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그녀가 집 나간지 일주일 째 무소식

'사쿠야가 죽으면 레밀리아는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한 글. 그리고 아마 이 글을 기점으로 대부분의 ss는 앞으로 이 곳에 올릴 예정. 부분적 이사라는 느낌으로 첫 스타트.





'아아. 곤란한데.'

새하얗게 쌓인 눈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서, 이자요이 사쿠야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집 나간지 일주일 째 무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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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흔



자신이 언젠가 아가씨의 곁을 떠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사쿠야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작고 귀여운, 그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그녀의 곁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살아있을 때까지만이다. 살아있는 평생 그녀를 따르고, 죽게 되었을 때 아무런 미련없이 그 곁을 떠난다. 그렇다. 아무런 미련도 없이.

그랬을 터인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갑작스럽달까.'

사쿠야는 몽롱한 머리로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눈 앞에서 하늘하늘 춤추면서 떨어져내리는 눈송이가 더더욱 혼미감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눈 속에 서서히 파묻히면서 끈적하게 피를 토해내고 있는 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온도를 감각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하앗."

사쿠야는 눈을 감고 크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폐가 찢어지는 듯한 격통에 이를 깨물면서 눈썹을 찡그렸다. 체력도 마력도 이미 바닥 나 있는 상태였다. 시간 조작할 기력을 회복하기 전에 아마 신체 기능이 전부 그 명을 다하게 되겠지.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누워서 눈이 내리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죽어가는 것 뿐이었다.

'싫은데...'

끝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사쿠야였기 때문에, 오히려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끝은, 죽음은 조금 더 후에, 홍마관에서 사라질 준비를 모두 마친 후에야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형편없는 문지기가 조금 더 세련되게 불청객들을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훈련 시켜놓고, 도서관의 소녀와 그 시종에게 책의 보존과 정리정돈을 항상 염두에 두도록, 늘 갇혀 지내야 하는 작디 작은 악동 한 명의 뒷바라지를 해 낼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의 메이드들을 선발해 두어야 하고, 그리고 아가씨가 사쿠야 자신 없이도 홍차를 마시며 하루를 보낼 수 있게 서서히─ 레밀리아 본인도 모르도록 서서히 '사쿠야가 없는 일상'을 마련한다. 자신이 따르는 아가씨인 레밀리아가 고작 메이드 한 명이 없어졌을 것이라고 해도 흔들리는 일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자신의 옷을 골라주던 메이드가, 자신의 홍차를 끓여주던 메이드가, 자신의 잠자리를 준비해주던 메이드가 사라져버린다면 불편함을 느낄 테니까. 그런 정도의 일이다. 곧 익숙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작 그런 정도의 일이라고는 해도 사쿠야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자신이 보필하는 아가씨와, 그녀의 가족이다. 자신의 죽음 정도에 실낱같은 미풍이라도 느껴져서는, 하물며 그것으로 인해 불편함을 겪게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확실히 너무 물렀을지도 몰라.'

천천히 공을 들여서 죽음의 준비를 하겠다는 계획이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죽음이 찾아와버릴 줄이야. 지극히 초보적인 실수였다. 부끄러워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정도야. 사쿠야는 돌아가지 않는 목에 억지로 힘을 넣었다. 위로 목을 들어 저 멀리 있는 홍마관이 있는 방향을 향해 희뿌옇게 흐려져가는 시야를 돌렸다. 아아, 멀다. 다가가기에는 너무나도 멀었다.

"하."

목에 감기는 방한용의 머플러의 감촉을 느끼면서 사쿠야는 씁쓸하게 웃었다. 안되는데. 어서 돌아가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미령을 걷어차 주지 않으면, 얇은 옷 한 장만으로 서늘한 공기로 가득찬 도서관을 누비고 있을 파츄리님에게 따뜻한 차를 끓여주지 않으면, 심심하다고 칭얼대다가 건물의 벽을 쾅쾅 부수어 댈 작은 아가씨의 상대를 해드리지 않으면, 불안한 눈으로 머플러를 둘러주면서 몸 조심하라고 몇 번이고 당부하던 아가씨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는데.

"----?!!"

사쿠야의 눈 앞에 홍백의 색이 휘돌았다. 그녀를 향해 무언가 외치고 있었지만 전혀 들리지 않는다. 아아, 하지만 저 태평한 무녀가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인데. 아가씨에게 말해 준다면 분명 귀여운 볼을 부풀리면서 '치사해, 사쿠야! 혼자서만 그런 재미있는 걸 보고 오다니!'라면서 입술을 내밀고 투덜거리겠지. 하지만 사쿠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끝이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길게 말한 시간도, 힘도 없다. 사쿠야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목을 간질이는 머플러에 살짝 턱을 묻고 웃으면서 자신에게 바싹 얼굴을 들이대고 있는 레이무에게 똑똑히 보이도록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아, 가, 씨, 를-

야속한 시간은 그 한마디를 다 끝맺을 여유도 주지 않은 채,
사쿠야는 그렇게 숨을 거두었다.







침착했다.
마리사가 레밀리아를 만나자마자 느낀 감정이었다. 서늘하게 식어있는 홀에 굳은 얼굴로 앉아있는 마리사를 바라보는 레밀리아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핏기 없이 창백했다.

'중국 녀석이 그렇게나 3일 밤낮 펑펑 울었습니다-하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그냥 통과시켜주길래 완전히 초상집이라도 된 줄 알았더니. 의외로군.'

