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 연애먹이사슬 1/2

글이 너무 안써져 손풀기 겸 이님에게 메신저로 시츄를 달라고 해보았습니다.

1. 얀데레 상사랑 츤데레 부하
2. 단발에 예쁘고 수트랑 드레스도 잘 어울리고 돈도 많고 근데 성격 4차원

이건 시츄가 아니라 설정이잖아.

어쨌든 이것이 이님의 취향입니다. 어렵군요... 이님의 취향은 어려워요
최대한 병맛나도록 노력해보았습니다.

가능하면 한번에 다 써서 올리려고 했는데 자꾸 길어지네요ㅠㅠ. 일단 끊어요.


연애먹이사슬
~부제 : 이님은 이런 것이 취향


http://chizru.egloos.com
by. 치즐




"차였어."

달칵달칵 울리는 키보드 사이로 들려오는 그 말은 마치 업무 상의 보고라도 하는 듯 단조롭고 차가웠다. 하지만 자세히 귀를 기울여보면 짜증스러움이 교묘하게 숨어있는, 그런 목소리이다.

"흐음, 그래요?"

그 말을 들은 새인은 후륵,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면서 봄바람처럼 가볍게 대답했다. 대답하는 사이에도 말을 건넨 상대에게 고개 한 번 돌리는 일 없이 안경 너머로 작업 중인 모니터의 글자를 읽어나간다.

"잠깐. 그 태도 거슬리는데요."
"일에 집중하라고 한 건 대리님이에요?"
"집중하세요. 그리고 나한테도 집중해주세요."

상냥한 목소리 속에서 불꽃이 튄다. 새인은 순순히 일하던 손을 멈추었다.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상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깔끔하게 커트 된 단발의 여성이 굳은 얼굴로 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예쁘장한 얼굴은 불만으로 가득차 있다. 새인은 좀 더 성의있는 말투로 방금 전의 자신의 대답에 말을 덧붙였다.

"그야 그렇겠죠. 솔직히 말하면 이제까지 버틴게 신기하네요."
"아주 예쁜 말만 골라서 하시는군요, 새인 선배."
"대리님. 회사에서만이라도 그 '선배'는 그만해주세요. 사람들이 헷갈려 한다구요?"
"뭐, 아무래도 좋아요. 이제와서 선배의 무심함 따위에 일일히 신경쓰진 않으니까."
"...대학시절에도 별로 신경 쓴 적 없었을 텐데..."
"그런 것 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차였다'는 거야."

가현은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면서 다 마신 종이컵을 쥔 손에 힘을 넣는다. 새인은 와작, 한번에 일그러지는 종이컵에 애도를 표하면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가현. 키는 평균보다 약간 큰 정도겠지만 마른 체형에 밸런스가 좋기 때문에 훤칠한 인상을 주는 여성. 별다른 무늬 없는 수수한 무채색의 정장을 입었는데도 어지간한 모델도 울고 갈 정도의 외모 덕에 화사하기 그지없는 사람. 빼어난 것은 외형만이 아니다. 고등학교는 월반, 대학은 조기 졸업, 회사에서는 고속 승진. 못하는 것이 존재하기나 할까 의문스러운 만능형의 인간. 덧붙이자면 집안도 좋고 돈도 많다. 그야말로 완벽.

문제가 있다면 단 하나.

"성격 탓이겠죠?"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은 뒤 방심하고 있는 강아지를 뒤에서 걷어차는 여자. 좋아하는 영화는 슬래셔 계열. 고기는 언제나 레어. 오락실에 가면 항상 총기류를 사람에게 난사하는 게임만을 고른다. 마음에 드는 상대의 발을 짓밟고 좋아하는 상대의 목을 조르는 심오한 방법으로 애정을 표현하며, 가방에는 방범용이랍시고 망치를 들고 다니면서 언제라도 합법적으로 사람을 칠 기회를 노리는 대단히 독특한 감성의 소유자인 것이다.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좋아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건 그만두는 게 좋을 텐데요."
"무슨 소리에요. 좋아하니까 괴롭히는 거잖아요?"

그렇게 진지하게 되물어도 돌려줄 말이 없는데 말입니다. 새인은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남은 커피를 모두 들이키며 그런 말을 함께 삼켰다.

"그리고 이유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아까 중요하다고 한 건...?"
"...? 제가 언제 그런 말을 했던가요?"
"그런 것 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차였다'는 거야."
"그래요. 중요해요. 하지만 그 이유가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에요, 선배."

그럼? 눈으로 묻는 새인에게 그녀는 같은 여자라도 두근거릴 정도로 멋진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대답했다.

"나를 찬 그 남자를 어떻게 말살하는가가 중요한 거잖아요."
"..."
"..."
"그... 사회적으로? 아니면 물리적으로?"
"가능하다면 둘 다."
"후자는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 살인은 범죄에요?"

상대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새인은 웃어넘기는 일 없이 그녀로서는 드물게 성실한 태도로 대답해 주었다. 가현은 새인의 그런 태도에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흔들면서 말을 잇는다.

