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21일
[동방] 부재
근 일주일간 바느질만 했더니 글 쓰고 싶어서 미치겠는 거죠... 결국 폭주해서 '뭐라도 쓰지 않으면 더이상 옷을 만들 수 없어!!!!!!!!!!'하는 마음으로... 써야할 거리가 잔뜩 있는게 가볍게 빨리 하나라도 써야겠다는 마음에 짧은 한 토막.
봄이 오면 벚꽃이 피고,
여름이 오면 터지는 신록.
가을에는 술이 익어,
겨울의 눈과 함께 즐기니.
그렇기에 이 환상향을 사랑했다.
아마도 이 마음은 이 육신과 영혼의 경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한들 영원하겠지.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이 낙원을 저주할 수 밖에 없었다.
벚꽃의 눈이 트기 시작한 날이었다.
"당신이 온 것을 보면, 확실히 봄이 오긴 한 것 같네."
무녀는 마당을 쓸던 비를 멈추며 살며시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숨을 들이키자, 향긋한 봄의 향이 깊숙히 몸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그것은 짙은 보라색과 검은 색의 옷으로 몸을 감싼 요괴가 몰고 온 향이다.
"이번 겨울은 왠지 길었던 것 같네. 하쿠레이의 무녀님은 어떠신가?"
길게 갈라진 틈새에서 우아한 동작으로 내려온 요괴는 벚꽃으로 한껏 치장한 듯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물었다. 무녀는 고개를 살짝 갸웃하고는 다시 쥐고 있던 빗자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글쎄요. 평소와 다를 것 없었는데. 아아, 조금 추웠을지도."
"그런가? 자는 도중에 세 번이나 깨어버렸는데도 아직도 겨울이길래, 환상향에 있는 겨울 빼고 나머지 계절은 모두 전멸해 버린 줄로만 알았어."
후- 요괴의 능청스러운 말에 미소를 배어물었다. 살짝 돌아서면서 짓는 눈웃음은 이제 막 소녀의 티를 벗으려고 하는 그 또래의 여느 여자아이와 다를 것이 없다.
"그거, 그저 나이가 든 것 뿐 아닌지?"
무녀의 말에 요괴는 대답하지 않았다. 초점이 살짝 풀린 눈으로 몽롱하게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부채 끝으로 자신의 입술을 지그시 누르면서 홍과 백으로 몸을 감싼 무녀를 쳐다보았다.
"?"
무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런 요괴를 쳐다보았다. 갈색이 감도는 검은 눈동자가 의아함을 띄고 있었다. 환상향 최대최악의 요괴라고 평판이 자자한 상대를 마주하고도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모습으로.
간혹,
그 눈이 피에 물든 듯 깊은 진홍빛을 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은 춥지 않아?"
요괴는 입을 다물면서 잔잔하게 미소지었다. 작은 틈새를 열어 털실로 꼼꼼하게 짠 목도리를 꺼내었다. 그것을 휑하니 비어있는 무녀의 목에 정성껏 감아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따뜻하게 하고 다니세요. 아직은 쌀쌀하니까. 그러다 병이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아하하. 벌써 이렇게나 날이 풀렸는데. 괜한 걱정이네요, 그거."
무녀는 실없이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요괴가 둘러준 목도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다시 한 번 자신의 손으로 매듭을 잡았다.
요괴는 손을 뻗어,
그 부드러운 갈색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응?"
무녀는 눈을 올려, 자신보다 한 뼘은 큰 요괴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피식-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요괴는 그 반응에 눈을 살짝 크게 뜨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무녀는 즐거운 듯 킥킥 웃으면서 톡톡 튀어오르는 목소리로 말을 던졌다.
"왠지 엄마 같은 얼굴을 하고 있네, 경계의 요괴씨."
"그래? 그렇다면 기쁜데."
요괴가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하는 말에 무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그녀의 손을 살짝 밀어내었다.
"인간한테 그런 소리를 듣고 좋아하는 요괴라니. 진짜 괴짜라니까."
"어디가 이상할까? 정말로 기뻐서 기쁘다고 말 한 것 뿐이야."
"모르겠네..."