그야 평소의 홍마관과는 다르다. 한 층 더 어두워진, 한 겹 더 감싸인, 어딘지 모르게 조금 답답한 기분. 하지만 그것은 이 홍마관 전체에 감돌고 있는 감각이었다. 그 정도도 공기가 변하지 않을리가 없다. 어찌되었든간에 이 홍마관의 전반적인 일상을 모조리 책임지고 있던 메이드장, 이자요이 사쿠야가 죽은 것이다.

홍마관의 일상이 변했다.

마리사는 레이무가 건네주었던 사쿠야의 머플러를 쥐고 있던 손에 꾸욱 힘을 넣었다. 자신의 소맷자락 같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떠올랐다. 레이무 역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환상향에 크고 작은 이변이야 늘상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 이변에 의해 이런 희생이 일어난 것은 적어도 그녀들의 역사에 있어서는 처음이었다.

"..."

커다란 의자에 다리를 끌어당겨 앉아있는 레밀리아는 초점이 살짝 어긋난 눈동자로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전부터 줄곧 이런 상태였다. 잔뜩 목이 쉬어있는 중국의 머리를 거칠게 두드려 위로해준 다음에 휘적휘적 걸어들어와보니, 손님이 온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 레밀리아는 놀라지도 않고 그녀에게 흘끗 시선을 던지고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것으로 끝. 30분이 넘게 시간이 지나고 있지만 허공을 떠다니는 것은 말이 아닌 침묵 뿐이다. 마리사조차도, 섣불리 말을 꺼낼 수 없다. 이 공기는 마치 얇디 얇은 유리와도 같았다.

누구라도 먼저 운을 띄우면, 산산조각 깨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달칵.

결국 그 공간에 가장 먼저 소리를 들인 것은 마리사도 레밀리아도 아닌, 제 3자.

"...요오."
"어머. 안녕."

파츄리였다. 사락사락 가볍게 발을 끌면서 걸어온 그녀는 자연스럽게 마리사의 앞에 앉으면서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았다. 앉기 직전에 가볍게 레밀리아에게 눈길을 주었지만, 그것 뿐이었다.

"어쩐 일이야? 책 도둑질을 하러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어이어이. 누가 들으면 마치 영영 훔쳐가기라도 한 것 같잖아. 단지 조금 오래동안 빌리고 있을 뿐인데."
"보통 그런 것을 훔쳐갔다고 말하지."

파츄리는 한숨을 내쉬다가 마리사가 손에 쥐고 꼬물거리는 머플러를 알아차렸다. 눈에 익은 색과 모양. 누구의 것인지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파츄리는 고개를 들어 살며시 허공을 훑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낱말의 조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안 봐도 뻔한 이야기다. 둘 다 아무 말 없이 침묵만을 고수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는 고집쟁이, 하나는 요령제로. 여기서는 내가 총대를 맬 수 밖에 없는 걸까. 그녀는 살짝 눈을 내리깔고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일은, 잘 해결됐어?"
"에? 아아... 뭐. 어떻게든."

마리사의 어깨가 흠칫하고 작게 떨렸다. 레밀리아는 미동조차 없다. 파츄리가 꺼낸 말에 일말의 반응도 보여주지 않았다. 마리사는 흘끔흘끔 레밀리아 쪽을 몇 번 보면서 천천히 목을 가다듬었다.

"인간이 아니면 손 댈 수 없었다는 점이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다들 도와준데다가. 그 녀석이, 대부분... 해냈으니까."
"...그래."
"이런저런 뒷정리가 남기는 했지만 어려운 건 아니고. 레이무가 좀 더 회복되면 같이 처리하면 되니까."
"그건 다행이네."
"아아. 그렇게 됐다. 아직 움직이지 못하는 녀석의 몫까지 대신해서 내가 왔어."
"응?"
"고맙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말을 이으려던 파츄리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사쿠야가 죽은지 3일 째. 홍마관에서는 여전히 '사쿠야'라는 단어는 금기였다. 어느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어느 누구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래..."

한참 후에야 레밀리아가 입을 열었다. 오랫동안 습기를 머금지 못해 살짝 갈라진 듯한 목소리가 나왔다. 눈이 쏟아지는 창 밖에서 눈을 돌려 천천히 마리사와 파츄리를 쳐다보았다.

"고마울 건 없어. 힘을 쓴 건 다들 마찬가지겠지."
"아... 그, 으음."

긍정을 해야할지, 부정을 해야할지 감을 잡지 못한 마리사는 몇 번 말을 더듬다가 곧 침묵을 지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레밀리아는 후우- 하고 실낱같은 바람이 새는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입꼬리를 당기면서 작은 송곳니를 드러내었다.

"그러고보니 손님이 오셨는데 이거 결례를 범했군. 제대로 대접도 못하고."
"...어엉? 언제는 했다고? 새삼스럽게."
"오늘 당신은 손님이야. 평소는 그저 도둑 혹은 침입자."
"뭐, 견해 차이라는 거지."

레밀리아의 목소리에 서서히 장난기가 도는 것을 느낀 마리사는 그제야 조금 마음을 놓으면서 꽉 조이고 있던 어깨를 느슨하게 풀었다. 파츄리도 내려놓은 책에 다시 손을 얹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렇네. 홍차 정도는 내왔어야지, 레미."
"마침 티 타임이야. 마리사도 잠깐 어울렸다가 가."
"오우. 신세 진다."

마리사의 기운 찬 대답에 레밀리아는 웃으면서 문 밖을 바라보았다.

"그럼,"

시선을 돌리면서 연 그 입술이,

"사쿠야."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익숙한 세 글자의 조합을 만들어내었다.

"....어이, 레..."
"...아아...이런."