"뭐, 저도 상식이라는 게 있으니까. 적당히 절망의 늪에 파묻는 정도로 끝내고 싶어요."
"그 상식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이었으면 좋겠네."
"깐죽거릴 시간이 있으면 사랑하는 후배를 위해 뭔가 좋은 아이디어를 내보는게 어때요?"
"전 대리님을 사랑할 정도로 강심장은 못된답니다. 그러니 얌전히 일이나 계속하게 해주세요."

새인은 아직도 한참은 남아있는 업무로 다시 주의를 돌린다. 가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그녀의 뒤로 돌아와 어깨 너머로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뭐에요. 아직도 다 못 끝낸 거야?"
"대리님이 너무 빠른 거겠죠. 전 지극히 표준 규격의 민간인이니까 당신 속도에 맞추는 건 무리에요."
"선배는 단지 열심히 하지 않는 것 뿐이에요. 쉽게 동요하지 않는 성품이야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일에도 미적지근하면 곤란해요."
"열심히 하고 있어요. 평균적으로. 무난하게."

말은 잘 해. 가현은 하나로 묶인 새인의 포니테일을 쭉 잡아당기며 혀를 찼다. 아야, 당겨진 머리보다는 그에 끌려 젖혀진 목이 쑤신다. 새인은 뒷 목을 잡아 주무르면서 자리로 돌아가는 가현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보니 대학 후배로 들어온 가현을 처음 만났을 때도 어지간히 괴롭힘을 당했던 기억이 난다. 다만 그녀의 가학욕조차도 시들게 만드는 새인의 무심함이 있었기에 힘들었던 적은 딱히 없었다. 아니, 애초에 당시의 새인은 가현이 자신에게 심술을 부리고 있었다고는 느끼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심(無心)을 넘어 무감(無感). 선배는 정말 반응이라고는 없는 사람이네요. 가현이 결국 혀를 차면서 그렇게 이야기 했을 때에야 '그랬던 건가...?'하고 깨달았던 것 같다.

"..."

이러니저러니해도 괴롭히려 들었다는 건 결국 좋아해 주었다는 소리겠지. 뭐가 마음에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의 취향이 혁신적이었던 것은 하루이틀이 아니니 크게 신경 쓰이진 않는다. 졸업을 하고 여행을 하면서 취업이 늦어진 새인에게 욕을 하면서도 도와준 것도 바로 가현이 아닌가. 그런 그녀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면-그럴 일은 거의 없지만- 당연히 손을 빌려주는 것이 도리이다.

"...말살인가..."

더욱이, 아끼는 후배가 인륜을 저버리지 않도록 감시를 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히 느껴진다.









다음 날. 두 사람은 일찌감치 점심을 먹은 후, 식당 입구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마시며 먹이감을 수색했다. 타겟은 물론 가현의 전 애인. 두 사람과는 다른 부서의 사람으로 가현에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평판이 좋은 남자이다. 그에 대해 묻는다면 백이면 백 '괜찮은 사람이지'라는 소리를 하지 않을까. 가현도 겉으로는 상당히 멀끔한 모습으로 꾸미고 다니기 때문에 두 사람을 붙여 놓는다면 제법 그럴듯한 그림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이후 점점 드러나는 가현의 본색에 남자는 절망했겠지.

"선배. 어째서 성호를 그어요?"
"그것이 나의 신앙."
"사이비가."

새인은 험악한 목소리는 귓등으로 넘기면서 식당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는 문제의 남자를 발견했다.

"아, 저 사람이지. 어라?"

그리고 그를 따라와 옆의 자리에 앉는 한 명의 여자도 발견했다. 굳이 유심히 살펴보지 않아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간지러운 행복 전파가 새로운 연인의 탄생을 알려주고 있었다.

"...여자네요."
"...여자네요."
"아, 저 저 사람 알아요. 입사 동기일거에요, 분명."
"그렇다는 건 신입사원이란 거네."
"괜찮은 사람이네요. 꽤 미인이고."
"나 정돈 아닌데?"
"...무엇보다도 마음에 병이 없어 보였고. 중요하죠, 그거."

새인은 거침없이 내리찍히는 가현의 힐 굽을 발을 틀어 피하면서 끝까지 말을 마무리했다. 두 사람이 사이죻게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새인이 먼저 물었다.

"그래서. 뭔가 계획은 있으세요?"
"음. 일단 잘못된 사건의 수정이 필요해요."
"...?"
"제가 차이는 건 용서 못해요. 일단 제가 다시 차야겠어요."
"그건 또... 식상할 정도로 드라마틱한 전개네요."
"식상하다는 건, 그만큼 상식적이기 때문이라는 거겠죠."

아닐걸요. 새인은 마음 속으로만 그렇게 덧붙였다. 생각해보면 그 정도 선에서 끝내는 것이 오히려 무난하지 않을까. 여기선 잘못 말렸다간 일이 오히려 더 커져버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관계를 회복한 후에 다시 찬다. 그 정도면 귀여운 축이지.

