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待春

단순암기하는 동안에는 가사가 없는 노래가 필요해서 동방 구작 ost에도 손을 뻗었습니다. 결과는 대만족. 윈도우판 쪽에는 화려함이 밀리지만, 또 그 미디스런 맛이 끌리네요. 듣노라면 익숙한 것도 종종 들려서, 잘 생각해보면 동인 앨범들! 그런 걸 찾는 쏠쏠함도 있고. 소녀기상곡 첫 버전도 들어보고. 영야랑 췌몽이 묘하게 섞인 느낌이네요. 따지자면 capriccio쪽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 처음에 확 끌린다기 보다는 두고두고 계속 좋아요. 영야 쪽은... 영야쪽도 좋은데. 음양옥이 너무 난무하는 느낌이라 두려움...

....어 그러니까. 그냥 야밤에 노래 듣다가 공부하기 싫어 죽겠고, 그럼 짧게 뭐라도 써봐 라고 했던 고냥님 말도 있었고, 마침 다들 시골가서 아무도 없으니 적적하고(어차피 새벽이었지만)... 그런 고로 짧게 쓰려고 했는데. 미적미적 내용만 생각하고 바로 손을 대서 자꾸 길어졌네요. 마음에도 들지 않고. 끝까지 성가셔....

어쨌든. 예전에 썼던 부재의 뒷 이야기...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내용. 제목이 한자인 건, 음독해서 한글로 적으면 왠지 안 예뻐서임.






"...추워?"

콜록이는 레이무의 잔기침 위로 바싹 마른 낮은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턱 끝까지 이불을 덮고 있는 레이무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부스럭, 부스럭. 머리를 받치고 있는 베개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뱉어내었다. 뿌옇게 흐려진 시야에 무심코 눈을 찌푸리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면서 마리사의 눈에 눈을 맞추었다. 아, 실패. 초점이 맞지 않는 걸 눈치챈 마리사의 표정이 더욱 표루퉁해졌다. 보이지는 않아도 그 정도야 분위기로 알 수 있다. 정말이지 알기 쉬운 아이네.

"문. 닫을까?"

마리사는 반쯤 열려있는 장짓문을 흘끗 바라보면서 물었다. 괜찮다고 말을 꺼내려 했지만 폐에 가득 유리조각이 들어찬 듯 호흡이 아려 그만 두었다. 레이무는 최대한 가늘게 숨을 고르면서 고개를 작게 한 번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다시 천천히 고개를 되돌려 열린 문 사이로 빠끔 내보이는 앙상한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조금만 손을 대어도 당장 터져나올 것 같은데도, 여간해서 눈이 트지 않는다.

응, 그게 좋아. 레이무는 소리없이 웃는다.


떠나게 된다면,
아직 눈이 녹지 않았을 때가 좋겠다고 늘 생각했으니까.



-待春 : 봄을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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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흔 / chizru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옆에 누워있던 그녀가 나직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어온 적이 있다. 눈을 감은 채 가지런한 호흡을 하고 있었는데도 그녀는 여지없이 눈치채고 차가운 손으로 볼을 쓰다듬어 억지로 눈을 뜨게 만들었다.

[틈새로 보든가.]

피곤해서, 짧게 대답했다. 그녀정도라면 상대의 머릿 속에서 유영하고 있는 생각 정도는 여지없이 알아낼 수 있을테니까. 아니 애초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쉽게 네, 사실은-하고 말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을텐데.

[...]

그녀는 잠시 생각하고,

[싫어, 그건.]

짧은 웃음을 섞어 대답했다. 어째서?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어둡게 밤이 내려와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이 쪽이 보이는 듯 손가락 끝으로 턱을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대답해주었다.

[무서우니까.]

스멀거리면서 번져오는 잠기운에 무엇이 무서웠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어차피 대답이야─ 대충 짐작이 가는 것이었으니까.








떠나야한다면 겨울이 좋다.

당신은 요괴.
나는 인간.

너무나도 길고 끝 없는 그 생애에 설령 이 모든 목숨을 걸어 나를 새겨넣는다 한들,
시간은 얼룩 하나 남기지 않고 그것을 씻어낼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남긴다는 행동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무엇인가 남긴다한들 언젠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된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당신은 순간의 변덕으로 손을 건네고.
나는 순간의 미혹으로 그에 응하고.

짧았던 한순간은 긴 영원에 휩쓸려 곧 아스라지겠지.


분명 그런 정도의 인연.



그러니 떠나는 것은 그녀가 곁에 없는 이 겨울에.