"어린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지."
"헤에. 그렇게 잘난 척 하고 있으면, 퇴치해 버릴지도 몰라요?"
"어머. 무녀님 실력으로는 무리."
요괴는 장난스레 무녀의 볼을 꼬집으면서 돌아섰다. 무녀는 꼬집혀서 얼얼한 자신의 볼을 손 끝으로 문지르면서 흐음-하고 길게 목을 울린다.
"이제 마리사씨한테도 가끔은 이길 수 있는데."
"어라. 그건 훌륭하네."
"책 읽는 투로 말하고 있어요. 당신."
"음음. 진심이에요. 정말로. 훌륭하다, 훌륭해."
요괴는 자신의 뺨을 감싸고 있는 무녀의 손 위를 토닥토닥 두드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어린아이를 어르는 듯한 태도가 불만인 듯 무녀는 볼을 조금 부풀리면서 가볍게 그녀를 흘겨보았다.
"그럼, 이만 돌아가볼까."
"아... 응."
조금 아쉬운 듯한 소녀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한다.
"감기 조심하고."
"..."
"그런 게 잘못하면 큰 병이 될 수도 있으니까-"
"...있잖아요."
자신의 말을 파고드는 앳띤 목소리에 요괴는 무녀를 등지고 있던 몸을 무겁게 돌린다.
그것을 눈치채이지 못하도록 평소처럼 웃어주려 했었지만,
우연히 벚꽃나무에 튼 눈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겨울에 잠에서 깨면 항상 찾아오면서, 아직까지 단 한 번 툇마루에도 앉지 않네요."
"..."
잠깐 들르려고 했었을 뿐인데, 너무 오래 머무른 것은 확실하구나. 요괴는 쓴웃음을 지었다.
"엊그제 마리사씨가 찾아와서 여기 있는 도깨비씨랑 잔뜩 마시고 취해 잠들었었는데."
연하고 부드러운 갈색의 머리카락이 이렇게나 많은 햇빛을 받고 있는데도,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깊은 흑색으로 보이고 있었다.
"잠결에 횡설수설 유카리씨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어요."
"..."
"그러니까-"
"있지."
막 벚꽃의 눈이 트기 시작할 무렵.
툇마루의 장짓문 너머 다다미 방에 이불을 깔고 누워,
밉살스러울 정도로 평온한 얼굴로 영원한 잠에 빠져버렸던 한 명의 소녀가 있었다.
"나는 이 곳을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유카리는 천천히 입술을 떼어 목소리를 흘리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보았다.
하얗게 흩어져 있는 구름 사이로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는 누군가의 모습을 쫓듯이.
"딱 한 번. 모든 것을 잊고 환상향을 증오했던 순간이 있어."
도착했을 때에는 모든 것이 끝나있었다.
겨우내 한 번 깨어나는 일 없이 깊은 단잠을 자고 일어나자마자 들은 란의 담담한 통보에, 유카리는 어딘가에 홀린 듯 흔들흔들 일어나 환상향 끝자락에 있는 작은 신사에 도착했다.
시신을 지키고 있는 것은 그녀의 오래된 친우인 금발의 마법사와, 벽에 기대어 조용히 잠들어 있는 인형사 두 명 뿐이었다. 많은 인요들이 하쿠레이의 신사에 몰려들었지만 신경질적인 인간 마법사의 호통에 결국 모두들 돌아가버렸다고 한다.
가늘던 호흡이 멈춘 것은 벌써 3일 전.
어딘가의 요괴에 대단한 혈전을 벌인 것도 아니고, 숨기고 있었던 지병이 그녀의 목숨을 갉아먹어 갔던 것도 아니었다.
처음은 단순한 감기었다고 한다.
겨울바람을 누르고 서서히 봄이 찾아오기 시작할 즈음 가볍게 기침을 콜록이는 정도였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그 병마는 소녀의 몸 안에 자리를 잡고 일주일이 지나는 순간 목숨을 앗아가는 낫을 치켜들었다.