마리사의 작은 목소리에 더더욱 작은 목소리가 덧씌워졌다. 문에 고정되어 있는 붉은 시선은 못 박힌 채 굳어져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간절하게, 간절하게 오로지 하나의 소망만을 담아 그 문을 쳐다보았다. 레밀리아는 그렇게 서서 당장이라도 문이 열리고, '부르셨습니까, 아가씨'하고 말하며 들어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젠장... 역시 무리야. 이런 건.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콰앙! 잔뜩 힘이 들어간 마리사의 손이 소파의 손잡이 부분을 세차게 내리쳤다. 삐걱거리는 기분 나쁜 마찰음은 틀림없이 위와 아래의 어금니가 맞부딪히면서 내는 불협화음이다. 파츄리는 들었던 책을 다시 내려놓았다.

"네 탓이 아냐."
"...조금만 더 빨리 도우러 갔었더라면...!"

욱신거리는 자신의 손을 감싸기 위해 다른 손을 움직이던 마리사의 눈이 그 손에 쥐어져 있던 머플러에 멎었다. 얇지만 무척이나 따뜻하고 보드라운 감촉.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목에 감겨 바람에 너울거리던 머플러였다.

"...돌려줄께."

마리사는 벗어두었던 자신의 모자를 뒤집어 쓰고 일어서서 머플러를 레밀리아에게 내밀었다. 그제서야 문에서 눈을 돌린 그녀는 그것을 처음 보는 물건이라도 되는 양 한참을 바라보았다. 1초 1초가 지날 때마다 심장에 바늘을 하나씩 찔러넣는 듯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길게 흘려보낸 다음에야 레밀리아가 '아아' 하는 작은 탄성과 함께 손을 뻗어 그것을 집어들었다.

"...아아."
"그 녀석은...마지막에 너를 불렀다고, 레이무가 그랬어."
"..."
"엄청나게 말이 안되는 거라는 걸 알지만, 기운 내. 그리고 미안해."

레밀리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리사는 그런 그녀의 앞에서 천천히 몸을 돌렸다. 파츄리가 길을 안내한다는 명목을 붙여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섰다. 물론 마리사에게 길의 안내같은 것은 필요없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에 이의를 표명하지는 않았다.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나가고,

쿵─

문이 닫혔다.

"이상하네..."

진초록의 머플러를 유심히 바라보던 레밀리아는 작게 실소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닿지 않은 채 허공을 빙빙 맴돌았다. 손가락으로 그것을 천천히 문지르면서 입술을 달싹여간다.

"사쿠야가 돌려주지 않아."

나는 분명 사쿠야에게 빌려주고, 돌아와서 돌려달라고 했는데.

"그럼 이건 내 게 아닌데."

그러니까 마리사가 돌려준 이 머플러는 내 것이 아냐. 레밀리아의 손에서 천천히 머플러가 빠져나간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흘러내려간 그것은 이내 바닥으로 힘 없이 떨어져내렸다.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던 레밀리아가 다시 창 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흰 눈을 아낌없이 흩뿌려대는 희뿌연 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 본다.

"...늦네..."

터덜터덜 의자로 다가가 훌쩍 뛰어 올라 앉은 레밀리아는 몸을 둥글게 말고는 눈만을 들어 창 밖에 고정시킨다.

금방이라고 말했으면서.
티 타임에 늦지 않도록 돌아온다고 했으면서.
홍백흑백이 있으니 다칠 일은 없을거라 했으면서.

절대로 걱정시키지 않는다고 약속해 놓고.

"바보..."

조금 목이 메인 목소리가 힘 없이 고개를 꺾고 낙하한다.









"...어이. 너네 엄마아빠 일가친척이 몰살이라도 한 것 같다."
"흑, 으흑! 하, 하지만!! 으...."

마리사는 정문에 쪼그리고 앉아 다시 손수건을 부여잡고 눈물을 쏟고 있는 미령의 등을 걷어찼다. 차이면서도 그녀는 그 자세 그대로 한 번 돌아 원상태로 돌아가더니 다시 훌쩍거렸다. 마리사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혀를 찼다.

"차라리 이렇게 알기 쉽게 나오는 편이 낫겠다."
"윽, 아, 아가씨 말인가요...?"
"아아. 그래. 도저히 눈 뜨고는 못 봐주겠어."
"흑... 어째서 사쿠야씨가..."
"면목없어..."

아무리 자신을 책망해도 그 말을 와닿지 않는다. 후회해도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기에. 아니, 분명 돌아오게 만드는 비상식적인 녀석이 있었지만, 이제는 없다.

"...좀 진정되면 신사라도 와라."
"우흑. 네. 흑. 사, 사쿠야씨의 시신은 역시 그 쪽에?"
"아아. 그럼 간다."

빗자루에 올라탄 마리사가 힘차게 발을 구르면서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녀는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홍마관을 내려다보면서 잠시 둥실둥실 허공에 멈추었다.

"일상..."

홍마관의 일상은 변했다.
단 한 명, 이자요이 사쿠야의 죽음으로 인해서.

그녀가 이 홍마관에 들어와 보낸 고작 수 년간의 시간이, 몇 세기동안 쌓인 긴 세월을 짓누르고 '일상'이 된 것이다.

"대단한 녀석이잖아."










"눈이 멈췄네."
"...그렇네."

파츄리의 말에 레밀리아는 무심한 어조로 대답했다. 항상 도서관에만 박혀 있던 그녀는 근래에 상당 시간을 레밀리아의 옆에서 보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티나지 않게 어느새 인가 그녀의 옆자리를 채운다. 친구란 이런 건가. 레밀리아는 코를 울리면서 작게 웃었다.