"그럼 일단 저 남자의 마음을 다시 잡아야 하겠군요."
"그건 또 싫네요. 나 싫다고 떠난 사람을 내가 붙잡아야한다니."
"그것보단 대리님의 성품을 알고 있는 저 남자가 다시 쉽게 대리님한테 돌아갈리가 없지요."
"...일리있는 말이야. 저한테서 도망친 사람들 중 다시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가현은 흐음-하고 가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생각에 잠겼다. 새인은 그런 그녀의 옆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다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타겟은 두 명. 그 중에 한 명은 여러모로 가능성이 희박.

"그럼 저 여자를 꼬시면 되겠네요."
"...큿, 앗, 뜨거! 선배? 뭐라고?"

마시던 도중에 튀어나온 새인의 말에 커피를 잘못 넘긴 가현은 좀처럼 보기 힘든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새인은 두 사람에게서 다시 가현에게로 시선을 돌리면서 말을 되풀이 했다.

"그러니까 저 여자 분을 꼬시면 되겠다고요. 여자를 꼬셔서 남자를 차게 만들고, 그 여자를 다시 차면 대충 쌤쌤이겠죠?"
"...저기. 선배가 말했듯이. 그 사람 여자인데요."
"그렇죠."
"그리고 저도 여자인데?"

가현의 말에 새인은 푸핫-하고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항상 리액션이 부족한 그녀로서는 대단한 일이다. 어딘가 웃을만한 부분이 있었던가? 가현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새인의 귀를 잡아당긴다.

"...선배?"

새인은 커피잔으로 웃고 있는 자신의 입가를 가리면서 의아한 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가현을 올려다보았다.

"아니. 비상식의 정점에 서 있는 가현이가 그런 데에서 그런 보통 사람 같은 말을 할 줄은...큭..."
"아하. 그래요.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지금 나는 맞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계신거죠?"
"아야야. 폭력 금지. 노인 공경. 사내 폭력으로 고소해요?"

새인은 남들이 보이지 않는 각도로 훌륭한 펀치를 박아넣는 가현의 손을 피해 멀찍이 물러났다. 가현은 그런 그녀의 팔을 다시 잡아 당겨 원위치로 되돌리면서 대화를 계속 한다.

"그건 잘 될지 어떨지. 선배야 졸업하자마자 신나서 외국 여행을 하면서 돌아다닌 덕에 편견이 별로 없어진 거겠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좀... 그렇잖아요?"
"그러게. 대리님도 생각에 안 미쳤을 정도면 확실히 한국적인 정서는 아닌가 보네... 그래도."

새인은 잠시 말을 멈추고 머리를 굴린 뒤, 다시 말을 잇는다.

"현 상황에서 난이도는 여자 쪽이 오히려 낮지 않을까요?"
"...선배는 날 대체 뭐라고 생각해요? 뭐, 선배 상상대로의 사람이긴 하지만."

가현은 다 마신 종이컵을 버리고 손목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슬슬 점심시간도 끝나가고, 다정하게 식사를 하던 두 사람도 이동할 준비를 하는 듯 해 보였다. 볼 일은 대충 끝났으니 여기서 꾸물거리며 지체할 필요는 없다. 가현은 새인과 함께 식당을 나서 사무실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야 박애주의자니까 딱히 그런 데 거부감이 있는 건 아니지만.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가 문제겠군요."
"어라. 미인에, 머리 좋고, 집안 좋고, 돈까지 많은 사람이 싫은 사람이 어딨겠어요?"
"그것 참 속물적인 발언이네. 그런 것까지 굳이 사용 안해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 부딪혀서 넘어오게 만들어 주지."
"...아멘."
"성호 긋지 마세요. 사이비."







"이름 오은아. 나이는 저보다 두 살 어리고. 제가 그 남자의 옛 연인이라는 것은 물론, 면식이 있는 것도 모르는 상태. 뭐, 사내에서도 친구 이상으로 안보이도록 서로 조심했으니까 소문날 일도 없었고, 애초에 은아씨는 신입이니까 그런 사정에 밝을리도 없고. 얌전해 보여도 상당히 싹싹한 성격에, 은근히 다혈질적인 면이 있어 보였고. 아, 선배 이름도 알고 있던데요."
"잘도 친해졌네요. 그 짧은 시간에."

한 달도 안되는 시간이 지나, 가현은 은아라는 타부서의 안면도 없던 신입 여사원과 완전히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러고보니 난 누군가한테 먼저 작업을 걸어본 적은 없는데─라고 한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하긴 못하는 게 있다는 것이 더 신기한 사람이다.

"아. 그리고 오늘은 애인이 결근했다고 혼자 돌아간다길래, 같이 저녁 겸 술 약속 해 놨어요."
"어라. 그럼 오늘은 따로따로겠네. 먼저 갈께─"

돌아서려는 새인의 어깨를 잡아당기면서 가현은 생긋 웃는다.

"같이 가죠?"

우아하고도 상냥하게 말하고 있지만, 대답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권유가 아니라 명령이다.