봄맞이 탄막전을 벌이러 온 마법사의 앞에서 갑자기 피를 쏟고 그대로 자리에 누운 그녀는 삼 일 동안 자신의 생명력을 고요히 불태운 뒤- 열린 장짓문 너머 설핏 벚꽃의 눈을 보고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린 후,
담담하게 숨을 거두었다.
"..."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었다는 사실이 분했다. 억지를 부려 멋대로 몸을 잇고, 마음을 빼앗은 후 안도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대답이 두려워 귀를 꽉 틀어 막은 채로 단순히 손에 넣은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었다니. 너무나도 바보 같았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녀가 평온을 가장한 채 한 호흡 한 호흡을 깊은 고통과 함께 보냈을 그 시간에,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결국 달콤하게 잠에 취해 있었던 것 뿐이었다.
너무나도 무력하다. 강대한 힘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모두가 두려워 하는 야쿠모 유카리라는 요괴는, 고작 인간의 죽음 하나도 막지 못하는 형편없는 존재임을 다시 깨달았다.
그렇기에 울었다.
소녀를 본 순간 멈추어 섰던 그 자리에서 계속 움직이지 않은 채,
화가 날 정도로 편안한 얼굴을 한 채 홀로 멋대로 잠들어 버린 소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아아.
이 아이가 없는 환상향 따위,
없어져버리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다.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네."
앨리스의 말에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밖은 새카만 어둠이었다. 3일 내내 줄곧 자지 않고 시신 옆에서 버디고 있던 마리사는 결국은 툭-하고 실이 끊어진 듯이 잠들어버렸다. 툇마루에 나와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버린 그녀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앨리스는 가만히 입을 다문 채 유카리에게 술잔을 건네었다. 어머, 당신은 술 금지. 유카리가 신사에 와서 처음으로 한 말에 앨리스는 줄 곧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메마르고, 유약한 목소리였다. 앨리스는 눈을 감고 살짝 미소짓는다. 한 잔 정도는 괜찮아.
"50년을 사는 인간이 누군가를 잊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얼마 정도일까?"
유카리는 빈 술잔을 바라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글쎄. 10년 정도면 될까? 아무리 길어도 그 삶 평생의 길이를 넘어서지는 않겠죠."
앨리스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차가운 밤바람에 맡긴 채 나지막히 대답한다.
"50년짜리의 인간이 10년 정도 걸린다손 치면, 1000년짜리 요괴는 200년 정도 걸리는 걸까."
"...단순한 계산으로는 그렇겠네. 그렇다면."
쪼륵.
술잔이 차오른다.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사는 요괴라면,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걸리는 걸까?"
"그런가."
그건 곤란하군.
유카리는 술잔을 비우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을 감았다. 피곤했다. 인간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던 것이 언제적 일이었더라.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 다는 것은, 몇 번을 겪는다한들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구나. 새삼 다시 깨달으면서 나무기둥에 머리를 기대었다. 코 끝이 아려왔다. 방금 전 마신 술이 그대로 눈물이 된 듯, 전부다 짜내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시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밉살스러운 아이같으니.
새털같이 가벼운 말 한마디조차 남기지도 않았다.
모든 미련을 그녀에게 맡긴 채, 여느 때처럼 훌훌 털고 하늘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변하는 것은 없다.
지금 흐르는 눈물조차도 얼마 가지 않아 곧 말라버린다.
이 탁해진 감정을 맑게 가라앉힌 후,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일어설 것이다.
환상향은 여전히 사랑스럽고,
그런 낙원을 지키는 경계에 묻혀 살아가리라.
그녀가 사라져도 다시 봄은 오고, 시간이 흘러 겨울이 오면 다시 잠이 들겠지.
일어나면 단정한 이마를 찡그리는 무녀를 보기 위해 하쿠레이 신사로 찾아가서, 툇마루의 장지문을 보고서야 자리에 누워있던 그 날의 그녀를 떠올리겠지.
잊었다고 생각했던 이 마음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확인하겠지.
그리고 뒤엉키는 마음의 앙금에 겁먹어,
다시는 이 툇마루에조차 오르지 못하리라.
레이무.
나는 어쩌면-
"...유카리씨?"
"응?"