"폭설이었어."
"응. 1주일도 훨씬 넘게 계속 내렸으니까."
"치우려면 다들 고생이겠는데."
"그렇네."

파츄리는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레밀리아의 작은 등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몇 번을 입술을 붙였다가 떼었다가를 반복했다. 한참을 그렇게 망설이고 나서야 그녀는 간신히 말을 꺼냈다. 어디에도 부자연스러운 부분 없이. 문득 생각난 듯 자연스레.

"외출하기 좋은 날인데. 신사라도 가 보지 그래?"
"...신사?"
"레,"

돌아보는 레밀리아의 윤기 없는 눈동자에 대고 '죽은 사쿠야를 만나고 오세요'라고 말할 용기 따위는 없었다. 어떻게든 좋게 돌려 말해보려고 했던 파츄리는 그 눈을 보자마자 깨끗하게 그런 생각을 접어버리고 말았다. 대신에 곧바로 적당한 말을 둘러대었다.

"레이무가 아직 병석이라잖아. 상당한 구경거리일거야."
"그렇네... 과연, 그건 상당한 놀림거리야."

기운없이 입술을 당겨 웃는 레밀리아를 보면서 파츄리는 안쓰러운 마음에 그녀의 머리로 손을 뻗었다. 연하늘색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어루만지면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파체. 얼굴 이상해."
"너도 마찬가지야. 식사는 제대로 하고 있어?"
"아아. 그렇군. 뭐, 밤의 여왕이 고작 몇 끼 굶었다고 죽어버리지는 않아. 원래 소식이고."
"그래."

레밀리아는 자신의 어깨를 꽉 끌어안은 파츄리의 머리카락에 볼을 부비면서 사쿠야가 홍마관에 더 이상 돌아오지 않게 되어버린 후 처음으로 억지의도하지 않은 웃음을 머금었다. 레밀리아가 몸을 챙기지 않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필적할 정도로 파츄리도 피폐한 생활을 자처했을 것이다. 친구의 상황을 보고도 편안히 앉아서 차를 마시고 책을 보는 성품은 절대로 아닐테니까. 두 손을 돌려 안은 등이 평소보다 더 말라있었다.

"파체."
"...왜?"
"친구란 좋은 거구나."
"어라. 몰랐어?"

레밀리아는 파츄리가 직접 가져다 준 양산을 받아들었다. 오래간만의 외출이다. 전신에 눅눅하게 달라붙은 우울을 털어내듯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렇네. 산책이라도 다녀올께."

휘적거리면서 걸어나가는 레밀리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파츄리는 그녀가 앉아 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역시 안되겠어, 사쿠야."

그렇게 오랜 기간 연을 맺어온 친구인데도, 당신만큼 능숙하게 레미를 끌어안을 수가 없다. 저렇게나 크게 비어버린 구멍을 도저히 메울 수가 없다. 눈으로 이렇게나 빤히 보이는데도, 아무런 방법도 생각나지 않는다.

"시간은 약이라지만..."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 레미의 저 빈 공간은 건재할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지나친 것일까.











"..."

신사는 텅 비어있었다.

"...끝까지 남 비위는 맞춰 줄 줄 모르는 무녀네..."

레밀리아는 자신의 행적따위는 돌아보지 않는 대범한 대사를 내뱉으면서 휑한 툇마루에 탈팍 주저앉았다. 반쯤 열려 있는 장짓문으로 흐트러진 이불이 보였다. 희미한 탕약의 냄새가 났다.

"레이무도 애 썼나 보군."

하지만 죽지 않았다.

"다행이네..."

그렇다면 사쿠야는 왜?

"불공평해."
"어머, 뭐가?"

지이익─ 허공에서 길게 틈새가 갈라졌다. 불쑥 튀어나온 것은 물결치는 금은발의 머리카락. 언제나처럼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미소를 짓고 유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레밀리아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혀를 찼다.

"뭐야, 틈새의 변태 언니잖아."
"뭔가 기분 나쁜 단어와 기분 좋은 단어가 맞붙어서 그럴싸하게 어울리고 있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답례로 차를 마시자."
"...무슨 소리야."
"네가 타와도 괜찮으니까."
"싸움 거는 거지? 응? 그렇게 받아들여도 되는거지, 이거?"

"어머. 메이드가 없으면 차 한 잔 타먹을 수 없는거야?"

정적.
하지만 유카리는 실망했다.

"..."

저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나오는 폭발적인 살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유카리는 부채로 볼을 톡톡 두드리면서 불만스러운 듯이 눈썹을 찡그렸다. 유카리의 속은 헤집어 놓는 말에 레밀리아는 크게 한 번 눈을 떠 보일 뿐,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둘 뿐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침착하기 그지없지만, 사실은 동요로 모든 틈새가 꽉꽉 들어차서 마치 안정적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작은 어깨가 한층 더 아래로 처졌다.

"마시고 싶지 않아."
"응?"
"사쿠야의 것이 아니면 싫어."
"어머, 어리광쟁이네."
"그러게...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500년에 가까운 세월을 그녀없이 보내왔을 터인데.
단지 수 년을, 인간으로 봐도 덧없고 요괴로 봤을때는 더더욱 덧없는 그 짧은 시간을 함께한 것만으로도.

이제는 떨어져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버렸다.

"형편없잖아. 꼴사나워. 사쿠야가 본다면 틀림없이 품위없다고 화낼텐데."
"잘 알고 있네."
"사쿠야는 대체 나에게 무슨 마법을 쓴 걸까."
"아아. 그건 내가 알아."

