모든 것이 이미 있는 그대로라는, 신비한 무녀님도 갖지 못한 것은 있구나. 유카리는 한 쪽 입꼬리를 슬쩍 올려 미소지었다. 늘 그렇듯이 수상하기가 이를데 없는 웃음이었다. 당연히 마음에 들리가 없어서, 레이무는 가볍게 쏘아붙였다.

"뭐야. 그 웃음은."
"아니. 꽤 귀엽게 변했구나-하고."
"...하아?"

레이무의 의아한 되물음에도 아랑곳없이 마이페이스를 유지한 채로 유카리가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대체 어떤 게 그 천하의 하쿠레이를 변하게 했나 했었는데. 과연, 재미있어."
"...뭐야. 넌 요즘 내가 왜 이러는지 알겠다는 거야?"
"아니, 모르겠는데. 뭐든 어때."
"호오. 수상한 대답이네."

레이무는 마침 좋은 건수를 만났다는 듯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뻗었다. 갑자기 뿜어나오는 살기에 유카리가 가볍게 뒤로 뛰어 물러섰다.

"역시 그렇게 나오시겠다."
"수상한 네 녀석을 두들겨 준 뒤 대답을 받아내겠어. 안 그래도 요즘 그 녀석이 찾아오지 않아서 몸이 근질근질했었거든."
"모른다고 한 말을 이렇게까지 무시하다니, 역시 하쿠레이의 무녀..."

둘의 주변에 긴박감이 가득 들어찼다. 서서히 거리를 벌리면서 힘을 뭄친 탄환을 뽑아냈다. 시작의 신호는 아마도 레이무부터겠지. 그녀가 들고 있는 탄을 던지면, 열심히 쓸어놓았던 마당 정도는 순식간에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싸움판이 만들어진다.

"어-이! 있냐, 레이무!"

그리고 그 긴장의 실을 툭 끊으면서 신사의 입구에서부터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입구를 등지고 있던 레이무의 고개가 순식간에 그 쪽을 향해 돌아갔다. 아아, 심하다. 아무리 도중이 아니라고는 해도 막 싸움을 걸었던 상대에게서 순식간에 신경을 끊어버리다니. 레이무답지 않은 걸. 그렇게 생각하다가 입구 쪽을 향하고 있는 레이무의 옆 얼굴을 보고 깨달아버렸다.

"뭐-야."

꽤나 시시한 거였잖아. 그런 어감이 가득 찬 유카리의 목소리에 레이무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를 향했다. 시비를 거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대로 탄을 던지려다가, 유카리의 얼굴을 보고 잠시 팔을 멈춘다. 한 발 앞서 알아냈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평소와는 다르게 가만히 서서, 다음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유카리는 웃음을 섞어서 가볍게 말했다.

"연애하고 있는 거였잖아."
"읏...?!"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 하나에 레이무는 스펠 발동 후 모든 탄을 직격받은 것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은 얼굴로 뻐금뻐금 이어야할 말을 찾는다. 하지만 당연히 새하얗게 비어버린 머리 속에서 이렇다할 만한 단어를 엮을 수 있을리가 없다. 그저 얼굴만 새빨갛게 물들이고는 격렬하게 동요하면서 유카리의 말을 고스란히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역시 너도 인간이긴 하구나. 확실히 사랑이라는 게 사람개조의 특효약이기는하지."
"웃... 그... 으..."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하고 유카리의 조롱에 가까운 말을 남김없이 들이부어지는 동안, 마리사가 날렵한 동작으로 가까워져왔다. 비뚤어진 모자를 고쳐쓰면서 주변을 둘러보고는 레이무를 쳐다보았다.

"뭐야, 먼저 온 사람이 있었나... 이 시간이면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우..."
"그나저나 이번에는 꽤나 자신있으니까 승부...어라? 얼굴 왜 그래?"
"...."
"어디 안 좋은가? 그럼 곤란한데."

그렇게 말하면서 앞에서 키득키득 웃고 있는 유카리를 흘끗 쳐다보았다. 보니까 방금전까지 바로 치고박고 할 듯이 노려보고 있었는데, 레이무의 상태는 영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럼 잘해봐."
"어?

탄막전은 무리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유카리가 그런 말을 남기고는 허공을 갈라 틈새로 쏙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음? 뭘 잘해? 어라? 레이무 괜찮냐? 어이."
"...으으으으..."

레이무의 얼굴이 이상하게 붉었다. 그 천하의 깡패무녀가 이 정도로 동요하고 있는 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왠지 전염성을 갖고 있는 듯해서, 그녀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것을 보는 동안 마리사의 얼굴까지도 불이 옮겨 붙었다.

"레이무...? 몸이 안 좋으면 오늘은 그냥 돌아갈까?"
"...!"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마리사의 팔을 레이무가 붙잡았다. 바이스로 꽉 죈 듯이 강한 힘이어서 옷이 튿어지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몸이 크게 휘청였다. 간신히 균형을 잡고 고개를 돌리면,

"우아아아악?!?!"

평소보다 배는 큰 탄이 자신의 얼굴로 날아들고 있었다. 마리사는 혼신의 힘을 다해 레이무를 밀어내면서 몸을 굴렸다. 날카롭게 얼굴을 스치고 멀리 날아가는 탄을 신경 쓸 여유도 없이 곧바로 무차별적으로 탄이 쏟아진다.

"갑자기 이러는 게 어딨어!!"
"알게 뭐야! 네가 원흉이구나!"
"뭐?! 뭐? 또 뭔가 일이 일어났어? 어쨌든 난 아니..."
"일단 맞아라!!!"
"그게 뭔데?!"

혹자가 말하기를, 사랑에 빠진 소녀만큼 강한 종도 없다고 하지.
오늘의 결과도 말할 것 없이, 마리사의 참패였다.


by 상흔 | 2007/07/26 02:21 | └ fan fiction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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