"무슨 생각 하고 있어요? 멍하니. 배실배실 웃고 있다구요."
"응."
요괴는 자신의 옆에 서서 말똥한 눈으로 쳐다보는 무녀의 머리를 가만히 껴안으며 머리에 얼굴을 묻었다. 코끝을 간질이는 머리카락에서, 너무나도 그리운 향이 났다.
"유카리씨? 웃, 답답해요. 저기?"
"...응."
그것이 우스웠기에, 눈가가 조금씩 젖어들었다.
"응..."
아아. 어쩌면,
나는 그녀를 사랑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
레이무는 요괴퇴치로 죽는 것도 그렇지만,
어쩌면 이런 식으로 죽는 것도 왠지 답다...싶어서.
가볍게 걸린 감긴 줄 알았는데 갑자기 악화되더니, 자리에 누운채로 서서히 병약해져서- 결국은 죽는. 그런 거.
그리고 유카리는 자고 있어서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는 이야기. 운명의 붉은 실의 가는 진동 하나 없이.
맥빠진다. 는 느낌으로.
허탈하다...ㅠㅠㅠㅠ 이런 기분?
...어쨌든 너무 급하게 써서 쓰고 싶은 걸 잘 못 표현하긴 했는데 뭐, 이젠 아무래도 좋아:^:^:^!!!! 난 글을 썼다!!! 그러니까 이제 다시 바느질을 하러 가겠어!!!!
봄이 오면 벚꽃이 피고,
여름이 오면 터지는 신록.
가을에는 술이 익어,
겨울의 눈과 함께 즐기니.
그렇기에 이 환상향을 사랑했다.
아마도 이 마음은 이 육신과 영혼의 경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한들 영원하겠지.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이 낙원을 저주할 수 밖에 없었다.
벚꽃의 눈이 트기 시작한 날이었다.
-부재-
http://kizato.egloos.com
by. 상흔
by. 상흔
"당신이 온 것을 보면, 확실히 봄이 오긴 한 것 같네."
무녀는 마당을 쓸던 비를 멈추며 살며시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숨을 들이키자, 향긋한 봄의 향이 깊숙히 몸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그것은 짙은 보라색과 검은 색의 옷으로 몸을 감싼 요괴가 몰고 온 향이다.
"이번 겨울은 왠지 길었던 것 같네. 하쿠레이의 무녀님은 어떠신가?"
길게 갈라진 틈새에서 우아한 동작으로 내려온 요괴는 벚꽃으로 한껏 치장한 듯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물었다. 무녀는 고개를 살짝 갸웃하고는 다시 쥐고 있던 빗자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글쎄요. 평소와 다를 것 없었는데. 아아, 조금 추웠을지도."
"그런가? 자는 도중에 세 번이나 깨어버렸는데도 아직도 겨울이길래, 환상향에 있는 겨울 빼고 나머지 계절은 모두 전멸해 버린 줄로만 알았어."
후- 요괴의 능청스러운 말에 미소를 배어물었다. 살짝 돌아서면서 짓는 눈웃음은 이제 막 소녀의 티를 벗으려고 하는 그 또래의 여느 여자아이와 다를 것이 없다.
"그거, 그저 나이가 든 것 뿐 아닌지?"
무녀의 말에 요괴는 대답하지 않았다. 초점이 살짝 풀린 눈으로 몽롱하게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부채 끝으로 자신의 입술을 지그시 누르면서 홍과 백으로 몸을 감싼 무녀를 쳐다보았다.
"?"
무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런 요괴를 쳐다보았다. 갈색이 감도는 검은 눈동자가 의아함을 띄고 있었다. 환상향 최대최악의 요괴라고 평판이 자자한 상대를 마주하고도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모습으로.
간혹,
그 눈이 피에 물든 듯 깊은 진홍빛을 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은 춥지 않아?"
요괴는 입을 다물면서 잔잔하게 미소지었다. 작은 틈새를 열어 털실로 꼼꼼하게 짠 목도리를 꺼내었다. 그것을 휑하니 비어있는 무녀의 목에 정성껏 감아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따뜻하게 하고 다니세요. 아직은 쌀쌀하니까. 그러다 병이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아하하. 벌써 이렇게나 날이 풀렸는데. 괜한 걱정이네요, 그거."