"둘이 데이트 하는데 내가 왜?"
"데이트는 자기 애인이랑 해야지 왜 저랑 해요?"
"오늘 둘이 있는 김에 돌파하면 되잖아요? 친구의 선을 훌쩍-하고."
"그래서야 순서가 안 맞아. 어쨌든 아직은 때가 아니에요. 얌전히 동행하세요. 필요하니까."

이미 새인의 팔은 가현에게 단단히 붙들려 있었다. 호리호리한 몸집을 갖고 있지만 건강 관리를 위해 이런저런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힘은 오히려 새인보다 세다. 방해가 될까봐 피하려고 한거지, 그런 것이 아니라면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다.

"알았어. 가게는 매번 가던 데로?"
"음. 아무래도 거기가 무난한 가게니까. 아, 저기 온다."

가현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이 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걸어오고 있는 오늘의 주인공이 눈에 들어왔다. 뱃속이 시커먼 대화는 이것으로 종료. 셋이 된 그녀들은 자리를 옮기기 위해 회사 건물을 빠져나갔다.








새인과 가현이 단골로 드나드는 그 가게는 회사에서 멀지 않은 번화가에 자리잡고 있는 호프집이었다. 그렇게 크지 않지만 맛이 좋고 주인도 친절하여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평판이 좋은, 이른바 숨은 맛집이다. 두 사람은 물론 은아 역시 종종 이 가게를 찾아 온 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도 자주 왔었는데. 어째서 마주친 적이 없었을까."
"아, 전 술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아서. 그렇게 많이 온 적은 없었으니까."

나긋나긋하면서도 상냥한 목소리. 하지만 결코 풀어지는 일 없이 잘 조여진 음색.

"어라. 그럼 이런 곳 보다는 좀 더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갈 걸 그랬나."
"아니, 아니에요. 보세요. 여기 메뉴는 식사류도 확실하게 준비되어 있고. 게다가 아주 못 하는 건 아니거든요."

일에 대해서는 엄격하면서도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한없이 넓고 온유한 사람.

"...어라. 새인씨. 괜찮아요?"
"아, 새인...씨는 술을 마시면 말이 없어지는 타입이라."

빡빡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은 그 경계에 서서 알듯말듯 그 내면을 짐작할 수 없고, 그렇기에 더더욱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괜찮아요?"
"...네에..."

─고, 사람들은 가현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

"선배? 정말 괜찮아? 어째 유난히 페이스가 빨리 떨어지네."

가현의 말투가 달라진 것에 새인의 아득해지던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은아가 앉아 있던 그녀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가방이 있는 걸 봐서는 잠시 자리를 비운 듯 해 보였다.

"아아. 미안. 딴 생각을 하느라."
"딴 생각? 무슨 생각을?"

새인은 그렇게 묻는 가현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걱정스러운 듯 이 쪽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것도 분명 의식을 하여 만들어 낸 얼굴이다. 새인은 비어있는 술잔에 손을 뻗으면서 말했다.

"정말 내숭덩어리구나...하는 생각을."
"무슨 생각을 하나 했더니... 그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가현은 한숨을 내쉬면서 새인의 빈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아니, 하지만 확실히 다르잖아? 지금만 해도 은아씨가 있을 때랑 없을 때랑 네 분위기."
"어떻게?"
"좋은 사람 같은 느낌?"
"...전 원래 좋은 사람인데요."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새인은 대꾸조차 하지 않고 안주를 뒤적였다. 못들은 셈 칠 생각인가. 정말 은근히 성격 질기다니까, 이 사람도. 가현은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말을 바꾸었다.

"당연한 거에요? 그 자체가 제 성품이니까."
"...그런가?"
"전 말이죠. 누군가가 이런 절 보고 보여주는 반응이 좋아요."
"반응?"
"좋은 사람이다-라던가, 호감이 간다-던가, 처음부터 독하게 마음먹지 않는 이상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요. 기껏해야 속내를 잘 모르겠다- 정도겠지. 그런 반응도 저는 좋아요."

가현은 잠시 말을 멈추고 술병을 새인에게로 돌린다. 새인이 가현의 잔에 남은 술을 완전히 따르고 빈병을 내려놓자, 그녀는 다시 말을 잇는다.

"'나를 봐준다'는 느낌이 확 오잖아요?"
"아, 확실히 본 바탕대로 행동하면 무서워서 아무도 못 쳐다보겠지."
"...슬슬 혀가 풀리는 걸 보니 정신이 돌아오시는 것 같군요."

생긋 미소짓는 그 얼굴에서 영하의 온도가 느껴졌다. 추위에 강한 새인이었지만, 그렇다고 즐기는 것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에 순순히 이쯤에서 꼬리를 내려주기로 했다. 얌전히 입에 술을 털어넣는 새인을 보면서 가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자신의 술잔도 깨끗히 비웠다.

"그리고 말해두지만, 처음에 선배한테도 확실하게 잘 대해줬어요, 저."
"...에?"
"선배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고 그만 둔 것 뿐이지."
"그런 사람?"