휘익! 바람을 일으키면서 레밀리아의 고개가 유카리에게로 돌아갔다. 동그랗게 떠진 핏빛의 눈동자가 어쩐일인지 조금 윤기를 갖고 빛을 내고 있었다.

"과연 나이는 헛먹는게 아니네. 알고 있어?"
"물론이지. 이 언니는 모르는 게 거의 없어요."
"...거의?"
"오늘 레이무가 입고 나간 속옷의 색은 아직 확인을 안해봐서 모르겠거든."
"레이무의 속옷은 됐어."
"어머, 귀여운데. 정말 흥미없어?"
"계속해서 생각해봤어. 사쿠야가 없어지고, 어째서 나는 사쿠야가 없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지? 나 뿐만이 아냐. 홍마관 전체가, 환상향 전체가, 모든 것이 이미 사쿠야가 있던 일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다른 모두들은 정말 사쿠야가 없어도 괜찮은거야? 그렇다면 나만 또 도태되는 거야? 모르겠어. 이유가 뭐지? 왜 세상은 이렇게도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나는 왜 거기에 끼어 녹아들어 갈 수 없어?"

촤악. 부채가 펼쳐지고 유카리는 웃는다.

"그들은 인간이니까."
"...인간?"
"몇 곱절은 짧은 생명을 갖고 태어나는 주제에, 그 어떤 생물보다도 강인하게 생명력을 불태우는 기이한 동물들.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다가오는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지. 현재를 살면서, 주변의 모든 것을 물들여버리고,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져버리는 지독한 녀석들."

타악. 부채가 감기고 허공이 찢긴다.

"...?"
"레이무와 마리사는 신사 뒤 쪽에 잠들어 있는 공주님을 보러 갔어."

길게 입을 벌린 틈새 너머로 보이는 것은 유카리의 말대로 레이무와 마리사였다. 마리사는 양 손에 들고 있던 나무로 된 양동이를 내려놓았다. 조금 뒤에 피곤한 듯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이 레이무였다. 홍백의 옷 사이로 보이는 두껍게 감겨 있는 붕대에는 조금씩 붉은 빛이 스며들어 있었다.

"어이. 역시 좀 더 쉬는 게 낫지 않겠어?"
"됐어. 더 미루어두고 싶진 않아. 너야말로 홍마관에는 잘 이야기 했어?"
"...뭐어. 노력은 했어."

쓸모없어. 레이무는 굽히고 있던 다리를 펴면서 마리사의 발목을 공격했다. 폴짝 뛰어서 여유롭게 피하면서 마리사가 실실 웃음을 뿌렸다.

"환자의 발차기 정도에 당할 마리사님이 아니지."
"어째서 너는 그렇게 멀쩡한 거야. 열받아."
"아아, 그러게 말이다... 어째서냐. 레이무는 이렇게 너덜너덜해지고, 사쿠야는 이렇게 죽어버렸는데."
"...딱히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어. 신경쓰지마."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지만. 그래도 역시... 이번 건은 분해."

마리사는 내려놓은 통에 있는 국자로 물을 퍼서 앞에 있는 네모 반듯한 비석 위에 물을 뿌렸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레이무가 묻는다.

"그래서?"
"...그렇다고 해서 일어나버린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
"그렇지."
"그렇다면 살아갈 수 밖에 없잖아. 남은 놈들끼리. 지독한 이야기다."
"그렇네..."

레이무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올리다가 살짝 벌어져 있는 틈새에 눈이 멎었다. 험악하게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을 보며 유카리가 '어머 무서워라'하고 웃으면서 틈새를 닫는다. 닫히는 틈새 사이로 레이무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언제 홍마관이라도 가볼까."

타악. 완전히 닫힌 틈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 틈새가 있던 방향에서 시선을 놓지 않으면서 레밀리아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빨라."
"안 그러면 죽어버리는 걸. 어쨌든 우리랑은 시간 개념 자체가 틀리니까."
"흥. 사쿠야는 저런 녀석들보다 훨씬 더 우아하게 살고 있다고."
"그럴까? 시간을 멈추고 있는 동안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 네 방 침대에 몰래 숨어들어가 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었을지도 몰라? 부비부비하고."
"그─럴리가 없잖아!!! 사쿠야는 그런 짓 안해!!"
"어라. 신망이 두텁네."
"항상 당당하게 들어가서 하니까!"
"............그러니."

'우아하다'라는 말의 정의가 내가 자고 있는 동안 바뀌어버린 걸까? 유카리는 그런 소소한 의문을 잠시 접어두고는 레밀리아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했다.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500년을 살아온 밤의 군주. 흡혈귀 레밀리아 스칼렛. 억만의 인요가 죽는다 해도 개의치 않아 할 그녀가 단 한 명의 소녀의 죽음에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그 모습을.

"인간들은 이상해. 이해할 수 없어."
"이해하기 어렵지."
"어째서 그렇게 빨리 체념하고 앞으로 나가겠다는 거야? 속이 좋은 것도 정도가 있지."
"아니, 그들은 우리가 10년에 걸쳐 태우는 심장의 고통을 1분에 불사르는 거야."
"하아?"
"그렇지 않을까?"
"...아니, 됐어. 듣고 있으니 피곤하네..."
"그렇기 때문에 좋아해."
"에에엑?!?"
"그 아이를."
"아, 그래. 의도적으로 어순을 바꿨겠지만, 정말 파괴력 있는 발언이니까 그만 둬 줘. 나도 모르게 당신의 목을 조를 뻔 했어."