무녀는 실없이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요괴가 둘러준 목도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다시 한 번 자신의 손으로 매듭을 잡았다.
요괴는 손을 뻗어,
그 부드러운 갈색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응?"
무녀는 눈을 올려, 자신보다 한 뼘은 큰 요괴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피식-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요괴는 그 반응에 눈을 살짝 크게 뜨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무녀는 즐거운 듯 킥킥 웃으면서 톡톡 튀어오르는 목소리로 말을 던졌다.
"왠지 엄마 같은 얼굴을 하고 있네, 경계의 요괴씨."
"그래? 그렇다면 기쁜데."
요괴가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하는 말에 무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그녀의 손을 살짝 밀어내었다.
"인간한테 그런 소리를 듣고 좋아하는 요괴라니. 진짜 괴짜라니까."
"어디가 이상할까? 정말로 기뻐서 기쁘다고 말 한 것 뿐이야."
"모르겠네..."
"어린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지."
"헤에. 그렇게 잘난 척 하고 있으면, 퇴치해 버릴지도 몰라요?"
"어머. 무녀님 실력으로는 무리."
요괴는 장난스레 무녀의 볼을 꼬집으면서 돌아섰다. 무녀는 꼬집혀서 얼얼한 자신의 볼을 손 끝으로 문지르면서 흐음-하고 길게 목을 울린다.
"이제 마리사씨한테도 가끔은 이길 수 있는데."
"어라. 그건 훌륭하네."
"책 읽는 투로 말하고 있어요. 당신."
"음음. 진심이에요. 정말로. 훌륭하다, 훌륭해."
요괴는 자신의 뺨을 감싸고 있는 무녀의 손 위를 토닥토닥 두드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어린아이를 어르는 듯한 태도가 불만인 듯 무녀는 볼을 조금 부풀리면서 가볍게 그녀를 흘겨보았다.
"그럼, 이만 돌아가볼까."
"아... 응."
조금 아쉬운 듯한 소녀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한다.
"감기 조심하고."
"..."
"그런 게 잘못하면 큰 병이 될 수도 있으니까-"
"...있잖아요."
자신의 말을 파고드는 앳띤 목소리에 요괴는 무녀를 등지고 있던 몸을 무겁게 돌린다.
그것을 눈치채이지 못하도록 평소처럼 웃어주려 했었지만,
우연히 벚꽃나무에 튼 눈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겨울에 잠에서 깨면 항상 찾아오면서, 아직까지 단 한 번 툇마루에도 앉지 않네요."
"..."
잠깐 들르려고 했었을 뿐인데, 너무 오래 머무른 것은 확실하구나. 요괴는 쓴웃음을 지었다.
"엊그제 마리사씨가 찾아와서 여기 있는 도깨비씨랑 잔뜩 마시고 취해 잠들었었는데."
연하고 부드러운 갈색의 머리카락이 이렇게나 많은 햇빛을 받고 있는데도,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깊은 흑색으로 보이고 있었다.
"잠결에 횡설수설 유카리씨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어요."
"..."
"그러니까-"
"있지."
막 벚꽃의 눈이 트기 시작할 무렵.
툇마루의 장짓문 너머 다다미 방에 이불을 깔고 누워,
밉살스러울 정도로 평온한 얼굴로 영원한 잠에 빠져버렸던 한 명의 소녀가 있었다.
"나는 이 곳을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유카리는 천천히 입술을 떼어 목소리를 흘리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보았다.
하얗게 흩어져 있는 구름 사이로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는 누군가의 모습을 쫓듯이.
"딱 한 번. 모든 것을 잊고 환상향을 증오했던 순간이 있어."
도착했을 때에는 모든 것이 끝나있었다.
겨우내 한 번 깨어나는 일 없이 깊은 단잠을 자고 일어나자마자 들은 란의 담담한 통보에, 유카리는 어딘가에 홀린 듯 흔들흔들 일어나 환상향 끝자락에 있는 작은 신사에 도착했다.