혹여라도 그녀의 영원과 함께하기를 바라는 헛된 소망을 품지 않도록.


철모르는 요괴 하나가 한창 달콤한 꿈 속을 헤메고 있을 때,
아무리 마음으로 불러본다 한들 대답해주지 않는─ 그런 단절을 음미하며,

잡았던 그 손을 놓아 처음 만났던 빈 손으로 되돌려 주어야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리사."

적막으로 가득 찬 방 안에 레이무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울린다. 벽에 기대어 앉아서 눈을 부릅뜨고 허공께를 노려보고 있던 마리사는 갑작스럽게 불린 탓에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레이무가 쓰러지고 요 3일 내내, 그녀는 마리사가 말을 걸지 않는 이상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던 것이다.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가느다랗게 떨리는 호흡에 고통이 배어나왔기에 쉽사리 말을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 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레이무가 먼저 말을 걸자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쁜 마음에 벽에서 조금 등을 떼어 레이무 쪽으로 몸을 당긴다.

"응?"
안 자?"

레이무의 시선이 마리사의 어깻죽지 근처를 헤메인다. 코 끝을 살짝 찡그리면서 묻는 그녀의 말은 너무나도 짧았기 때문에 무슨 의미인가 잘 파악되지 않았다. 천천히 곱씹고 간신히 의미를 파악할 즈음에는 레이무가 긴 호흡과 함께 다음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너. 자지 않은지 벌써 사흘 째야."
"알아."
"안 자?"
"안 자."
"......."

몇 마디에 벌써 달아오른 호흡을 다시 정돈하면서 레이무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는 눈치챘다. 마리사는 레이무가 어디론가 가버리지 않도록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바보같은 것에도 정도가 있지. 목을 울리며 웃는 것조차 못하고 소리없이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면서 그 유쾌함을 삭힌다.



레이무는 마리사의 불면을 막을 수 없다.
마리사가 레이무의 죽음을 막을 수 없듯이.

그것이 서로의 의지라는 것을,
서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불평하나 내뱉지 못하고,
침침하게 가라앉은 방 안에서 소리없이 연소해만 간다.

마지막이 올 때까지.



바삭.



"마리사."
"...왜."
"린노스케씨랑 같이 이야기 했었던 것 기억나?"

레이무가 제법 긴 호흡으로 무리없이 이야기 했기에 마리사는 눈에 살짝 윤기가 돌았다. 스윽, 몸을 일으켜 허리를 꼿꼿히 세우면서 볼을 긁적인다.

"응? 어떤?"
"인간인 마법사는, 어느 특정한 마법을 익히는 순간 불로불사가 된다면서."
"아아. 그랬지. 레이무가 모르고 있어서 깜짝 놀랐어."
"응... 그다지 눈여겨 보지 않았으니까. 난 마법사가 아니고."

바스락, 바삭.

"마리사는 그 때가 오면, 어떻게 할. 래?"
"응? 음... 글쎄. 별로 생각해 본 적 없는걸."
"뭐, 당신이라면 그럴거라. 생각했지만."
"뭣이?! 고새 좀 힘 돌아왔다고 바로 조잘대는 것 봐라."
"사실이잖아. 설마 관심도 없, 었을 줄은 몰랐지만."

바삭.

"으음. 글쎄. 마법사니까. 당연히 흥미진진하지."
"응."
"근데 왠지 불로불사라는 건... 인간이 아니게 된다는 거잖아, 역시."
"그것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지. 린노스케씨."
"어느 면에서 께름칙한 것도 사실 아닐까?"
"그런가...?"
"...뭐, 결국 그 때 되봐서 내키는 길로 가겠지만. 아직은 멀었으니까."
"응."

바삭. 우득, 드득.

"...앨리스는. 잘 지내?"
"하아? 뜬금없이 왠 앨리스가 나와?"
"생각해봤는데."
"응?"
"그 애는, 착한 아이니까."
"?"
"너무. 아프게 하지 마."
"....레이무?"

마리사의 목소리가 불현듯 날카로워졌다. 새털처럼 가볍고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면서 사그라드는 레이무의 목소리에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바스락,
고통을 참기 위해 손에 가득 말아 쥔 이부자리가 서로를 갉아오는 소리.

"레이무...?"

드드득,
신음을 삼키기 위해 새하얗게 질리도록 움킨 손가락 마디가 꺾이는 소리.

"레이무!"

얕고 희미한 숨을 내쉴 때마다, 이불 속에 몰래 감춘 레이무의 손이 고통스럽게 뒤틀리고 있었다.



낙원의 경계를 품에 안은 채,
그 누구보다도 이 환상향을 사랑하는 소녀를 떠올린다.