후후후후후후─ 부채로 입술을 가리고 수상쩍은 웃음을 흘려내는 유카리의 모습은 이제 아무래도 좋다는 듯, 레밀리아는 툇마루에 크게 드러누우면서 무거운 한숨과 함께 말을 토해냈다.

"뭐야 결국. 이대로, 사쿠야가 없어진 채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거야?"
"뭐, 그건 인간의 이야기고."
"엥?"
"어머. 당연한 거잖아. 인간들은 그렇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는데."

우리가 거기에 따라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지?

"그렇구나."

레밀리아의 입가가 크게 비뚤어졌다. 비죽 내비치는 송곳니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근 일주일간 절대로 볼 수 없었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였다. 아니, 그녀의 그런 미소는 어지간히 기분이 좋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그럼 언니라면 어떻게 할 거야?"
"으음? 뭐야. 조언을 구하는 거야?"
"아니. 참고하려고."
"그렇네. 그렇군... 그 아이가 죽는다면. 아니, 쉽게 죽을리도 없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렇다면."

유카리의 웃는 모습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다. 언제나처럼 음흉하게, 하지만 너무나도 쾌청하여 보는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미소.

"지옥을 없애버리지."
"헤에..."
"어차피 지옥 말고는 갈 데도 없는 아이야. 갈 곳이 없으면 다시 내 곁으로 오겠지."

그렇게 웃으면서 말 할 정도로 가벼운 이야기는 아닌데. 레밀리아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유카리를 유심히 쳐다보며 재차 되물었다.

"진심?"
"...뭐, 2.9% 정도? 솔직히 염마님은 어렵고."
"꽤나 낮은 확률이네..."

그렇지도 않아. 유카리는 그런 레밀리아의 코를 부채 끝으로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나머지 97.1%는 그 아이가 죽지 않을 확률이니까."

자, 그럼.
홍마관의 주인. 길고 긴 세월동안 밤의 여왕으로 군림해 온 당신의 선택은─?

"데리러 간다."
"종자를?"
"시간 관념이 느슨한 메이드를 혼내러 가는 거야."
"어머. 그것 참."

재미있겠네.

이미 점이 되어 사라져가고 있는 레밀리아의 뒷모습을 보면서 유카리가 쿡쿡 작게 미소지었다. 커다란 빗자루에 매달려서 흑백과 홍백의 점이 가까워져 오는 것이 보였다.

"흰색이구나."

유카리가 화사하게 웃으면서 허공에서 내려오는 레이무에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마리사의 부축을 받으면서 내린 레이무는 마당에 서자마자 곧바로 응답했다.

"사라져."
"...손님이 왔는데 이유도 묻지 않고 가라니."
"아아. 그래. 어쩐 일이야? 사라져."
"대답이 필요하지 않는 것을 보통 질문이라고 하던가?"
"좋아. 어쩐 일이야. 3초 내로 말해."
"레이무를 간호해주려고."

유카리의 말에 안 그래도 차가웠던 공기가 다시 1도 정도 미끄러져 내려갔다. 불행덩어리를 보는 듯한 눈으로 잠시 레이무를 바라보던 마리사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레이무의 바들바들 떨리는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무언으로 위로했다. 이마를 가로지르면서 튀어나오는 혈관을 손 끝으로 꾹꾹 누르면서 친절한 미소를 띄웠다.

"이제 사라져."
"어라, 어째서?"
"네가 내 눈앞에서 없어지는 것이 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간호야."
"아니. 내가 치유해 주고자 하는 것은 상처받은 당신의 마음."
"그러니까 당장 사라지는 것이 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마음의 간호."
"싫다면 상처받은 몸."
"그렇다면 당장 사라지는 것이 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몸의 간호야."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돌아가라고 말하고 있잖아!!!"










뻐엉!

걷어차인 미령은 눈 속에 빠묻힌 채 다리를 버둥거리면서 '에? 에? 뭐야?'하고 두리번거렸다. 물론 보이는 건 눈 뿐이고 입에 들어오는 것도 눈 뿐이다.

"언제까지 빌빌거리고 있을거야? 확 해고해버릴까."
"투... 푸학! 콜록. 아, 아가씨?"

눈 속에 깊게 박힌 얼굴을 빼내면서 눈을 뱉어내는 미령에게 레밀리아가 명령했다.

"외출 준비해라. 파체한테도 일러둬."
"준비라니? 어디로요?"
"뭐야? 뻔한 걸 묻네."

레밀리아는 봄이 찾아오면 찾아갈 꽃놀이 장소를 말하듯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피안향으로."
"피안향?"
"그래. 간다. 사쿠야를 데리러 가는 거야."

씨익, 유쾌하게 말려 올라가는 레밀리아의 미소에 미령의 얼은 얼굴도 환하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홍마관을 뒤덮었던 우울의 안개가 걷히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이렇게 주렁주렁 살아있는 자들을 데려왔던 말입니까?"
"아, 좀 봐주세요. 이런 여자들이잖아요. 이런 애들을 어떻게 이겨요. 능력 외에요. 살려주세요, 정말."
"능력 내의 일이라도 열심히 하고 있으면 말을 안합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쥐고 염라대왕과 그저 근무태만인 사신.

"...그러게. 그냥 통과시켜줬는데."
"기대했는데. 조금 아쉬웠어."
"기대하셨던 건가요, 아가씨..."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홍마관의 식구들.

"뭐 좋아요. 어차피 부르려고 했던 자들이고."
"에에, 그렇다면 제가 혼날 이유는 없잖아요?"
"근무태만은 죄악입니다! 당장 튀어나가주세요."

궁얼거리면서 사라지는 코마치의 뒷모습을 보면서 레밀리아가 시키에게 물었다.