시신을 지키고 있는 것은 그녀의 오래된 친우인 금발의 마법사와, 벽에 기대어 조용히 잠들어 있는 인형사 두 명 뿐이었다. 많은 인요들이 하쿠레이의 신사에 몰려들었지만 신경질적인 인간 마법사의 호통에 결국 모두들 돌아가버렸다고 한다.
가늘던 호흡이 멈춘 것은 벌써 3일 전.
어딘가의 요괴에 대단한 혈전을 벌인 것도 아니고, 숨기고 있었던 지병이 그녀의 목숨을 갉아먹어 갔던 것도 아니었다.
처음은 단순한 감기었다고 한다.
겨울바람을 누르고 서서히 봄이 찾아오기 시작할 즈음 가볍게 기침을 콜록이는 정도였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그 병마는 소녀의 몸 안에 자리를 잡고 일주일이 지나는 순간 목숨을 앗아가는 낫을 치켜들었다.
봄맞이 탄막전을 벌이러 온 마법사의 앞에서 갑자기 피를 쏟고 그대로 자리에 누운 그녀는 삼 일 동안 자신의 생명력을 고요히 불태운 뒤- 열린 장짓문 너머 설핏 벚꽃의 눈을 보고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린 후,
담담하게 숨을 거두었다.
"..."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었다는 사실이 분했다. 억지를 부려 멋대로 몸을 잇고, 마음을 빼앗은 후 안도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대답이 두려워 귀를 꽉 틀어 막은 채로 단순히 손에 넣은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었다니. 너무나도 바보 같았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녀가 평온을 가장한 채 한 호흡 한 호흡을 깊은 고통과 함께 보냈을 그 시간에,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결국 달콤하게 잠에 취해 있었던 것 뿐이었다.
너무나도 무력하다. 강대한 힘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모두가 두려워 하는 야쿠모 유카리라는 요괴는, 고작 인간의 죽음 하나도 막지 못하는 형편없는 존재임을 다시 깨달았다.
그렇기에 울었다.
소녀를 본 순간 멈추어 섰던 그 자리에서 계속 움직이지 않은 채,
화가 날 정도로 편안한 얼굴을 한 채 홀로 멋대로 잠들어 버린 소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아아.
이 아이가 없는 환상향 따위,
없어져버리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다.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네."
앨리스의 말에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밖은 새카만 어둠이었다. 3일 내내 줄곧 자지 않고 시신 옆에서 버디고 있던 마리사는 결국은 툭-하고 실이 끊어진 듯이 잠들어버렸다. 툇마루에 나와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버린 그녀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앨리스는 가만히 입을 다문 채 유카리에게 술잔을 건네었다. 어머, 당신은 술 금지. 유카리가 신사에 와서 처음으로 한 말에 앨리스는 줄 곧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메마르고, 유약한 목소리였다. 앨리스는 눈을 감고 살짝 미소짓는다. 한 잔 정도는 괜찮아.
"50년을 사는 인간이 누군가를 잊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얼마 정도일까?"
유카리는 빈 술잔을 바라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글쎄. 10년 정도면 될까? 아무리 길어도 그 삶 평생의 길이를 넘어서지는 않겠죠."
앨리스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차가운 밤바람에 맡긴 채 나지막히 대답한다.
"50년짜리의 인간이 10년 정도 걸린다손 치면, 1000년짜리 요괴는 200년 정도 걸리는 걸까."
"...단순한 계산으로는 그렇겠네. 그렇다면."
쪼륵.
술잔이 차오른다.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사는 요괴라면,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걸리는 걸까?"
"그런가."
그건 곤란하군.
유카리는 술잔을 비우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을 감았다. 피곤했다. 인간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던 것이 언제적 일이었더라.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 다는 것은, 몇 번을 겪는다한들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구나. 새삼 다시 깨달으면서 나무기둥에 머리를 기대었다. 코 끝이 아려왔다. 방금 전 마신 술이 그대로 눈물이 된 듯, 전부다 짜내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시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밉살스러운 아이같으니.
새털같이 가벼운 말 한마디조차 남기지도 않았다.