봄이 오면 피는 벚꽃,
여름이 오면 터지는 신록.
가을에는 익어가는 술.
겨울의 눈에 하얗게 물드는 신사.

그 어느것이라도 사랑스러운 법이라고,
꿈을 꾸는 듯한 눈동자로 이야기 했었지.


가끔은,
그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던 것이 생각났다.


─유카리. 너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구나.
그 아련한 금빛의 눈동자에 나지막히 속삭인다.


하지만 괜찮지?

너의 비어버린 손을 보면,
내가 깨워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어날 수 있을 테니까.



어쩌면 그녀는 꿈의 여운에 취해 ─조금은 슬퍼할지도 모르겠다.
그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라면 유감.



"후..."
"레이무..."


당신은 순간의 변덕으로 손을 건네고.
나는 순간의 미혹으로 그에 응하고.

짧았던 한순간은 긴 영원에 휩쓸려 곧 아스라지겠지만,


유카리.
나는 아마도─




















"뒤돌아보질 않는구나, 무녀."
"후회할 일이 없으니까."

찰랑이는 물 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소리에 고요히 생각을 접으면서 레이무는 대답했다.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 도통 죽은 녀석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실지로 죽은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예전에 봤을 때나 지금 봤을 때나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는 녀석이다. 여기서 흔들. 저기서 흔들. 외부력이라고는 작용하지 않는 듯, 홀로 두둥실 떠다니는 이상한 홍백의 구름.

누구보다도 짙은 빛과 향을 지녔으면서,
실지도 손에 잡았을 때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無色.

그렇기에 사신은,
조금 궁금해져서 필요도 없는 이야기를 꺼내었다.

"만약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돌아갈래?"

사신의 말에 레이무는 의아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구나. 그런 건 반칙이잖아."
"뭐, 그렇지. 실제가 아니라. 만약에─라는 거야. 만약에 돌아갈 수 있다면?"
"응. 돌아가지 않아."

역시나 시원스럽게 단언한다. 실망. 정말이지 미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네. 아무리 봐도 인간같지 않은 녀석이다. 재미없어.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리는 코마치를 보며 레이무는 쿡쿡 소리죽에 웃으며 뱃전에 비스듬히 등을 기대었다.

"돌아가면, 다시 만나겠지."
"...응?"
"만난다해도, 결국은 다시 헤어지겠지"

출렁, 하고─
강의 색이 한 층 더 깊어졌다.

"또 다시 헤어지라고 말하는 거야? 그건, 심한데."

조금 씁쓸하게 웃는 그녀는 왠지 모르게 울고 있는 것만 같았다.
텅 비어있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주변에 순간적으로 말간 붉은 빛이 감도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안 만나면 되잖아. 돌아가서도?"
"만나지 않아도, 그녀는 찾아올거야."
"흐음...?"
"유카리가 피안으로 쳐들어오지 않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니까."


유카리는 단 한 번도 사랑한다 말한 적이 없었다.
레이무 역시 단 한 번도 사랑한다 말한 적이 없었다.

그것을 바란다는 것은 서로에게 너무나 잔혹한 일이니까.


"자기멋대로인 녀석이니까, 자기가 내리지 않은 끝에는 분명 불만일테지."


그 무게를 알고 있었기에 무엇 하나 전하려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달아올랐던 그 호흡만큼은 감추는 것이 불가능했다.

열이 오른 숨결은, 식어버리기 전까지는 분명한 진심.


"내가 돌아간다는 건, 내가 조금이라도 미련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야."


그리하여 당신과의 계속을 그리워하는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 작은 흔적에 매달려서 진심의 온기를 잃지 않으려 계속하여 꿈을 찾아 헤메일테니까.


"응?"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오겠지. 기분나쁜 일이지만 그녀가 전력으로 따라붙는다면, 빠져나올 자신은 별로 없어."
"..."

영생을 사는 주제에,
어찌도 그리 찰나에 대한 집착은 강한지.

"난 인간을 포기할 생각도 없으니, 결국 또 헤어지게 될텐데. 생각이 짧은 요괴지."


누워있는 동안은 줄곧 아팠었다.

몸이 호소하고 있는 통증 정도는,
그런 아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아닌 척 하려해도,
헤어지는 것은 역시나 너무나도 아팠기에─


다시는 그런 일은 겪고 싶지 않아.



"...음. 흠..."

코마치는 레이무의 말을 천천히 곱씹으면서 노를 잡은 손에 힘을 넣었다. 물살이 거세고 강의 깊이가 고르지 못하여, 배가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맴을 돌고 있었다.