가현이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뒤에서 들린 목소리가 그것을 가로막는다.

"슬슬 일어나는 게 어떨까요?"
"...그렇네요. 내일 일도 있으니."

새인은 시계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가기까지는 아직 여유가 남아 있긴 했지만 슬슬 자리도 파장 분위기를 맞아가고 있었다. 조금 아쉬운 감이 없잖아 있지만 내일도 출근을 해야하는 사람들이니 이쯤에서 해산하는 것이 적당하다.

"휴일이 아닌게 아쉽네요."

가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이블에 놓인 계산서를 집어들고 카운터로 향하려다 말고, 무언가 생각난 듯이 다시 몸을 돌린다.

"은아씨. 집까지 아직 시간은 괜찮나요?"
"네? 아아... 괜찮긴 하지만."








까앙─!!

알루미늄 배트에 맞은 야구공이 힘차게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우와. 대단해!"
"못하는 운동이 없는 사람이니까... 게다가 여기 배팅센터도 자주 오거든요."
"아 과연. 이 곳도 단골이라는 거네요."

두 사람은 철망 안으로 들어가 정장차림으로 힘차게 배트를 휘두르는 가현의 뒤에서 캔음료를 마시며 관전 모드에 들어가 있었다. 발군의 폼으로 공을 날리는 가현을 보며 은아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선수해도 되겠네요. 공을 치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정말로 치고 싶은 건 사람 머리겠지만. 그런 건 소녀의 꿈을 위해 비밀로 해두기로 했다.

"..."

새인은 가현의 배팅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는 은아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초년생이 된 풋풋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사람이었다. 호리호리해도 탄탄해보이는 가현과는 달리 선이 가늘고 여려보였다. 미인이지만 조금 기가 약해보이고, 오히려 그것이 보호본능을 자극한다고나 할까. 하지만 보기보다 훨씬 활기가 넘치고 싹싹하다. 술집에서 잠깐 대화한 것만으로도 사람을 잘 따르고 무리 속에서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네? 왜요?"

새인의 시선을 알아챈 듯 은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제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미인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에이-, 추켜세워도 뭐 나오는 것 없어요. 새인씨야말로 키도 크고 미인이신데."

확실히 가현과 눈높이가 맞을 정도이니 키는 평균 이상이긴 하지만... 미인이라니. 정작 예쁜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뭔가 기력이 빠진달까.

"그러고보니 들었어요. 이대리님하고 친하시다고."
"뭐. 같은 대학 같은 과 출신이고. 친하다기보단 제가 이런저런 신세를 졌죠."
"아하하, 그런 말도 들었어요. 선배인데도 영 믿음직하지가 못한 사람이라고."

그런 소리까지 했단 말이지. 확실히 친해진 것은 맞구나. 은아는 다시 힘차게 배트를 휘두르는 가현의 쪽으로 시선을 던진다.

"멋진 사람인 것 같아요."

그것은 분명 사랑에 빠진 여자의 목소리였다.

"............................"

새인은 당혹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얼른 음료수 캔에 다시 입을 가져다대었다. 생각보다 너무 간단히 넘어가는 거 아냐, 저 사람? 사람이 쉽게 반하는 타입인 건가, 아니면 가현의 능력이 지나치게 좋은 건가. 착각은 아닐 것이다. 가현의 옆에서 함께하면서 오랫동안 그녀에게 반해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봐왔던 새인인 것이다. 누군가가 남에게 호감을 가졌을 때에 생기는 변화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눈치가 빠르다고 생각하고 있다.

"20개 다 쳤다!"
"봤어요! 우와, 굉장해요, 대리님!"

득의양양한 얼굴로 기분 좋게 나오는 가현에게 은아는 미리 뽑아두었던 나머지 캔 음료르 건넨다. 가현은 그것을 받아들면서 고마워요, 하고 항상 세팅되어 있는 듯한 멋진 미소와 함께 '고마워요'라고 답했다.

"..."

역시 못된 짓을 해서 그런가.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고 이쓴 것이 이렇게도 찝찝할 줄이야. 미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는 그녀에게 가현은 불쑥 동전을 건네었다.

"선배도 칠거죠?"
"아? 응."

새인은 가현에게 동전을 건내 받으면서 배팅장 문 안 쪽으로 들어섰다. 운동 센스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새인은 자신에게 내려진 운명에 순응이라도 하듯 몸을 움직이는 거라고는 질색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정말로 몸상태가 나쁘지 않은 이상은 순순히 공을 친다. 일전에 가현의 권유를 거절했다가 운동부족의 심각성에 대해 근 하루 내내 설교를 들었던 것이다. 조근조근 상냥한 말투로 끊임없이 쏴대는 것이 더 무섭다. 그 이후로 아무리 귀찮아도 하라고 하면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가현도 새인의 몸이 어느정도나 심각한 운동치인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장 느린 공이 나오는 타석으로 들여보낸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새인은 방금 전 가현이 내려놓았던 배트를 집어들었다. 붕─ 혹독한 훈련 덕에 어느정도 구색이 잡혀 있는 폼으로 배트를 휘두른다.