모든 미련을 그녀에게 맡긴 채, 여느 때처럼 훌훌 털고 하늘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변하는 것은 없다.
지금 흐르는 눈물조차도 얼마 가지 않아 곧 말라버린다.
이 탁해진 감정을 맑게 가라앉힌 후,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일어설 것이다.
환상향은 여전히 사랑스럽고,
그런 낙원을 지키는 경계에 묻혀 살아가리라.
그녀가 사라져도 다시 봄은 오고, 시간이 흘러 겨울이 오면 다시 잠이 들겠지.
일어나면 단정한 이마를 찡그리는 무녀를 보기 위해 하쿠레이 신사로 찾아가서, 툇마루의 장지문을 보고서야 자리에 누워있던 그 날의 그녀를 떠올리겠지.
잊었다고 생각했던 이 마음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확인하겠지.
그리고 뒤엉키는 마음의 앙금에 겁먹어,
다시는 이 툇마루에조차 오르지 못하리라.
레이무.
나는 어쩌면-
"...유카리씨?"
"응?"
"무슨 생각 하고 있어요? 멍하니. 배실배실 웃고 있다구요."
"응."
요괴는 자신의 옆에 서서 말똥한 눈으로 쳐다보는 무녀의 머리를 가만히 껴안으며 머리에 얼굴을 묻었다. 코끝을 간질이는 머리카락에서, 너무나도 그리운 향이 났다.
"유카리씨? 웃, 답답해요. 저기?"
"...응."
그것이 우스웠기에, 눈가가 조금씩 젖어들었다.
"응..."
아아. 어쩌면,
나는 그녀를 사랑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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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무는 요괴퇴치로 죽는 것도 그렇지만,
어쩌면 이런 식으로 죽는 것도 왠지 답다...싶어서.
가볍게 걸린 감긴 줄 알았는데 갑자기 악화되더니, 자리에 누운채로 서서히 병약해져서- 결국은 죽는. 그런 거.
그리고 유카리는 자고 있어서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는 이야기. 운명의 붉은 실의 가는 진동 하나 없이.
맥빠진다. 는 느낌으로.
허탈하다...ㅠㅠㅠㅠ 이런 기분?
...어쨌든 너무 급하게 써서 쓰고 싶은 걸 잘 못 표현하긴 했는데 뭐, 이젠 아무래도 좋아:^:^:^!!!! 난 글을 썼다!!! 그러니까 이제 다시 바느질을 하러 가겠어!!!!
# by | 2007/12/21 01:37 | └ fan fiction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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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무, 라고 부르지않는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마리사씨'에서 깨달았네요...흑흑흑...ㅠㅠㅠㅠ.........
요즘 계속 밤새면서 새벽까지 쩔며 살았는데 위안을 얻고갑니다....코스 준비 힘내세효:$!!!!!!!
..........와.. 감동이에요 ㅠㅠ 윸렝은 너무 애정이 강해서그런지(..) 2차창작으로 손을 못대겠는데 ㅠㅠ 와 ........./박수/박수/캐박수
아 정말 마리사씨라고 하는데서 깜짝 놀랐어요 으아아 ㅠㅠㅠㅠㅠㅠㅠㅠ
뭐라고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죄여드는 느낌이네요 ㅠㅠㅠㅠ
고냥이/ 반칙이구나! ㅈㅅ ㅇㅇ.... 마앨같은 경우에는 어떨까요. 그러고보니 홍마쪽도 써보긴 했었는데. 쨌든 인-요 커플은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꽃핌...
실프/ 윸.렝.러.브.사.랑.한.다. ㅇㅇㅇㅇㅇㅇㅇㅇㅇ 으아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패드님 가요 2차 창작 가요 ㄱㄱㄱㄱ
후렝/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인간 짱 반칙이야 ㅠㅠㅠㅠㅠㅠㅠ 요괴보다 쎈 놈들밖에 없어 게다가... 이뭐병병..........
文乞/ 레이무 후대는 어떤 애가 나올까요... 하지만 제 안의 레이무는 영원히 죽지 않으니 ㅇㅇㅇ 하쿠레이 무녀는 이번 대에서 영원할듯....