"그래봤자 나중에 환생하게 된다면, 결과적으로는 돌아가게 되어있잖아? 기억과 인연은 사라지겠지만."
"코마치."

레이무의 목소리가 한층 더 깊게 잠겨들었다.
별다를 것 없는 소녀의 목소리가 무겁게 어깨를 짓누른다.

"물론 그 요괴가 괴로워하는 걸 보는 건 꽤 흥미있는 일이지만,"
"..."
"그래도 그런 짓을 할 정도로 못 되진 않았어."
"아니, 그렇다고 환생을 안하나?"
"하지 않아."


무엇보다도.

이 기억을,
이 인연을,

잊는다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어이. 하쿠레이 레이무씨."

노를 젓는 손이 마침내 멈추었다. 슬슬 관심을 끊고 강을 건너는 것에만 집중하려 해도, 너무나도 확신에 차 있는 그 목소리에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코마치는 레이무를 곧바로 마주보면서 천천히 입을 떼었다.

"확신하고 있네. 그건 시키님이 결정할 일이잖아? 멋대로 규칙을 박살내면서까지 버틸 생각은 안하는 게 좋을 걸."
"바보네. 수순대로 따르다보면 더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걸."
"하아?"

요동치고 있는 배 안에서도, 레이무의 담담한 목소리는 잔물결 하나 일지 않는다.

"환생이라는 건, 자신의 죄를 모두 참회한 후에 하는 거잖아."
"뭐, 그렇지."
"착실하게 살아왔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
"그래도 단 한가지의 죄는, 영원을 넘어서도 씻을 수 없을 터."


신을 섬기는 자로서 색(色)에 눈이 먼 무녀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고결함을 버리고,
인간의 편에서 요괴를 벌할 의무를 저버리고 그 존재를 꺼리낌없이 허락한 채,
그 누구보다도 공정한 위치여야함을 망각한 채 단 하나의 존재를 위해 전심으로 기울었다.


"아마도 혼의 평생 동안을 피안에서 보내야만 하겠지."



순간의 매혹이라던가,

찰나의 실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느새인가 그 허상에 진심을 허락해버렸다.


"코마치. 노를 저을 필요는 없어."


깊은 자주빛으로 물들어버린 죄.
짙은 보라빛의 향이 배인 죄.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무녀가 요괴에게 품은 연심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다.


"죄의 깊이를 묻는 이 강은, 결코 그 끝을 드러내지 않을테니까."


꿈 속으로 발을 들이던 그 순간부터 놓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깨어나 그 환상을 잡을 수 없다면, 차라리 영원히 깨어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을.





아아.
홀로 꿈 속을 헤메인다 해도 관계없다.


아마도─ 나는 계속하여 그녀를 사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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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목을 축이기 위해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던 한 소녀가, 자신의 길고 가지런한 흑빛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쥐이는 감촉에 고개를 들었다. 재색의 특색없는 옷을 걸친,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생김새. 마르고 작은 몸집과 꼬리가 처진 눈매가 유약한 인상을 주는 여자아이였다.

"...?"

돌아보면, 화사한 자줏빛과 깊은 검은 빛으로 몸을 감싼 금발의 여성이 눈이 아릴 정도로 반짝이는 태양빛의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빈민촌에서 만나기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존재였다. 소녀는 조금 놀란 듯 눈을 살짝 크게 뜨면서 상대를 바라보았다. 티하나 없이 까만 소녀의 눈은 설풋 붉은 기운이 감겨있다. 아니, 감겨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소녀를 바라보는 여성은 그저 만족한 듯이 입술을 당겨 웃으면서 옷깃에서 작고 오래된 참빗을 꺼내들었다. 화려한 그 모습에는 그다지 걸맞지 않을정도로 아무런 멋을 부리지 않은 빗이었다. 아무리 봐도 본인의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자신이 잡아당겨 흐트러진 소녀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빗어내려 정돈해 주었다.

"바람이 차니, 밤이 오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도록 해요."

소녀는 뜬금없이 건네오는 말에 입술을 반쯤 벌린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의미도 이유도 알 수가 없다.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지적을 해주면 좋을까. 하지만 상대가 생글생글 너무나도 기분좋게 웃고 있기에 왠지 찬물을 끼얹기도 착잡해진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내 어색하게 마주웃어주었다.

"아... 네. 언니도."
"응. 당신도."