"...응?"

잠깐.
방금 전 가현이 썼던 배트라고?

쌔애애애액────퍽!!!!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자신의 코 앞을 스치는 무시무시한 강속구에 비명을 지르며 바깥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가현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보이면서 봄 벚꽃이 터지는 듯이 웃어보였다. 그야말로 악당의 미소. 속였구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제 2구가 날아온다.

쌔애애애액────퍽!!!!

구속 150km/h. 배팅장 내에서 지원되는 최고 구속.
새인이 친 공은 20개 중 0개. 놓친 20개의 공 중 2개는 데드볼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
"너무 웃어!!!"

욕실 문을 박차고 나오면서 새인이 소리쳤다. 가현은 소파 위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숨이 넘어가라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아, 안돼요. 참을 수 없어요. 전 선배의 그 비명소리가.... 아아, 이 추억만으로도 앞으로 저 6개월은 살아갈 수 있어요."

두 사람이 있는 곳은 가현의 집이었다. 배팅장에서 나온 후 은아를 집으로 보내고 가현과 새인은 함께 택시를 잡아 5분 거리에 있는 가현의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새인의 집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가 몇 번이고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어중간한 시간에도 쉽게 막차가 끊겨 버리기 때문에, 오늘처럼 일이 끝나고 회사 근처에서 저녁 약속이 있을 때에는 거의 약속된 것처럼 가현의 집에서 신세를 지곤 했다.

"택시 안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다가 집에 오자마자 난동을... 사내 메신저로 동영상 배포해 버린다."
"어라, 다 큰 어른이 칠칠치 못하게 멍이나 때리고 있길래 후배로서 도리를 다해 드린 건데. 덕분에 번쩍 났잖아요? 정신이."

그렇게 말하다 말고 다시 킥킥 소리를 죽여가면서 웃음을 흘린다.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당연하죠? 사람의 비명 소리는 제 쾌락 리스트의 2위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그것도 목석의 대명사 선배라고요? 레어 중의 레어잖아요? 지금까지 총 3번이었나. 첫번째는─"
"일일히 상기시켜주지 않아도 괜찮거든? 순위 한 번 높구만... 그럼 1위는 뭐야?"
"우는 소리."
"네가 변태라는 걸 다시 한 번 알려줘서 고맙다."

새인은 평소답지 않게 감정이 그득그득 실려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새인의 포커페이스는 무너지기도 힘들지만, 한 번 무너지면 수습하기도 힘들다. 투덜거리면서 휘청휘청 걷는 그녀를 보고 가현은 벌떡 일어나서 손짓했다.

"이리 오세요. 아까 공 맞았죠? 시속 150km의 공에. 퍽-하고."
"...그런 말을 들으니 괜히 더 아프네..."
"손가락에 한 번, 허벅지에 한 번."
"그런 웃는 얼굴 그만두면 안될까? 기분 나쁜데요. 대체 뭐가 그렇게 좋아?"
"그야─"

선배가 맞는 모습에 오싹오싹하니까요. 가현은 말꼬리를 길게 흐리면서 눈을 빛내며 강렬하게 그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새인이 씻고 있는 동안 미리 준비한 듯, 옆에 있는 구급상자를 뒤적여 연고와 반창고를 꺼냈다. 상처 부위에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뜯는다. 감아주면서 지나치게 힘을 많이 넣는 것은 분명 일부러이다. 아픈 것이 질색인 새인이었지만 더이상 가현을 즐겁게 해 줄 생각도 없었기에 눈썹을 한 번 찡그리는 것으로 소리가 나는 것을 참아냈다.

"...선배. 모처럼인데 좀 더 서비스 해 줄 수 없어요?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아프다고 소리지른다던가."
"됐거든요, 대리님."
"손 쪽은 이걸로 됐고. 다음은 다리."

가현은 새인이 입고 있는 원피스형의 잠옷을 망설임도 없이 슥-하고 걷어올렸다. 같은 여자끼리라고는 해도 아주 부끄럽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새인은 초조하게 가현이 옷자락을 내려놓기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빤히 새인의 허벅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말도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입니까?"
"아니. 공에 맞은 데는 멍이 든 정도지만... 이건 다른 의미로 심각한데."
"다른 의미? 그게 무슨... 히익!"

갑자기 가현의 손이 불쑥 짚어오는 통에 새인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차가운 통에 소름이 돋는다. 새인의 놀란 소리에 가현도 놀란 듯 시선을 다리에서 떼어 그녀에게로 던졌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손은 떼지 않는다. 가현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선배... 너무 근육이 없지 않아요?"
"...하아?"
"마른 거야 식사 챙기기 귀찮아서 대충 먹는 탓이겠지만, 운동 부족도 뭐 이런 운동 부족이... 이거 봐요. 이거. 말랑말랑해서. 탄력이라고는 조금도─"
"저기. 앗, 좀... 그..."