"부르려고 했어?"
"아아. 용무가 있어서."
"뭐, 아무래도 좋지만. 일단 사쿠야를 내놓으세요."

직구?! 옆에서 괜찮겠나요...하고 묻고 있는 미령과 레미 오늘은 왠지 마리사같네...하고 즐거운 듯이 말하고 있는 파츄리를 무시하고 시키를 향해 손을 쫙 펼친다. 마치 맡긴 사탕이라도 돌려받으러 온 듯한 태도였다.

"돌아갔는데요."
"당장 내놓지 않으... 뭐라?"
"돌아갔어요."
"...돌아가?"

그 일 때문에 부르려고 했던 겁니다. 시키는 피곤한 듯이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헛기침했다. 왠지 눈 밑이 거무스름한게 안쓰러워보이기까지 했다. 잠은 제대로 자고 일하고 있는 걸까. 종자를 거느리는 자로서 저렇게까지 피곤해 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구나. 레밀리아는 잠시 그렇게 생각했지만 곧 자신들은 보자마자 싸울 생각은 접고 착착 염마에게로 길을 안내하는, 근무태만의 절정을 달리고 있는 사신 하나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과연, 그런 부하는 피곤하겠지.

"설명을."
"놀랄 것도 없습니다. 이번 이변으로 인한 이자요이 사쿠야라는 인간의 죽음은 있어서는 안되었던 일인 겁니다. 그야말로 이변이니까요. 이 쪽에서도 어느정도 책임이 있는 사건이기도 했고. 여기는 그런 험악한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힘쓰다가 제 명이 아닌 시기에 죽은 인간을, 좋다고 받아들이는 몰인정한 곳이 아닙니다."
"...에? 뭐야. 그런거야...?"
"그렇게 됐습니다. 사정 설명을 일찍 드렸어야 했지만 여러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바빴거든요."
"......그럼 사쿠야는 지금 어디에?"
"그게 곤란합니다."

레밀리아의 질문에 시키는 다시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입에 달고 사는 것 같았다. 뼈까지 전해져오는 고달픔이 느껴졌다.

"이미 그 육체가 화장되었기 때문에 혼을 되돌려보내는 것도 난처하게 되어서. 급한대로 동일 규격의 육신을 만들었습니다만."
"...만?"
"아무래도 본디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혼의 안착에 시간이 걸리거든요. 그런데도 육신이 다 만들어지자마자 돌아가버렸기 때문에 위험한 상태입니다."

대체 교육을 어떻게 시키신 겁니까. 왜 설명도 제대로 듣지 않고 급하게 뛰쳐나가는 거지요? 조금은 사람의 말에도 귀기울여 하는 것 아닙니까? 불평의 샛길로 빠져나가는 시키를 레밀리아가 '알았어. 알았어'라며 급하게 달래면서 재촉했다.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힘차게 맥을 치기 시작했다. 쾅쾅 울려대는 바람에 목까지 뻐근해져오고 있었다. 파츄리가 레밀리아의 떨리는 손을 살며시 잡아주었다. 꽈악, 아플 정도로 힘있게 그 손을 마주잡으면서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사쿠야가 죽지 않았다.

"위험한 상태라는 건?"
"말했듯이 혼의 안착이 안정적이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얼른 찾아내서 안정적인 처치를 받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혼이 어긋날 수도 있고 기억이 통채로 날아가버릴수도 있고... 아 정말 어째서!!!"

왜 사람 말을 제대로 귀담아 듣지 않는 겁니까! 호통을 치는 그녀의 말에 레밀리아가 의아한 듯이 되물었다.

"사쿠야는 그 소리를 듣고도 곧바로 떠난거야? 그렇게 생각없는 아이가 아닐텐데..."
"당신 때문입니다."
"...얼레?"
"'아가씨가 기다립니다'라더니 쌩하니 달려가버렸다고요. 자신만만하게 기억따위 잊을리 없습니다─라면서..."

사쿠야가 죽지 않았다.
살아있는 몸으로 숨을 쉬면서, 나를 만나러 돌아갔다.

살아있는 한 곁에 있겠다고 한 그녀의 말대로─

─일상이 계속된다.

"가자!"

레밀리아는 시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몸을 돌렸다. 파츄리와 미령의 손을 잡아 끌면서 출구를 향해 뛰쳐나가면서 목소리를 높인다.

"잘 알았어요. 고마워!"
"...에? 잠깐, 이야기를 마저 들으세요!!"

과연 그 주인에 그 종자. 사람 말을 안 듣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어. 책상 위에 쭉 엎어진 시키의 뒤에서 길게 늘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쩔 수 없네요. 저 집안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상식이 어긋난 것 같아요."
"...코마치가 할 말입니까. 그 전에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 겁니까."
"그 메이드 말이에요."
"...응?"

코마치는 곤란하다는 듯이, 하지만 그것이 나쁘지는 않은 듯 비실비실 웃으면서 말한다.

"강을 건너며 생전의 죄를 반성하는 거야─했더니 엄청난 소리를 했어요."
"뭐라고?"




[...죄? 어째서?]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 삼도천의 위에서 사쿠야는 의아한 눈동자로 되물었다.

[나의 죄는 이미 아가씨가 사해 주셨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순수한 의문을 갖고 그녀는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환상향에는 어째서 이렇게 상식결손이 많은 걸까요..."
"뭐어. 그러니까 걱정없지 않겠어요? 어떻게든 되겠죠. 기억이 날라가든 혼이 빠져가든."
"그런 느슨한 사고방식이 문제라는 겁니다!!"














새하얗게 눈이 쌓인 숲을 비척비척 걷는다.