그녀는 다짐이라도 받듯 다시 한 번 대답하면서 아무런 미련도 없이 뒤돌아섰다. 멀어지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소녀는 그제야 코 끝에 아련하게 벚꽃의 향이 감돌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소녀는 코를 찡그리며 떠올린 물로 가볍게 목을 축인다. 아니, 그럴리 없겠지. 고개를 설레 가로저으며 피곤한 듯 옆의 낮은 돌담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는다. 긴 머리카락이 나풀거리며 춤을 춘다. 마치 봄을 맞은 나비처럼.




"아, 좀 늦었다. 미안미안... 오야. 표정이 왜 그래?"

굽이쳐서 흘러내리는 짙은 핏빛의 머리카락.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여우눈을 가진 여성의 목소리에 우물가의 소녀는 퍼뜩 정신을 되돌렸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는 있지만 잘 인식이 되지 않았기에 조금 길게 생각을 가다듬은 후, 소녀는 입을 열었다.

"코마치."
"어, 진짜 안 좋아 보인다. 무슨 일 있었어?"
"사신의 변장은, 누구도 알아 볼 수 없다고 했지?"
"응? 그렇지. 확률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기능'인걸."

확실히. 실지로 그녀가 코마치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막상 마주했을 때 누구인지 혼란을 일으킬 정도였으니까. 소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내 못마땅한 듯 고개를 설레 털어내며 일어섰다.

"...그래. 그렇겠지."
"...역시 안색이 별로인걸. 일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어? 시키님한테 혼날만한 건가? 그럼 곤란한데."
"아니. 그냥 좀. 석연찮은 게. 기분 탓이겠지만, 분명."

레이무는 코를 찡그리면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불안하게 좌우로 틀어지는 걸음걸이였다. 그녀는 자신의 뒤를 느긋하게 따라붙는 코마치에게 투덜거리며 불평의 말을 던졌다.

"역시. 다음부터는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현계로 날 끌고 내려오지는 말아줘."
"에에─ 왜? 쓸만한 건 쓰지 않는 건 자원낭비잖아?"

가늘게 뜬 손톱 달이 마치 그녀가 연 틈새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어쩐지 가슴 속 한 켠이 아릿하게 시려왔다.

분명, 밤공기로 하는 호흡이 차가웠기 때문이겠지.

"────흔들리니까."






"───당신은, 그런 사람이지."

제대로 닫히지 않은 틈새 사이로 가느다란 달을 바라보면서 유카리는 소리죽여 웃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런 귀여운 점은 여전하구나. 손에 쥐고 있는 작은 빗에 입을 맞춘다. 그저 마주쳤을 뿐인데도 샘이 터진 양 행복이 배어나고 있었다. 아, 곤란한 걸. 이래서야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됐을 때는 행복에 압사해서 죽어버릴지도 몰라.

"뭐. 그 고집이 언제 꺾일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이 쪽이 누리는 것은 영겁의 세월.
기다리는 것 정도는─ 언제까지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숨김글의 난이도를 체크합니다. 읽으신 분들은 답글을 다실 때 맨 마지막에 별을 하나 찍어주세요.)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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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해피엔딩이 좋아요.
아무리 좋은 글이지만, 슬픈 결말이면 쓸쓸하잖아요.../ㄷㄷ


그래서 쓰는 글이라도 좀 행복결말 위주로 쓰는 편입니다.
도저히 그럴 전개가 경우에도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해피의 여운을 남기려고 발악하는.





그런 17세.





.......17세타령 ㅂ모님이랑 캐릭 겹쳐서 안하려 했는데 습관되서 종종 튀어나오네요. 쨌든... 부재보다도 더 짧게 생각하고 있는 글이었는데 어째 하다보니 급 길어져서 실망... 엔터를 치긴 했어도. 쯥, 짧으면서도 내용을 다 담는 글을 쓰고 싶네요. 자간을 줄이고 글자를 작게 해볼까.

그 전에 일단 나머지 한자부터 마저 외워야겠지. 이제 다 놀았으니까 다시 갈께:^...

by 상흔 | 2008/02/09 00:52 | └ fan fiction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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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고냥이 at 2008/02/10 21:50
악...ㅠㅠㅠㅠㅠㅠ 단순히 레이무 감기 걸린 얘기인 줄 알았더니;;; 저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레이무는 겨울에 떠날 것 같아요. 그게 너무나 잘 어울려.....슬프게도(☆)
Commented by chizru at 2008/02/20 06:32
고냥/ 겨울은 헤어짐, 봄은 만남. 보통은 그런 느낌이죠. '바라노니, 꽃다운 봄에 죽기를'이라는 구절을 생각하면서 써봤어요. 봄을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겨울을 바라는 사람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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