새인은 자신의 허벅지를 꾹꾹 눌러대는 가현의 손목을 잡아당긴다. 물론 조금도 떨어지진 않았지만 움직이는 것 만은 멈추어 주었다. 새인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가현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픕니다만."
"알아요. 일부러 멍든 부분을 누르고 있으니까."
"그러시겠지요..."
"소리는?"
"안 질러."
"재미 없긴."

가현은 손을 놓고 올라간 옷자락을 내려주면서 타이르는 듯한 어조로 말을 잇는다.

"어쨌든. 건강 챙기세요. 자꾸 이런 식이면 저희 집에 가둬놓고 제가 직접 사육하는 경우도 고려해보겠─."
"무슨 끔찍한 소리를. 애초에 내 건강에 가현이가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잖아?"
"신경 써야죠. 선배는 오래 사셔야 하니까."
"왜?"
"그야, 저도 오래 살 거거든요."
"............."

떫은 감이라도 씹은 얼굴을 하고 있는 새인에게 가현이 주문한다.

"...좀 더 기쁜 표정 좀 지어보지 그래요?"
"그런 무리한 요구를..."

죽을 때까지 함께하자-라던가, 보통의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면 새인도 순수하게 좋아하겠지만. 상대는 다름아닌 그 이가현이 아닌가. 인생에 대한 회의가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새인은 문득문득 떠오르곤 했던 마음 속의 질문을 기억해냈다.

"그러고보니 말인데."
"?"
"넌 내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거지?"

잘도 그런 부끄러운 대사는 자신만만하게 하실 수 있네요. 가현은 그렇게 말한 후 간단하게 대답을 돌려준다.

"튼튼한 점이요."
"...하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예상 외의 대답에 말문이 막힌 새인은 손을 흔들면서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도 그럴 것이 몸치에 체력부족. 운동은 질색에 아픈 것도 싫고, 하물며 맷집도 약하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싫어 계속 운동을 기피해 온 것이 분명 그 원인이겠지. 항상 소식하는 습관 덕에 살은 찌지 않지만, 근육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부실하기 그지 없는 몸인 것이다.

"몸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선배가 빈약한 건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거든요."
"그 정돈 아냐."
"특히 가슴이."
"쓸데없는 참견이야."
"튼튼한 것은 몸이 아니라, 여기."

콕, 하고 가현의 손가락이 새인의 가슴을 찌른다. 아니, 빈약하다고 말한 게 방금 전인데. 감을 잡지 못하고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새인을 보고 가현은 씨익 입꼬리를 당겨 웃는다. 어딘지 오만해보이기까지 할 정도로 당돌한 그 미소는 어지간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진귀한 것이다.

"마음이 튼튼하다고요."
"...무슨 소린지..."
"제 옆에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건 선배 정도 뿐이에요."
"내가 버틴 게 아니라, 네가 안 떨어지는 거겠죠."
"무슨 말을 들어도 무너지지도 않고."
"그건 아마 제대로 듣질 않고 있기 때문이겠지."
"이렇게 꼬박꼬박 치고 들어오는 것도 아───────주 좋아한답니다─!"
"아야야야야야, 거기 다친데다친데다친데─ 밟지 말아 줬으면 하는 바램이─윽...!"

새인은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와 함께 자신의 허벅지를 문지르면서 카펫이 깔린 바닥 위를 한 바퀴 굴렀다. 운동부족인 주제에 도망치는 건 잽싸단 말이야. 가현은 소파에 풀썩 쓰러져 깊게 몸을 묻었다. 저녁에 먹은 술기운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은아씨. 아무래도 완전히 빠져있는 것 같던데."

쿠션에 푹 얼굴을 묻고 있던 가현은 들려오는 새인의 목소리에 빼꼼 눈을 돌렸다. 새인 역시 바닥에 길게 쓰러져 있었다. 졸음이 섞인 목소리로 느릿느릿 말을 잇는다.

"이런 식으로 이용하는 거, 정말 괜찮아?"
"...자기가 제안해 놓고 무슨 소리에요?"
"아... 그거야 남의 일이니까. 대충 되는 대로 말한 거지."

되는 대로 말한 거 뿐이었냐. 가현은 얼굴을 묻고 있던 쿠션을 새인을 향해 힘차게 던졌다. 퍽! 정확하게 머리에 명중했다. 새인은 자신의 머리에 맞고 떨어진 쿠션에 손을 뻗어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실제로 일이 이렇게 되니 어째 심란해지네..."

가현은 그녀에게 편견이 없다느니 그런 소리를 했지만, 새인은 실제로 그런 것에 대하여 자신이 얼마나 막연하게만 느끼고 있었는 가를 이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아? 라고만 여기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는 일어날 거라고는 여기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렇게 주변에서 직접 접하고나서야 새삼스럽게 실감이 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자신이 아니라 가현의 쪽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은아씨가 저한테 빠져있다는 건 좀 의외네요."
"그래? 보기만 해도 널 좋아하는 건 알겠던데...?"
"음. 하지만 그건 뭐랄까, 조금 다른 느낌으로. 오히려 선배한테 관심이 있어보였는데?"
"나?"
"에에. 왜, 그 사람 선배 이름을 알고 있다고 했잖아요. 부서가 갈려 기회는 없었지만 줄곧 관심이 있었다고."
"어째서?"