"하아-"

숨을 길게 뱉어보면, 새하얀 입김이 구름처럼 번져나가 시야를 희뿌옇게 흐려버렸다. 발목이 푹푹 잠기는 눈 속을 천천히 걸으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어디야?"

기억이 없다. 짙은 안개가 머리 속에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안개의 색은 왠지 모르게 핏빛이었다. 추운 날씨와는 상관없이 호흡이 힘들었다. 마치 육신에 영혼이 제대로 들러붙지 않아서 덜그럭거리는 기분이었다.

"...어디?"

그렇게 새빨갛기만 한 머리 속인데도, 먼저 떠오르는 의문은 '나는 누구야?'가 아니다.

"...어디..."

가야 할 곳이 있다. 기억의 잔재조차 아니다. 그저 이 영혼이, 어디론가로 가고 싶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길조차 모르면서 무턱대고 걷고 있었다. 어디지, 어디지, 계속 되뇌이면서도 왠지 모르게 불안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평온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녀의 혼이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 곳에 가서,
누군가를 만나면,

틀림없이 모든 것이 기억난다는 것을.


그러니 가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역시 길을 모르면 곤란할텐데."

아니, 그렇지도 않아. 그녀는 곧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걸음을 멈추고 계속해서 움직이느라 가빠져오는 호흡을 가누면서 멈추어서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걱정이 많은 분이니까,
틀림없이 늦어지는 이 몸을 마중나올 테니까.

"안녕."

이것 봐.

"엄청 늦었잖아. 주인을 이렇게까지 걱정시키다니, 집에 가서 엄청 혼내줄테니까 각오해 둬."

하늘에서 날아내려온 레밀리아의 말에 '사쿠야'는 대답한다.

"네. 기쁘게."
"...어째서 기뻐하는 거야. 거기서. 좀 더 무서워해주지 않으면 재미없어."
"제가 무섭다고 말해도, 아가씨는 더 이상 믿어주지 않으시니까요."

레밀리아는 볼을 부풀리면서 사쿠야의 얼은 손을 잡아 끌었다. 숲은 어느새 그 끝을 보이고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것은 짙은 안개에 휩싸여 였는 그녀들의 안식처.

"할 말은 또 없어?"
"...그렇군요. 아직은 조금 이릅니다만. 이만큼이나 늦어버렸으니 지금 속히."

사쿠야는 잡고 있던 레밀리아의 손을 놓았다. 가벼운 걸음걸이로 두어걸음 뒤로 물러나서 살짝,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다녀왔습니다.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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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야가 죽으면 레밀리아는 어떻게 될까?'라는 대화로 찜질방에서 반 수면 상태에 헤롱헤롱대면서 후렝님과 새하님과 잠깐 이야기 한 적이 있었지요. 시작은 거기서부터입니다만... 왜이렇게 길지. 너무 길어서 쓰다가 지쳐 결국 마지막 마무리가 대충 얼버무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저는 사쿠야가 죽는 장면과 레밀리아가 초반에 우울에 쩔어 있는 장면을 쓰고 싶었기 때문에 별로 상관없습니다. (정말이냐)

어쨌든 이 질문에 답한 두 사람의 의견은

'히잉... 사쿠야...'

혹은

'머엉... 사쿠야...'(먼산모드)

라는 느낌으로. 곁에 있는 건 살아있는 동안만이에요─라던가 그런 차가운 소리를 해댔지만, 제 안의 홍마관은 뭐랄까... 이렇게 좀 더... 그... 끈적끈적쫀득쫀득한...

참고로 '레이무가 죽으면 유카리는?'이란 대화도 했었는데. 두 사람이 곧바로 대답하길,

'풋'

혹은

'켓'

아니, 확실히 설득력 높은 반응이긴 하지만.... 역시 제 안의 결계조는 뭐랄까 좀 더 와장창크오오...

'마리사가 죽으면 앨리스는?'
...이건 생각만 해도 앨리스가 너무 불쌍해서, 질문하는 것조차 죄스럽네요. 상처입혀서 미안, 앨리스.


참고로 저런 의문이 나왔을 때 저는 반쯤 죽어있어서 대답하지 못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사쿠야를 죽인 사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이렇다 정해놓지 못했습니다만(귀찮으니까) 대충 '요괴는 섣불리 개입하기가 매우 힘들고 인간밖에 취급할 수 없는 류의 사건으로 왠지 모르게 피안향과도 어물쩍 연관이 지어진 초난감한 사건' 정도. 나중에 시간이 되면 이 쪽도 한 번 써봐야지 하고 생각중입니다. 레이무 굴리기로. 그나저나 마리사 대단하구나, 상처하나 없이...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닐겁니다. 다만 지역 배치 운이라던가 그런 것 때문에 사쿠야가 제일 수난을 많이 겪고 결국 사망...이라는 이야기.


제가 쓴 동방 ss 치고는 등장인물의 폭이 넓어서 고생했습니다. 피안향 쪽에 가서는 설정 보는 것만 해도 상당히 고역... 왜이렇게 많아. 이제 그만 사람 늘리고 있는 애들로 이야기를 해주세요, 준님...

...제목은 적당히 지었습니다. 뭐, 제가 그렇죠.

by 상흔 | 2007/07/14 02:08 | └ fan fiction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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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7/07/17 17:3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상흔 at 2007/07/18 00:06
비공개/ ....엉? .... 글 여기다 써놓고 전부 갖다 붙였더니....... 주소 있었구나... 뭐 어때. 누가 들어오겠서요...

....그나저나 제법 머리 쓰셨다는..../라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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