새인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난감한 얼굴로 가현을 쳐다보았다. 가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대답했다.

"글쎄요. 뭐, 생긴게 마음에 들었다던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요? 전 매력있는 생김새라고 생각하는데. 안경이 워낙 사람의 인상을 고만고만하게 만드는 아이템이긴 하지만. 선배 안경 벗으면 꽤 귀여워요."
"...그걸 나보다 어린 사람한테 들으니 참으로 복잡미묘한 기분이로구나."
"그래서 여차하면 선배한테 넘어가도록 유도해 볼 생각이었는데."
".......................날 이용해 먹으려고 부른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그렇게까지는 과연 짐작 못했어..."

잠깐... 그럼 계획이 틀어지는 게 아닌가? 새인은 '남자를 다시 차버리기 위해 그 남자과 사귀는 은아를 꼬셔 남자를 차게 만들고 그 은아를 다시 가현이 찬다'의 먹이사슬 구도에 갑작스럽게 자신의 이름이 끼어들자 혼란을 느꼈다. 어려워보이는 얼굴로 고민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가현이 차근차근 다시 정리해준다.

"그러니까 은아씨가 만약 선배한테 마음이 기울게 되면. 남자를 찬 은아씨를 선배가 차세요."
"...그게 뭐야."

안 그래도 멀어지고 있는 '가현이 남자를 찬다'는 목적이 점점 더 멀어지는 거 아닌가? 아무리 상사라고는 해도 이런 일까지 시키는 건 아니라고 보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새인의 생각을 뚝 끊으면서 가현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그 이후 선배가 저한테 고백해 주세요. 그럼 그것을 제가 다시 차는 걸로─"
"하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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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은 '대학 후배였지만 빡세게 살아서 현재 대리인 얀데레 상사'와 '대학 선배였지만 졸업 후 취업준비도 안하고 노닥거리느라 현재 평사원인 츤데레 부하'입니다.

근데 부하 츤데레가 아니라 쿨데레됐다...(아님 시크데레)
얀데레는 아직까지 내공이 부족해서... 제대로 표현을 못하겠슴.

다행이다. 난 아직 일반인이야.




by 치즐 | 2009/02/26 03:34 | └ original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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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로그 at 2009/02/26 17:54
헐 글시가 안보여영 일단 ㅅㅅ
Commented by 로그 at 2009/02/26 18:04
앜ㅋㅋㅋㅋㅋ 요새 오리지날분이 부족했는데 하아하아 조쿠나아~ 1/2라는건 다음이 있다는거겠졍? 조쿠나~ 어느쪽에 빠지게 될지...그러고보니 치즐님 소설 오랜만인듯 ㅠㅠ 자주 좀 써주세영 ㅇ_<..
Commented by 치즐 at 2009/03/02 05:10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고파요 오리지널ㅠㅠㅠㅠㅠㅠㅠ 누구 없나요 나의 목마름을 채워줄 사람ㅠㅠㅠㅠㅠㅠㅠㅠ
Commented by 고냥이 at 2009/02/26 18:4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역시 내 마누라. 부제가 너무 마음에 드네요. 글 마음에 듣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고. 또 하나 마음에 드는 건 애들 이름. 뭔가 이미지에 딱 맞는 것 같아(...) 그런데 진짜 글씨 색 좀 어케 해바...전체 선택해서 글 읽어야 될 정도로 잘 안 보여요 =-
Commented by 치즐 at 2009/03/02 05:11
스킨 탓이야. 내 탓이 아냐. 그것도 아니면 고냥님의 노안 탓이얌...
부제 딱이죠? 삘 딱 오죠?!?!?!?!?
Commented by 이님 at 2009/02/26 21:2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치즐님 천재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부제 저게 뭐에요!!!!!!!!! 으악!!!!!!!!!!!!!!!!!!!!!!! 2번 저건 걍 제 이상형이구요!??!?!!?!? 제이미지 어쩌실거야/분노/분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넘 좋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치즐님 /경배/경배/경배 역시 치즐님밖에 없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mmented by 이님 at 2009/02/26 21:27
근데 진짜 이름 미묘하게 어울리는거 같아서 겁나네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리 생각해도 치즐님 천재셔................



그치만...일반인은 아닌듯.........................치즐님 제위에 계시잖아요.()
Commented by 치즐 at 2009/03/02 05:11
이님 이미지 굳혔네요!!!!! 추카!!!!!!!!!!!!!!!!!!!!!!이걸로 이님도 이글루스 공인 얀데레 취향녀가 되었습니다./박수/박수/박수

그리고 저 일반인..ㅇㅇ...
Commented by 버닝야옹 at 2009/03/03 00:04
어멋; 치짱도 OL물의 세계로...그러게 이런 거 진작 써줬으면 내가 안 써도 됐잖아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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